영화는 개병(광견병) 걸린 개를 회상하는 구남(하정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닥치는 대로 몽땅 물어죽이던 개가 사라졌다가 100일 만에 바짝 말라서 나타났다. …내 옆에 눕더니 죽었다. 나는 묻어주었지만, 어른들이 그날 밤 잡아먹었다. …다시 개병이 돈다.” 개병 걸린 개는 광포한 위험물이자, 비참한 죽음을 앞둔 가여운 존재다. 그 죽음은 애도되지 못하고, 어른들의 식탐에 착취된다. 구남의 내레이션은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자, 영화의 전문(前文)이다. 개장수 면가(김윤석)에 의해 살인청부업자로 팔려간 구남은 개병 걸린 개처럼 닥치는 대로 폭력을 저지르지만, 점차 피폐한 몰골로 변해간다. 산짐승처럼 들녘을 헤매다 자기 죽음을 예감하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숨지지만, 그의 최후 역시 누구의 애도도 받지 못한다. 황해를 사이에 둔 두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물이 되어, 탁류 속으로 던져진다.
과잉 폭력과 겹겹의 섹슈얼리티
택시 운전사는 어쩌다 살인자가 되었나? 빚을 졌다. 아마 애초 빚을 진 원인은 아내의 한국행 비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송금은 물론 연락조차 끊겼다. 한국 가서 소식 끊긴 여자는 필경 바람이 난 것이라며 수군댄다. 구남은 아내와의 살가웠던 섹스가 떠올라 미칠 것 같다. 보통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내를 그리워할 때, 아이들과 함께한 단란한 가족 시간을 떠올리는 데 반해 는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배치한다. 이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과잉 폭력의 에너지와 청부살인의 원인이 치정이라는 사실과 궤를 같이한다. 자본과 폭력의 결합체인 청부살인의 동력은 겹겹의 섹슈얼리티다.
개싸움을 시키던 개장수는 구남의 목줄을 살살 당긴다. 아내 일을 묻더니 “무조건 바람… 죽이고 싶겠다… 죽이든, 다시 데려오든”이라 말하며, 죽일 사람을 알려준다. 밀항선을 탄 구남 옆에는 밀입국하려는 노동자들이 우글거린다. 짐승처럼 어창에 갇혀 토하다 죽은 여자는 바다에 던져져 고기밥이 된다. 짐승, 개, 고기. 벌거벗은 삶, 고기가 되는 삶, 착취당하는 삶. 그는 10일 안에 강남의 김 교수를 죽이고, 인천의 밀항선을 타야 한다. 강남의 건물 앞에서 귀가하는 김 교수를 새벽까지 기다리는 그는 춥고 배고프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핫바를 사먹는 그는 김 교수로부터 노숙자로 오인받는다. 낮에는 안산이나 가리봉동 식당을 돌며 아내를 수소문한다. 그는 악인이라기보다 노동자다. 식당 등에 취업한 수많은 중국동포 (불법) 이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업무에 더 낮은 임금과 더 나쁜 노동조건으로 투입된 (불법) 이주노동자다. 살인청부 노동의 수요는 남한 사회 내부에 있었고, 자본을 좇는 개장수가 구남을 팔아넘겼다. 구남은 김 교수를 죽이고 아내를 데리고 고향에 가려 했으나, 김 교수를 죽이지 못한다. 양심이나 도덕 때문이 아니다. 김 교수를 죽이려는 자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일감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이미 큰 소리가 난 살인 현장에 뛰어든 구남은 진짜 살인자를 밀치고 자신의 노동을 입증할 엄지를 잘라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구남은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쫓기며 가까스로 인천에 당도하지만, 귀환선은 없었다. 어엿한 자본가이자 조폭인 김 사장(조성하)은 자신의 청부 사실이 밝혀질까봐 구남과 면가를 죽이려 한다. 김 사장의 부하를 죽이고 서울에 온 면가는 김 사장에게 구남을 죽여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제 구남을 쫓는 세력은 경찰 외에 남한 자본가와 옌볜 자본가 연합이다. 그러나 연합은 오래가지 않는다. 면가 일행은 추격전 끝에 구남을 놓친다. 김 사장 패들이 면가 일당의 숙소를 급습하고, 혼자 살아남은 면가는 도끼를 들고 김 사장을 찾는다. 구남 역시 자신에게 살인을 청부한 자를 추적하다 김 사장을 알아내고 그를 찾는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추격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구남이 범행 현장이나 검문 도중 많은 경찰을 따돌릴 수 있었던 건 슈퍼히어로적 능력이나 첩보원적 기술 덕분이 아니다. 그는 오직 절박한 생존 본능 하나로 조금 더 빨리, 더 끝까지 달렸고, 경찰은 결정적 순간에 민첩하지 못하거나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하지 않은 탓에 눈앞에서 놓친다. 영화는 총상을 입고 탈주하는 구남을 서러운 산짐승처럼 그린다. 그는 죄를 뉘우치지도 않는 범죄자지만, 영화는 그를 자본의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박박 기는 노동자로 그린다.
노동자가 목숨 걸고 넘는 황해
황해, 두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국경이란? 서태지의 에서 보듯이, 1990년대 초반까지 만주는 고대사의 영지나 독립운동의 본영으로 인식되는 민족주의적 상상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이 밀려 들어오면서 만주는 ‘누군가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의 공간이 되었다. 중국동포에 대한 감정도 초기엔 동포애를 투사하는 이도 많았지만, 국내 노동시장의 일정하부를 점하고, 2007년 방문취업제 실시 뒤 이주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동포에 대한 오리엔탈리즘과 인종 혐오가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동포 사회도 중국의 급격한 자본주의화로 남한에 돈 벌러 가려는 중국동포가 점점 증가하고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중국공산당의 장악력이 약화되었다. 에서 옌볜은 민족적·역사적·정치적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로서 급격한 계급분화를 겪고 있으며, 더 자본주의가 발달한 남한에 청부살인을 포함해 3D 업종에 노동력을 파견하는 인력시장인 것이다. 남한과 옌볜, 두 시장 사이에 국경이 있다. 이는 자본가인 면가에겐 비행기로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선이지만, 노동자에겐 목숨을 걸고 넘어야 하는 죽음의 바다다. 는 중국동포의 허망한 죽음과 함께, 폭력과 탐욕으로 미쳐 날뛰다 수척하게 죽어가는 ‘개병’의 전설을 쓸쓸히 전한다. 미친 자본의 병이 돌고 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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