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는 ‘비수기’다. 관객이 망설이는 극장가 앞에는 투자자의 확률의 찜을 벗어나 ‘확신’(의 대사)으로 만들어진 작은 영화들의 간판이 내걸렸다. 올해는 유독 음악영화가 많다. 10만, 100만, 1천만을 노리겠는가. 영화들은 전기 들어온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규칙적으로, 기대한 대로 반짝이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내고 공들여 닦은 빛으로 반짝인다. 당신의 가슴에 예기치 못한 ‘비수’를 남길지 모를 음악영화의 반짝이는 순간을 모았다. 다큐멘터리, 인디음악계 스타 출연 영화, 뮤직비디오풍 음악 영상, 전설의 어린 시절 등 메뉴판은 다양하다.
<레인보우><존 레넌 비긴즈: 노 웨어 보이><춤추는 동물원><브라보 재즈 라이프>
지원(박현영)은 카메라를 잡아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영화감독의 길로 뛰어들었다. 5년 동안 15고까지 고친 시나리오는 엎어질 위기에 처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 말이에요”를 마지막으로 외치고 지원은 집으로 들어온다. 지원은 취재했던 인디밴드 테이프를 다시 돌려보고 록 공연장을 다니며 음악영화를 만들 것을 결심한다. 그에게는 ‘반항’이 특권이라고 말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아들 시영(백소명)이 있다. ‘엄마 바보’라고 쓰고 엄마를 그린 그림에다 야구공을 던지곤 하던 아들은 기타를 좀 치는가 싶더니 학교 밴드에 들어간다.
록 콘서트 현장을 만화풍으로 바꿔 보여주고, 인디 밴드 음악에 맞춰 그들의 공연 장면을 구성하는 등 음악과 영상을 맞춰가는 장면이 많다. 그리고 엉뚱한 뮤지컬이라니. 명함을 받은 사무실을 나온 엄마가 집에서 빈둥거린다. 아들은 자는 엄마 옆에서 기타를 튕기며 노래한다. 이다. “여기는 오타쿠의 방입니다. 우리 엄마는 똥배는 북한산 같아. 아 우리는 정말 이상한 가족입니다. 이 아줌마는 영화도 안 찍으면서 감독이래요. 아빠는 엄마 땜에 극장도 안 가요. 엄마는 요즘 세수도 안 하지요. 우리 엄마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 흥겨운 트로트를 연주하는 중간에 아빠는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스텝을 밟는다. 음악이 끝나면 엄마는 다시 빈둥거린다. 11월18일 개봉했다.
광고
*영화의 반짝이는 순간 아들은 엄마에게 영화를 만들면 ‘행인3’으로 출연시켜달라고 한다. “왠지 3이라는 숫자가 좋아서. 대신 출연료는 줘야 돼.” 준비하던 음악영화는 잘되지 않는다. 아들은 얻어터진 대가로, 반토막 난 밴드에서 용케 기타 자리를 꿰차고 보컬 자리도 차지한다. 그리고 관객은 엔딩곡 에서 예기치 않은 해피엔딩을 조우한다. “왔다 갔다 헤매이며 꿈을 꾸다 지쳐가네/ 날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맴돌지만. 날 알아보지 못해 어디든 갈 수 있어// 행인3이 지나가네 느낄 수도 없겠지/ 날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맴돌지만/ 날 알아보지 못해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들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다르지 않았다.” 뭔 일이 터지거나 성공이라는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면, 주류에 들지 못한 음악인과 영화인이 비춰지는 일은 없다. 감독은 이들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감독은 ‘루저는 잃을 게 없는 사람’ ‘위너는 얻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듯, 행인3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기에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의 지원이 그리려던 홍익대 앞 인디신의 중앙으로 훌쩍 들어간다. 영화는 ‘홍대의 여신’ 한희정과 ‘인디신의 활약주’ 몬구의 ‘로맨스’영화다. 동생이 군대를 간 준수(몬구)와 음악 파트너이기도 했던 연인이 떠난 희정은 동물원을 찾고, 마주친다. 원숭이에게 우쿨렐레를 연주해주던 준수에게 희정은 말을 걸고, 준수는 사람 앞에서는 연주한 적 없는 음악을 그에게 들려준다. 상경한 뒤 집이 없는 준수와 음악 파트너를 찾는 희정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12월2일 개봉했다.
*영화의 반짝이는 순간 한희정과 몬구는 영화의 음악감독도 겸했다. 한희정의 음악은 가녀린 어쿠스틱이고, 몬구의 음악은 키보드 위주의 전자음이라 어떻게 어울릴지 궁금한데, 노래 로 처음 음악을 맞춰보는 장면에서 둘이 꽤나 잘 어울린다. 조심조심하는 한희정의 목소리를 몬구는 든든하게 잘 안아서 올려준다. 둘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 로맨스도 필연임을 감지한다. 그래서 몬구가, 여신 한희정의 미모에 준하는 ‘준수’한 사람이라 여겨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광고
비틀스로 데뷔하기 전 존 레넌을 따라간다.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른다는 이유로 존이 모범생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존은 이층버스 지붕에서 버티기를 하는 ‘초날라리’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나고, 정학 기간에 어머니한테서 밴조를 배운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네가 올 줄 알았다. 내가 케이크를 만들었거든”이라며 웃는 여자는 그간의 서먹함을 없애버리는 ‘로큰롤 마니아’다. 존은 엄마와 로큰롤과 감정의 폭발을 겪는다. 12월9일 개봉.
*영화의 반짝이는 순간 첫 공연과 두 전설의 만남. 존은 밴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친구들을 화장실에 모은다. 악기를 얼마나 잘 연주하느냐에 상관없이 ‘짱의 간택’을 받는 게 중요하다. 그들이 첫 공연을 마치고 기뻐할 때 공연을 지켜본 폴이 찾아온다. 폴 매카트니다. 그는 ‘조금’ 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모범생 폴은 존보다 두 살 어리지만, 정확한 이론과 운지법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작곡을 해야 돼. 그래야 레코드 회사에 휘둘리지 않거든”이라고 말하며 존의 음악 스승이 된다. 두 걸출의 만남, 그들이 코털도 안 난 어린애라고 하더라도 가슴 뛰는 순간이다.
의 감독 지원이 만나는 밴드 레인보우의 한 멤버는 재즈 연주를 하는 것으로 부업을 한다. 엘비Red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에 푹 빠진 의 존은 “재즈는 꺼져버려”라며 재즈 디스크를 버린다. 서구에서는 산업으로 부흥한 전성기를 누린 음악이고 현재 한국에서는 연주인이 살아갈 방편이 되는 음악이지만, 재즈는 1세대에게는 ‘도박’이었다. 어렵게 구한 음반을 수없이 들으며 포지션의 음악을 따라 했고(이동기), 미8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앨범을 구해서 연주자들에게 조달했으며(류복성), 먹고살려면 돈벌이를 해야 해서 모여서 연주하는 건 한 달에 한 번뿐인 연주회(‘야누스 재즈음악회’)가 열렸다. 김준은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의 유일한 남자 재즈 가수였다. 재즈 보컬 박성연은 재즈 부르기를 고집하다 번번이 ‘파이어’당했다. 웅산은 연주 실력은 최고라 카바레 악단에 뽑히지만, 무대에 오르면 자신의 끼를 숨기지 못해 하루 만에 잘리곤 했다던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지난해 재즈 1세대와 후배 음악인들이 모여 음반을 녹음하고 콘서트(‘2010 KOREA JAZZ MASTER CONCERT’)를 열었다. 는 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를 잡은 이는 음악평론가인 김무성이다. 모여서 연주할 때마다 ‘전설’이 된다는 이들의 콘서트는 12월28일 서울 역삼동 LIG아트홀에서 다시 한번 막을 올린다. 영화는 12월16일 개봉.
광고
*영화의 반짝이는 순간 콘서트 준비 장면. 콘서트장에 정장을 하고 출연자들이 모인다. 박성연은 말한다. “외롭고 괴로울 때면 난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난 블루스를 더 잘 부를 수 있게 될 거야.” “우리가 언제 늙어?”라는 말에 이동기는 말한다. “왜 늙어?” 공연장으로 향하는 무리들 위로 정적이 흐른다. 공연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오른다. 영화의 결론이기도 한 공연의 극점을 향해 완전하게 장전됐다. ‘초짜’ 감독은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는 장면을 두고 연출이 들어갔느냐 묻더라. 99% 리얼로 찍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이재명 상고심 ‘속전속결’ 1일 선고…대선 최대 분수령
박지원, 정대철에게 “너 왜 그러냐” 물었더니 대답이…
김상욱, 권성동에 반발…“기분 나쁘다고 해당행위 단정은 잘못”
한덕수, 선거사무실 이미 계약…‘무소속으로 단일화 뒤 입당’ 유력
‘경선 탈락’ 홍준표 정계은퇴…“오늘로써 정치인생 졸업”
김건희 오빠 운영 요양원에서 노인학대 정황…당국 현장조사
이낙연이 어쩌다 한덕수와…“정치적 무덤, 시대의 엇박자”
김문수 “6개”, 한동훈 “어렵잖게 30개”…국힘 때아닌 턱걸이 매치?
[단독] ‘한나라당’ 출신 권오을 전 의원, 오늘 경북서 이재명 지지 선언
한덕수 부른 국민이 도대체 누군데요…“출마 반대·부적절” 여론 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