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로 ‘서스펜스 로맨틱 코미디’라는 범주를 개척한 손재곤 감독의 신작 은 캐릭터가 살아 있는 상황극이다. 창인(한석규)은 고가의 골동품을 밀거래하다 “마누라도 모르게, 내 집에 숨겨놓았다”는 말을 남기고 추락사한 남자의 집을 기웃거린다. 졸지에 남편을 잃고 빚에 쪼들리는 연주(김혜수)가 2층 방을 세놓으려 하자 창인은 소설가를 사칭하며 입주한다. 자금세탁을 위해 20억원짜리 고미술품이 필요한 재벌 2세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용히 찻잔을 빼내려는 창인은 아래층에 들락거리며 호시탐탐 집을 뒤질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우울증과 외모 콤플렉스로 툭하면 직장이나 학교를 빼먹는 모녀 탓에 집이 비지 않는다. 창인은 연주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딸을 설득해 학교에 보내야 하는 피곤한 임무를 떠맡는다.
전작과 공유하는 코드들
범죄의 목적을 지닌 남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집에 신분을 위장한 채 세 들어오지만, ‘나름 강적’인 여성 캐릭터로 인해 예상 밖의 고전을 겪는 설정은 와 유사하다. 지하실 장면에서 보듯이 집안 내부의 동선을 활용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과 더 강한 연관성을 지니는 텍스트는 역시 이다. 두 영화는 서사와 캐릭터가 상이함에도 중요한 코드를 공유한다. 우울증과 인터넷 문화, 그리고 예술과 범죄의 결속 등이 그것이다.
“공부 못해도 우울증, 연애 못해도 우울증…”이라며 처방전을 박박 찢던 전작에 비해, 은 우울증의 위력을 완전히 승인한다. “새천년 국민체조만 해도 우울증이 싹 달아난다”고 말하던 창인은 연주의 배신으로 감옥에 갔다 온 뒤 우울증이 생긴다. 창인을 따돌리고 찻잔을 팔아 원하던 아파트로 이사 간 연주는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의 결말을 연상시키는 이 역전은 우울증이 결코 만만한 질병이 아님을 역설한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 우울증 진료 인원은 매년 4%씩, 진료비는 10%씩 증가했다.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약이 프로작(항우울제)이며, 2020년 우울증은 허혈성 심장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질병이 될 전망이다. ‘신경증의 시대로부터 우울증의 시대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기율에 기반하던 사회가 자기 책임성을 강조하는 사회로 변하는 것과 관계 있다. 우울증은 분노와 상실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으로, 자기계발서 붐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표 징후다. 영화에서 우울증은 외모와 나이 콤플렉스와 깊이 연관된다. 여중생은 얼굴에, 조폭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고, 할머니의 늙음을 공격하던 창인도 ‘늙다리 제비’라는 말에 비애감을 감추지 못한다. 또한 영화는 “내가 도토리를 달랬냐, 스킨을 달랬냐?”고 일갈하던 전작처럼, ‘얼꽝’이 된 우유소녀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악플을 다는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문학과 살인이 한 쌈에 들었던 전작처럼, 미술과 사기(자금세탁)가 한 배를 타는 아이러니도 보여준다.
‘유니크’한 감각이 빚어낸 신선한 대사
영화는 이런 현실 반영적 코드를 버무리면서 신선한 대사로 웃음을 빚어낸다. “쉰은 아니다, 정말, 6710XX” 하며 주민번호를 읊거나, 소녀에게 안경을 벗어보라고 하고선 “안경을 아주 잘 골랐구나”라며 위로하거나, “우리나라는 재벌 2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너무 심해… 나도 대표님 안 만났으면…” 하는 대사들은 손재곤 감독의 ‘유니크’한 감각을 보여준다. 영화는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쌍놈의 집구석”이라고 욕을 하던 창인이 모녀의 식탁 아래에서 새우잠이 든 마지막 장면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냥 사는 거죠, 뭐.” 성형수술에 실패한 소녀의 마지막 대사는 그나마 위로가 된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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