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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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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천재의 까칠함은 현재진행 중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주인공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천재일까, ‘찌질한 나쁜 놈’일까
등록 2010-11-24 11:03 수정 2020-05-03 04:26

백과사전에 ‘괴짜’(nerd)라는 항목이 있다면 그 옆에 그의 사진을 하나쯤 넣어도 괜찮겠다. 그의 이름은 마크 주커버그(26). 전세계 5억 명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페이스북’(facebook.com)의 창립자이자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다. 곱슬머리에 창백한 피부, 굽은 등, 무표정한 얼굴, 아무렇게나 걸친 티셔츠에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까지. 입만 열면 속사포로 잘난 척을 늘어놓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여자에게 인기를 끌 수 없을지 몰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e) 편한 세상’의 설계자는 그와 같은 괴짜들이다.

마크의 열등감이 페이스북을 낳았다?

페이스북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친구였던 에두아르도 세브린(맨 왼쪽)과 마크 주커버그(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가 된다. 아래 사진은 마크 주커버그의 실제 모습.

페이스북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친구였던 에두아르도 세브린(맨 왼쪽)과 마크 주커버그(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가 된다. 아래 사진은 마크 주커버그의 실제 모습.

그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괴짜’ 마크 주커버그의 성실하고도 훈훈한 성공담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등 시니컬한 영화를 만들어온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는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무너뜨린다. 대신 페이스북을 둘러싼 이들의 관계에 주목해 우정과 배신, 성공과 실패 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세련된 솜씨로 풀어놓는다.

고등학교 때 이미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선곡해주는 인공지능형 음악 재생기 ‘시냅스’를 개발해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마크(제시 아이젠버그)는 공인된 천재다. 그런 그에게 도저히 풀지 못할 문제가 있으니, 아무리 똑똑해도 들어갈 수 없는 엘리트 클럽에 대한 콤플렉스다. 여자친구인 보스턴대생 에리카는 엘리트 클럽 얘기가 나오자 쉴 새 없이 빈정대며 ‘열폭’(열등감 폭발)하는 마크를 견디지 못하고 그를 떠난다. 마크는 블로그에 에리카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는 것과 하버드대 네트워크를 해킹해 여학생들의 사진을 모아 이상형 월드컵이나 다름없는 교내 얼짱 뽑기 사이트 ‘페이스매시’를 만드는 것으로 실연의 상처를 치유한다.

페이스매시는 단숨에 화제가 되고, 하버드대 내부 온라인 커뮤니티 ‘하버드 커넥션’을 기획하던 교내 엘리트 클럽 소속의 윈클보스 쌍둥이 형제(아미 해머)는 그를 프로그래머로 영입하려 한다. 마크는 영입 제안에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막상 윈클보스 형제가 프로그래밍을 재촉하자 차일피일 일을 미루는 한편,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엇비슷한’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완성한다. 페이스북은 순식간에 인기를 끌고, 하버드대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대학으로 영역을 넓혀간다. 음악 파일 공유 프로그램 ‘냅스터’의 주인공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손을 잡은 마크는 거액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페이스북은 전세계로 뻗어나간다. 성공에는 희생이 뒤따랐다. 페이스북의 시작부터 마크와 함께했지만 폭발적인 성장에 발맞춰가지 못한 ‘절친’ 에두아르도 세브린(앤드루 가필드)은 페이스북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영화는 마크를 둘러싼 두 개의 소송을 중심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빠르게 진행된다. 첫 번째 소송은 마크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주장하는 윈클보스 형제가 제기한 소송이고, 두 번째 소송은 마크가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을 페이스북에서 쫓아냈다고 주장하는 친구 세브린이 제기한 소송이다. 영화는 소송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소송에 이른 정황, 특히 소송에 이르게 한 마크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윈클보스 형제와 세브린은 끊임없이 마크가 어떻게 교묘하게 그들을 따돌리고 페이스북의 성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증언한다. 이들이 증언하는 마크의 모습은 영화의 첫머리에서 보여준 것처럼 콤플렉스 덩어리다. 윈클보스 형제와 세브린 모두 마크가 결국 들어가지 못한 ‘엘리트 클럽’의 회원이었다. 이들은 마크가 그런 자신들을 시기해서 “엿먹이고 싶었던 게 아니냐”고 얘기한다.

“당신은 나쁜 놈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렇다고 영화가 내내 ‘마크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설파하는 건 아니다. 마크가 신의라든지 우정 같은 감정 노동에는 실패했는지 몰라도, 그는 추진력과 통찰력을 가진 천재 프로그래머임이 틀림없다. 만약 윈클보스 형제의 ‘부실한’ 기획안에 갇혀버렸거나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세브린과의 우정을 앞세웠다면 과연 페이스북이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영화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을 보여주면서 ‘마크 주커버그’라는 인물에 대해 “그는 프로그래밍 하나밖에 모르는 괴짜인가? 아니면 친구를 배신한 나쁜 놈인가?”를 묻는다.

질문의 답에 대한 단서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한 여자친구 에리카는 마크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넌 네가 괴짜라서 사람들이 널 싫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사람들이 널 싫어하는 건 네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소송 과정을 지켜본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마크. 단지 나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죠.”

영화가 끝나면 영화관을 나오면서 휴대전화를 켜 가장 먼저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의 이름을 검색하게 된다. 실제 마크 주커버그가 ‘어떤 놈’인지에 대한 강렬한 궁금증 때문이다. 영화 속 마크와 실제 마크, 또 영화 속 페이스북 창업 과정과 실제는 어떻게 다를까?

영화는 페이스북을 만들게 된 도화선이 그의 실연이라고 얘기한다. 마크는 에리카에게 실연당한 다음 페이스매시를 만들고, 에리카가 보스턴대에 다니는 걸 보고 페이스북 서비스를 하버드대에서 다른 학교로 확대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마크가 에리카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친구 신청을 하는 장면이다. 에리카는 마크가 현실에서의 인간관계에 얼마나 취약한지, 또 그를 해소하는 방법이 얼마나 ‘찌질한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실제 마크 주커버그는 이 부분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에 쭉 부정적 태도를 보여온 그는 지난 10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영화는 내가 페이스북을 만든 이유를 여자를 원하고, 클럽에 가고 싶어서라고 설정한다”며 “그들은 누군가는 그냥 그런 걸 만드는 게 좋아서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그는 페이스북을 기획하기 이전에 만난 여자친구인 중국계 미국인 프리실라 챈과 지금까지 오랜 연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실연당한 날이 아닌 여자친구와 싸운 날 화가 나서 페이스매시 사이트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의문을 표하는 이도 있다. 몇몇 블로거는 프리실라와의 오랜 연인 관계는 꾸며진 것이며, 프리실라와 잠시 헤어져 있을 때 버클리대에 다니는 학생과 사귄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 말미에 자막으로 밝힌 것처럼 윈클보스 형제와 세브린은 모두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줄기차게 언론에 등장해 “페이스북은 내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해온 윈클보스 형제의 소송건과는 다르게 세브린의 소송은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소송 과정이 영화에 자세히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원작인 (원제 )를 쓴 벤 메즈리치가 몇 달에 걸쳐 세브린을 인터뷰한 덕이다. 실제 세브린은 영화에 나온 그대로 페이스북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는 소송을 통해 합의금뿐 아니라 ‘공동 창업자’라는 타이틀도 되찾았다.

그로 인해 페이스북이 더 재밌다

영화에서 마크 주커버그는 인종에 대한 편견, 여성차별적인 시선, 엘리트주의까지 두루 갖춘 문제적 인물로 그려진다. 현실의 마크 주커버그는 영화 속에서 그렇듯, 자신만만하고 까칠하며 때로는 거만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페이스북 초창기에 이 사이트에 가입한 이들을 “나를 믿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에 대해 마크 주커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우려를 실어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내가 19살에 한 것들을 보고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이런 사람이었구나. 아직도 이렇겠지?’”

이 영화에는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다. 모든 내용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구글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가진 사이트로 자리하고 있고, 마크 주커버그는 여전히 여러 건의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윈클보스 형제는 합의 내용에 불만을 표하며 다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나쁜 놈이 되고 싶었던 26살의 괴짜’ 마크 주커버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지만, 두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영화 는 흥미로운 영화가 되었다는 것과, 역시 그로 인해 페이스북이 트위터보다 더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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