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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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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만 꿈꾸는 도시의 불균형을 보라



수직을 향해 달려가는 z축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평면 공간의 아슬아슬한 대비, 사진전 ‘xyZ City’
등록 2010-11-10 07:16 수정 2020-05-02 19:26

상아색으로 칠한 벽에 사진이 가지런히 걸려 있을 줄 알았다. ‘전시_xyZ City, 전시 장소_영등포 타임스퀘어 지하 2층 특설 전시장’이라는 전시 소개 문구를 보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내내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임스퀘어는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 지난해 문을 연 최신식 쇼핑몰이다. 보통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는 ‘화이트 큐브’라고 부르는 흰 벽에 작품을 걸고, 갤러리를 벗어나 백화점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하는 전시는 082흰색보다 한 톤 낮은 색깔의 벽에 작품을 건다. 간혹 대안공간이나 실험공간에서 흰 벽을 탈출한 전시장을 볼 수 있지만,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다.

» 최신식 쇼핑몰 ‘타임스퀘어’ 지하 2층에 위치한 숨겨진 공간이 전시장으로 사용된다.한겨레21 정용일

» 최신식 쇼핑몰 ‘타임스퀘어’ 지하 2층에 위치한 숨겨진 공간이 전시장으로 사용된다.한겨레21 정용일

수직축에 반응한 사진가들의 작업

지극히 상식적인 기대를 갖고 타임스퀘어 지하 2층으로 향했다. 반짝이는 바닥과 벽을 지나 이마트까지 왔을 때 ‘도대체 전시장이 어디 있는 거냐’며 두리번거렸다. 그때 저쪽 흰 벽에서 서늘한 기운이 엄습했다. 서늘한 기운을 따라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고 천장에 파이프가 드러난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칙칙한 회색 콘크리트 벽에 걸린 거대한 사진 프린트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곳이 ‘특설 전시장’이라는 걸.

이 공간은 지난해 9월 타임스퀘어가 문을 열면서 영등포구청과 연계해 지역민을 위해 공공성을 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마련됐지만, 1년이 다 되도록 공간의 목적이 결정되지 않아 내부 공사를 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아놓았다. 그러던 중 도시 사진전을 위해 갤러리가 아닌 ‘완성되지 않은 공간’을 알아보던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사진예술학과 교수이자 기계비평가 이영준 교수의 눈에 이 공간이 들어왔고, 타임스퀘어 역시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곳을 전시장으로 제공했다.

이영준 교수가 기획한 도시 사진전의 제목은 ‘xyZ City’다. 백승철·안세권·유병우·이득영·최원준·화덕헌 등 10명의 사진가가 도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 70여 점이 걸렸다. 이 교수는 “도시를 다룬 사진작가들의 작업을 쭉 봐왔다”며 “도시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공감대를 전시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전시에 ‘xyZ City’라는 제목이 붙은 건 전시에 참여한 작품이 모두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을 가로축(x)과 세로축(y)이 아닌 수직축(z)으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3차원 공간을 이루는 축은 xyz 세 개가 있는데, 한국의 도시에서는 단연 z축이 압도적이다. 오로지 수직 상승을 꿈꾸는 한국의 도시에서 x축과 y축이 만들어내는 평면 좌표는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z축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도시인들은 이런 엄청난 공간의 불균형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이 일을 하고 휴식을 하고 번식을 한다. (중략) 도시의 z축은 xy축 위에 사는 사람과 건물들의 숱한 희생 위에 세워졌다. 오늘날의 사진가는 그런 z축에 반응한다.”

» 안세권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2004)

» 안세권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2004)

도시 안에서 읽은 자본주의의 그물망

사진가 이득영은 헬리콥터를 타고 z축의 꼭대기에 오른다. 이득영은 2006년 자전거를 타고 간이매점을 촬영한 , 2008년 헬리콥터를 타고 한강을 찍은 와 유람선을 타고 한강을 찍은 , 2009년 헬리콥터를 타고 확장된 도시를 촬영한 등의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지금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찍은 결과물을 재구성한 작품 를 선보인다. 평당 최고가를 자랑하는 강남의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풍경과 마지막에 툭 하고 던져진 개포 구룡마을의 불규칙한 풍경 사이에서 도시의 두 얼굴이 엿보인다.

안세권은 아파트 16층 높이에서 땅 위에 펼쳐지는 z축의 횡포를 내려다본다. 2003년부터 5년간 진행한 시리즈 작업에 담긴 월곡동 뉴타운 개발 공사 현장 사진에는 재개발 주택들이 어둠 속에 낮게 깔려 있고 그 맞은편에 새로 건축된 아파트가 밝게 서 있다. 주택 높이와 아파트 높이 사이에서 얼핏 현기증이 느껴진다. 2004년에 촬영한 청계천 사진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뜯겨나간 청계고가와 부서진 교각 기둥, 잘려나간 철근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닐까 의심케 한다. 이 사진 속 풍경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뉴타운 개발은 최원준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은평 뉴타운 공사 현장에서 찾아낸 군사시설의 흔적에서 최원준은 “도시 사이의 권력관계 위에 국가 간의 권력관계, 그 위에 자본주의 논리로 점철된 그물망이 희미하게 보이는 순간”을 찾아낸다.

사진가의 카메라가 도시로 밀착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익숙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장섭은 서울 종로 빌딩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하나의 프레임에 공존하는 거대한 빌딩과 오래된 건물과 한옥 지붕, 슬레이트 지붕에서 압축된 시공간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장섭은 “분절 공간에 대한 시점의 좌표를 찾기 위해 빌딩 꼭대기에서 1층까지 걸어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적절한 높이를 찾아낸다. 이때 찾은 시점의 높이와 위치가 바로 카메라가 카메라로만 기능하는 도구가 되어준다”고 설명한다. 차주용은 교회 풍경 연작을 통해 어두운 밤 도시 하늘에서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포착한다. 차주용의 사진 속에서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는 건물에 걸린 네온사인 못지않은 도시적 혼란의 상징물로 뒤바뀐다.

다른 사진가들도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시공간의 여러 축을 넘나든다. 부산 산복도로를 따라 블록처럼 쌓여 있는 주택을 촬영한 화덕헌, 탄광이 사라진 자리에 모텔과 관광지가 들어서는 사북을 촬영한 이강우, 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열린 ‘바이블 엑스포 2010’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포착한 백승철, 공항과 도시의 3차원 풍경을 평평한 2차원으로 눌러버린 유병욱, 개발에 시동을 건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촬영한 전민조 등 모든 작가의 사진 안에는 서로 다른 도시의 조각이 들어 있다.

» 이득영 <압구정 현대-수직>(2009

» 이득영 <압구정 현대-수직>(2009

마지막 작품, 화려한 쇼핑몰의 풍경

사진 작품이 유독 이 전시장에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진이 걸린 공간이 사진전을 구성하는 하나의 설치작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최신식 쇼핑몰 지하에 숨어 있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사진 프레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때로는 뉴타운 공사 현장에 있는 것 같고, 때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높은 빌딩에 잠입한 것 같다. 그렇게 콘크리트 벽을 따라 모든 사진을 감상하고 나면 단 하나의 작품이 남는다. 전시장 안에서 바라보는, 네모난 문 밖으로 펼쳐진 화려한 쇼핑몰의 풍경은 이 전시에서 보게 되는 마지막 프레임이다.

전시는 12월29일까지 이어진다. 관람은 무료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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