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비턴은 자신이 원하는 절대적인 미를 사진을 통해 재창조하는 탐미주의자였다. 오드리 헵번,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같은 아름다운 피사체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작업에 평생을 몰두했다(왼쪽부터).
불멸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이 이럴까.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왕실 초상사진가이자 패션지 의 사진작가로 유명한 세실 비턴(1904~80). 그는 1920년대부터 60년대 말까지 당대 문화예술계를 주름잡던 스타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드리 헵번, 비비언 리, 메릴린 먼로 등 ‘세기의 아름다움’으로 칭송되던 미녀들이 그 앞에서 매혹적인 외모를 뽐냈다. 하지만 그에게 미녀들의 아름다움은 늘 2% 부족했다. 오드리 햅번을 두고 “코가 너무 길며, 턱은 너무 뾰족하고, 목은 너무 가늘다”고 묘사하며 그런 단점이 안 보이게 헵번의 포즈를 연출해 사진을 찍었다.
완벽해 보이는 헵번의 외모에서조차 단점을 찾아내는 그에게 사진은 미녀를 더욱 완벽하게 보이도록 하는 예술 작업이었다. 세실 비턴의 전기를 쓴 작가 휴고 비커스는 비턴을 두고 “자신이 원하는 절대적인 미를 사진을 통해 재창조하는 탐미주의자”라고 말했다.
“오드리 헵번은 코가 너무 길어”마침 이 탐미주의적 사진작가의 사진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V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7월24일까지 열리는 ‘세기의 아름다움’전에서는 아름다운 피사체에 다시 아름다움을 덧씌우려던 사진가의 미에 대한 집착이 읽힌다.
전시회 이름 그대로 ‘세기의 아름다움’전이 품은 사진 속 주인공은 단연 ‘세기의 아이콘’으로 불린 미녀들이다. 오드리 헵번, 그레타 가르보, 비비언 리, 메릴린 먼로, 마를레네 디트리히,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을 찍은 초상사진과 패션사진이 전시 중이다. 의상디자이너·무대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 등 종합 아트디렉터로 재주가 많았던 비턴이 카메라로 찍은 스타들은 스크린이 아닌 화보에서 여신으로 살아 숨쉰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아한 매력을 뽐내는 오드리 헵번의 사진들이다. 세실 비턴은 헵번의 얼굴을 두고 “단순히 예쁘다기보다는 하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꽃과 깃털이 부담스럽게 많이 꽂힌 모자, 항아리 모양의 굴곡진 레이스 원피스 등 어떤 복식을 갖추느냐에 따라 햅번의 얼굴에선 다양한 느낌이 뿜어져나왔다. 의상디자이너이기도 했던 비턴은 헵번과의 다양한 화보 작업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걸 즐겼다.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섹시 아이콘이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메릴린 먼로의 사진에선 색기가 사라지고 없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오른쪽·정면·왼쪽 얼굴 사진을 나란히 찍어 배열한 사진에선 얼굴 각도마다 새로운 이미지가 생겼다. 뺨에 점이 있는 오른쪽 얼굴에선 우아함이, 정면에선 순수함이, 왼쪽 얼굴에선 새침한 듯한 도도함이 풍겨졌다. 세실 비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 찍었다는 먼로의 사진은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먼로를 새로 발견해낸다. 단 하루 동안 찍었다는 사진에서 먼로는 크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흑백사진 속에서도 타고난 섹시함은 지워지지 않는지 그의 금발은 반짝이고, 가늘게 뜬 눈은 여전히 요염하다.
비비언 리에서 찾은 두 얼굴세실 비턴은 인형 같은 표정의 비비언 리에게서 두 얼굴의 이미지를 찾아냈다. 비비언 리를 세상에 알린 (1939)를 전후해 찍은 화보는 그가 배우로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인 1935년에 찍은 사진에서 비비언 리는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표정으로 백치미가 빛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1941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찍은 화보에선 영화 속 예의 표독한 표정이 생생히 살아난다. 세실 비턴은 배우로서 성숙해진 비비언 리의 아름다운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세실 비턴이 흠모했다는 그레타 가르보는 지적이고 고독해 보인다. 세월의 깊이가 보이는 주름도 그대로다. 전시회에 걸린 사진은 가르보가 비턴에게 부탁한 여권용 사진들. 하지만 정적인 여권 사진이라고 볼 수 없는 생동감이 프레임 안에서 느껴진다.
세실 비턴은 사진을 넘어서서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문화예술계 직업을 가진 아트디렉터였다. 그가 의상디자이너로 참여한 영화 에서 봤듯, 그의 의상에선 늘 우아함과 과장된 여성성이 공존했다. 사진도 의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고전적 여성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사진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찰나의 거장’ 브레송처럼 패션사진가로서 그의 이름은 드높다. 진동선 사진평론가는 “세실 비턴을 공부한다는 것은 20세기 문화의 숲을 거니는 것이며, 세기의 전환기에서 인물과 패션이 어떻게 인간과 삶, 시간과 문화를 바라보고 투사하는지 패션 스타일을 통해 만나보는 것”이라고 평했다. 문의 1666-4252.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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