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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으로 어른의 마음을 적시고 싶다”

일본 1인 인형극의 ‘천재’ 다이라 조… 아동극부터 성인극까지 연출·미술·연기 혼자 도맡아
등록 2010-05-13 15:26 수정 2020-05-03 04:26

지난 4월20~25일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시어터 그린’에서 일본이 자랑하는 유명한 희곡작가 데라야마 슈지 원작 가 인형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1인 인형극 배우 다이라 조(29)는 이 작품으로 일본 인형극대상 은상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에도 연출·미술·인형 연기까지 모두 도맡은 특별기획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삿포로 태생으로 12살 때 로 데뷔한 1인 인형극의 천재 다이라 조를 이 만났다.

〈케가와노마리〉를 공연하고 있는 다이라 조.

〈케가와노마리〉를 공연하고 있는 다이라 조.

- 12살 때 데뷔라니 놀랍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려달라.

=학교 행사 때마다 당연한 듯 인형극을 했는데, 6학년 학급회의 시간에는 나만 1학년 교실에 가서 복화술을 선보였다. 아이들이 불평하면 담임 선생님은 “다이라군은 커서도 이 일을 하게 될 거라 그래요”라고 하셨다.

-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잔소리 좀 하셨을 것 같은데.

=인형극을 너무 좋아하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300엔만 내면 합숙하면서 인형극 놀이도 하는 ‘야마비코자’ 서클 1기생이 되도록 데려가주셨다. 중학생 때 인형만 가지고 노는 나를 다들 정신연령이 낮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내게서 인형을 빼앗은 적이 없다.

- 인형도 직접 제작하고 소극장 공연부터 대형 인형극 뮤지컬까지 모두 혼자서 한다고 들었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

=인형을 직접 디자인해 메이크업까지 하는 전 과정을 프로듀스하는 것이야말로 인생 경험의 집약이다. 중학교 때부터 인형은 ‘중간 표정’을 갖는다는 걸 자연스레 알았다. 중간 표정, 즉 하나의 얼굴로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하는데, 인형의 표정을 바꿔나가는 건 내가 아니라 관객의 ‘마음’이다.

-아동용과 어른용 인형극을 모두 소화하는 연기의 폭에 다들 감탄한다. 어른을 위한 공연까지 아우르는 이유가 뭔가.

=사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도록 하는 것이 요즘의 교육 아닌가. 나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속속들이 드러내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진정으로 ‘사과’하는 법도 배웠다.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정을 촉촉하게 하는 것, 바로 감동이 마음을 치유한다. 내 인형극이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에게 약이 돼서, 일상의 작지만 밝은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사진작가 레슬리 키가 찍은 다이라 조의 공연 포스터. 레슬리 키는 유명인의 나체 사진을 찍는 작가로 유명하다.

싱가포르 사진작가 레슬리 키가 찍은 다이라 조의 공연 포스터. 레슬리 키는 유명인의 나체 사진을 찍는 작가로 유명하다.

-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의 암전 한 번 없이 2시간을 관객과 호흡한다. 당신만의 특별한 해석인가.

=는 밍크코트를 입고 등장하는 늙은 남창 마리의 이야기인데, 지문 하나하나가 시적이다. 어머니와 아들, 사랑과 원한, 인생의 겉과 속, 거짓과 진실을 1인 인형극 안에서 소화하면서 원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고민했다. 원작자가 살아 있다면 분명 잘했다고 할 거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꿈은.

=나는 가난했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 마음에는 구멍이 없다. 버려진 종이, 시든 꽃, 굴러다니는 도토리는 누가 보면 쓰레기지만 내게는 배열만 달리해도 예술이 된다. 창작을 위한 고민으로 나는 즐거워 죽을 지경이다. 앞으로 인형극이라는 예술을 보급하고 추진하는 것이 내 일이다. 그래서 지난해엔 홋카이도와 규슈를 포함한 전국 10개 지역 500명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문수업 형태의 인형극 워크숍을 했다. 인형극을 ‘아이들이나 달래는 것’이라고 폄하하는 어른들도 감동시키는, 걸어다니는 극장이 되고 싶다.

도쿄(일본)=황자혜 통신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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