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타이에 사는 한국인 친구는 말했다. “타이엔 두 개의 지역이 있어. 방콕과 방콕이 아닌 곳.” 올 초 쿠알라룸푸르(KL)에 갔을 때 말레이시아에 사는 사람도 말했다. “쿠알라룸푸르와 쿠알라룸푸르가 아닌 곳이 있어요.” 한반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심각하다, 심대하다. 그러나 동남아 나라의 수도와 지방의 격차는 너무너무 심각하고 무지무지 심대하다. 지금도 여전히 생태주의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전에 타이의 시골에 다녀온 다음에 스스로 깨달았다. “난 생태주의자가 못 돼.” 이유는 간단했다. 타이 시골의 저개발을 내 몸이 견디지 못했다. 그리하여 적당한 개발은 선이다, 대충 인생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다녀온 이들이 말했다. “KL은 유럽 같아.” 굳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해석해보면, ‘동남아의 무슬림 국가인데도 도시가 깨끗하고 스카이라인이 (멋)있다’쯤이 되겠다. 동남아에 이슬람이란 이중의 선입견을 가지고 가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 혹은 기대보다 훨씬 낫더라, 되겠다. 몇 번이나 그런 말을 들어서 거꾸로 ‘그래, KL 얼마나 좋은지 보자’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가보니 나쁘지 않았다. 쌍둥이 빌딩은 우뚝했고, 부킷빈탕은 화려했고, 반나절 거닌 거리는 유럽 같지는 않아도 동남아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면 아마도 전혀 다른 세계가, 방콕의 바깥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KL에 가기 전에 싱가포르에 갔기 때문일지 모른다. KL의 중심부를 보고, 방콕의 중심부를 알고 있으니, 하나의 위계가 떠올랐다. 모든 동남아의 도시들은 싱가포르를 꿈꾼다. KL은 인구 200만의 싱가포르를 꿈꾸는 것처럼 보였고, 맥락은 조금 달라도 방콕의 중심도 그리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싱가포르는 저개발의 동남아에 국민소득 4만달러의 ‘이상한 점’이다. 호불호가 분명한 그 도시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 어쨌든 그렇다.
어쩌면 리콴유의 희망과 덩샤오핑의 꿈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연안의 거점 도시를 먼저 개발하면 내륙으로 개발이 확산될 것이란 중국 공산당의 전략은 그들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도 KL을 개발하면 다른 곳도 좋아지리라, 타이의 위정자들도 방콕을 개발하면 다른 곳도 뒤이어 잘살게 되리라, 생각했을까. 그랬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KL의 한국인이 말했듯이, “(여기 정치인들에겐) 개발을 확산할 의지도 없어 보이는데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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