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구다.’
의 시작에 나오는 자막이다. 시인인 남편은 그렇게 자기가 외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외계인 남편과 지구인 부인. 외계인 남편이 이상해 보인다면, 지구인 부인은 멀쩡해 보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부인도 심상치 않다. 남편은 부인을 공무원으로 알지만, 부인이 가는 곳과 꺼내는 물건과 하는 작업이 공무원 같지가 않다. 호텔에 들어가 도청을 하는 품새로 미뤄서 무언가 은밀한 직업의 냄새를 풍긴다. 남편이 모르는 부인의 직업은 정부 비밀요원. 결혼한 지가 족히 5년은 넘어 보이는 부부는 이렇게 서로를 모르고 산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정말로 남편은 외계인일까, 남편의 착각이 아닐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외계인 남편 연우(박병은)는 묘령의 여인 세아(장소연)를 만나고 같은 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불륜일까, 아닐까.
안슬기 감독의 독립영화 은 스스로 장르를 ‘범우주적 불륜 드라마’로 분류한다. 외계인이란 설정을 뺀다면, 흔하디흔한 불륜 커플이 등장한다. 모든 욕망을 잃은 듯이 보이는 남편과 무언가 불만에 차 보이는 부인이 있다. 역시나 부인 혜린(조시내)에겐 같은 팀의 직장 상사, 한 실장(선우)이란 애인이 있다. 부인에게 생계를 맡기고 집에서 시를 쓰는 남편 연우(박병은)는 슈퍼에 다녀오다 아파트 단지에서 묘한 분위기의 여인에게 끌린다. 가까운 어딘가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여인 세아(장소연)다. 연우는 자석에 끌리듯 세아에게 다가간다. 다시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불륜을 비현실의 세계로 끌어가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 같은 별에서 온 거죠?” 그리고 연우와 세아는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은 외계인이란 설정을 통해 뻔한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영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고리는 네 명의 남녀를 다시 묶는다. 세아는 임무를 위해 혜린을 죽여야 할 운명에 처하고, 결정적 순간에 혜린은 세아와 남편의 만남을 목격한다. 혜린은 충격에 빠지고, 이 사건을 통해 이들의 관계망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것은 짐작과는 다른 양상이다. 갈수록 외계인이란 설정은 불륜의 이면에 숨겨진 의도에 설득력을 더하는 코드가 된다. 이들의 관계망이 밝혀지는 순간까지,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도 모르는 운명의 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딩의 반전을 통해 운명을 거스르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 영화는 말한다.
안슬기 감독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방학에 영화를 찍는다. 그의 전작인 도 소통을 다룬 영화였다. 도 결국엔 불륜에 빠진 부부의 얘기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영화다. 여기에 외계인 설정은 불륜 드라마의 통속적인 대사에 다른 맥락을 부여하는 구실을 한다. 맥락을 생략하고 들으면 마치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들도 외계인 설정 때문에 영화 안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한 번쯤 자신이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이곳에 잠시 머물러 온 존재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이들은 공감할 영화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감시자 아닐까, 가족을 보면서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런 의문을 품어본 이들도 역시나 공감할 영화다. 한편 독특한 방식으로 불륜을 그리지만, 결국엔 부부 관계를 특권화하는 결말이 아닌가 하는 불편한 느낌이 드는 관객도 있겠다. 9월24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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