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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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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퀸메이커는 F4

덕만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역사극에서 현대극으로 탈바꿈한 <선덕여왕>
등록 2009-09-10 15:13 수정 2020-05-03 04:25
〈선덕여왕〉사진 문화방송 제공

〈선덕여왕〉사진 문화방송 제공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 쌍둥이를 낳으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

영웅의 탄생에는 예언이 빠지지 않는다. 올해 선보인 사극 중 보기 드물게 시청률 40%대에 오른 문화방송 도 이나 처럼 영웅 탄생의 예언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비밀에 싸인 반쪽짜리 예언은 저주에 가깝다. 쌍둥이 언니 천명 공주(박예진)와 동생 덕만 공주(이요원)는 태어나자마자 떨어져 서로를 모른 채 성장한다. 의 비극은 그렇게 얄궂은 운명을 타고난 쌍둥이의 출생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로 예언을 바꾸는 덕만

절대권력을 쥔 천신황녀 미실(고현정)은 황실의 약점인 쌍둥이의 존재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하늘을 이용하나 하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미실은 월식과 일식 같은 천기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른다. “정치를 하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거나 아니면 두려움으로 위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가 백성을 통치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포용이 아닌 공포.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해 분노마저 할 수 없게 만든다. 미실의 철벽권력은 정통성을 가진 왕가 핏줄인 남편 세종(독고영재)과 책략가인 동생 미생(정웅인), 화랑의 수장인 정부 설원(전노민)에 의해 더 단단해진다.

하지만 미실에 맞서는 덕만은 하늘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예언을 바꾼다. “개양자립해야 계림천명하고 신천도래, 태양의 자식이 서야 하늘이 밝아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라며 스스로 예언의 반쪽을 만들어낸다. 쌍둥이 언니 천명 공주의 억울한 죽음 이후 덕만은 더 이상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슬퍼하지 않는다. 미실처럼 하늘의 뜻을 이용하고 사람을 모아 미실에게 대적한다.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끊임없이 죽을 뻔한 위기에 놓였던 덕만은 동지들을 얻어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한다. 익숙한 사극 속 주인공의 운명 그대로다. 하지만 은 꽃미남 화랑들을 통해 역사물도 아니고 현대물도 아닌 새로운 장르를 열어간다.

미실의 카리스마로 끌어왔던 은 25회를 넘기면서 왕이 되려는 덕만에게 극의 중심을 옮겨놓는다. 이때부터 은 7세기 신라에서 21세기 현재로 공간이동을 한다. 미실과 덕만의 상반된 리더십이 대립하던 시대극은 꽃미남 화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덕만을 왕으로 추대하는 충직한 ‘훈남’ 신하 4명이 생기면서 에선 익숙한 현대극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덕만이 남장을 한 낭도로 김유신(엄태웅)과 애틋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땐 을 연상시키더니 이제는 사극판 가 됐다.

의 F4는 덕만을 연모하는 김유신, 비천지도의 수장 알천(이승효), 무술과 의술이 능한 비담(김남길), 가야를 다시 세우려는 비밀결사 조직 복야회의 수장 월야(주상욱)다. 강한 카리스마로 상대방을 눌러 복종하게 만드는 미실과 달리 덕만은 인자하면서도 강단 있는 품성으로 이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모은다. 극의 흐름이 느슨해질 때쯤 영화 원정대처럼 한 명씩 등장해 ‘반미실 세력’으로 꾸려지는 모습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극 초반부터 덕만의 곁에 있던 김유신은 무술에 능하고 강직한 인물이다. 덕만을 살리기 위해 가족과 나라까지 버리려 했던 유신은 덕만이 왕이 되겠다고 하자 연모의 마음을 접고 신하로 곁에 남는다. 김유신이 “내게는 왕을 모시는 일도 내 모두를 요구하는 것이고, 연모를 하는 것도 내 모두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누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너를 택했으나 너는 왕을 택했기에 나는 너를 이제 나의 왕으로 택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덕만을 끌어안고 우는 장면은 멜로드라마 부럽지 않다.

F4가 한자리에 모이자 시청률 51.7%까지

천명 공주의 억울한 죽음을 낭장결의로 밝히려 했던 비천지도의 화랑 알천은 대장부다운 기개를 가졌다. 백제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나팔을 불던 야성적인 모습으로, 알천을 연기한 신인 이승효는 일약 스타가 됐다. 반면 출생의 비밀을 가진 비담은 사람을 믿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건방지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그는 위기의 순간에선 살기가 느껴질 만큼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훗날 김유신과 대적하며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단 2회만의 출연으로 F4를 완성한 월야는 김유신과 같은 가야 출신이다. 아직까지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 역시 덕만을 왕으로 만드는 ‘퀸메이커’로 활약할 예정이다.

덕만을 중심으로 F4가 완성되자 시청률은 상승세를 탔다. 유신·알천·비담·월야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덕만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날은 분당 시청률이 51.7%까지 치솟기도 했다. 영화 , 드라마 처럼 도 꽃 같은 젊고 용맹한 전사들로 시청률을 띄우는 중이다.

현재 의 재미는 덕만이 F4를 이끌어 미실을 몰아내가는 전개다. 조만간 천명 공주의 아들 김춘추(유승호)가 등장해 덕만의 지략가로 힘을 보태면 덕만파는 미실파에 맞서 강력한 결속력을 갖게 될 예정이다. 제작진은 “당초 50부작으로 기획됐던 이 F4의 활약에 힘입어 12회를 연장해, 연말까지 62회를 방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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