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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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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란 짐승의 절박한 피로

포근하거나 지긋지긋하거나, 모성과 소읍의 두 얼굴로 완성한 미스터리, 봉준호의 <마더>
등록 2009-05-28 17:47 수정 2020-05-03 04:25

소읍의 어둠은 봉준호 영화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의 추억을 되살리듯 도 소읍의 어둠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어둠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진실을 감추는 공기다. 경찰의 터무니없는 수사, 진실보다는 돈을 좇는 변호사, 그리고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여기에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 그것의 또 다른 얼굴인 어미의 광기가 더해진다. 그래서 추적자는 의 형사가 아니라 엄마다. 오로지 자신밖에 믿을 존재가 없는.

〈마더〉

〈마더〉

걷고 걷고 또 걷는 엄마

어둑한 시골의 밤길, 역시나 소녀가 죽는다. 소녀를 뒤따르던 도준(원빈), 그러나 진실은 어둠에 묻힌다. 소읍의 약재상에서 일하는 혜자(김혜자)의 정신능력이 떨어지는 아들인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너는 난데… 세상천지 너하고 나하고…” 둘뿐인 인생을 살아온 혜자는 아들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나선다. 그를 “어머니”라 부르는 동네 형사는 “이미 끝난 사건”이라고 매정하게 말하지만, 아들의 결백을 밝히려는 어미의 집념은 요지부동이다. 혜자는 도준의 친구인 진태(진구)를 진범으로 의심하지만 진태가 진범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진다. 사건의 진상과 함께 엄마의 비밀도 한 꺼풀 두 꺼풀 드러난다. 엄마와 진태 사이의 모호한 관계, 엄마가 아들에 집착하는 이유인 죄책감이 드러난다. 경찰도, 이웃도, 누구도, 아들이 범인이 아니란 사실을 믿지 않는 가운데, 고립무원의 모성애가 진범을 찾아나서는 진짜 얘기가 시작된다.

도시와 시골이 혼존하는 소읍은 우리가 유래한 곳이고, 여전히 소박한 이들이 사는 땅이다. 최소한 봉준호 영화는 그것을 전제한다. 의 동네는 마치 의 그곳처럼 1980~90년대 분위기를 풍기지만, 의 배경은 지금 여기의 어딘가 소읍이라 ‘여겨진다’. 더구나 의 소읍은 의 모성애와 조응하는 공간이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그곳엔 감춰진 비밀이 있다. 봉준호가 들여다본 소읍의 속살은 할 일 없이 빈둥대다 본드를 빠는 청년, 할머니를 부양하려고 몸을 파는 소녀가장, 동반자살을 기도해 아들에게 농약을 먹이는 엄마의 얼굴이다. 그렇게 그곳은 숨막히게 처연한 생존의 공간이다. 이러한 소읍의 두 얼굴은 봉준호 감독의 표현처럼 “가장 포근하거나 가장 지긋지긋한” 모성의 두 얼굴과 닮았다.

는 혜자의 영화다. 오로지 아들만, 그것도 어딘가 모자란 아들만 보면서 살아온 혜자의 막막한 인생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는 순간들은 아름답다. 아들을 위한 엄마의 행동이 시작될 때마다, 마치 단락의 인트로처럼 혜자는 광막한 배경에 한 점의 피사체로 걷는다. 광막한 배경은 때로 곰팡이 핀 소읍의 콘크리트 벽이고, 울창한 녹색이 고립감을 더하는 산이며, 마치 기하학적 점처럼 동그란 묘지가 가지런히 박힌 공동묘지다. 이렇게 결연히 나선 엄마가 어둠의 진실로 들어갈수록 클로즈업은 잦아진다. 감독의 말대로 “태양열을 한 점에 모아 태우는 돋보기처럼” 카메라는 엄마의 표정에 집중한다. 배우 김혜자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도 절박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만든다.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관련자를 추궁하는 순간엔 저승사자 같은 표정을 짓지 않아도 그런 얼굴이 나온다. 한없이 푸근한 ‘국민엄마’를 먼저 떠올리는 김혜자의 얼굴엔 원래 엄마의 피로가 새겨져 있었단 사실을, 아들을 향한 지독한 모성애 뒤에 타인을 향한 무서운 냉정함이 숨어 있었단 사실을 새삼 보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 모성의 광기에서 화들짝 깨어난 다음의 황망한 얼굴은 차라리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처연하다.

봉준호 감독도 긴장과 이완의 이중주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서스펜스의 긴장으로 관객의 숨통을 쥐었다가 슬며시 끼워넣은 유머로 숨통을 풀어놓는 연출력은 여전하다. 그는 쓰러진 물통에서 흘러나온 물로도 팽팽한 긴장을 만들고, 한마디 대사로 적잖은 웃음을 안긴다. (스포일러 때문에 풀어놓기 힘든)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술은 훌륭하다. 붉으면서 푸른 영상에는 어미의 절박한 심정이 깊이 스며 있다. 다만 에 견주면, 조연 캐릭터의 생명력이 약하고 유머의 강도가 낮아졌다. 그래도 봉준호 감독도, 김혜자 선생도 보아온 것, 해야 할 것을 해냈다. 다만 의 공개 전에 쏟아진 기대와 칸영화제에서 전해진 호평에 견주면, 상상 이상의 무엇을 해냈는지는 의문이다.

얼마나 허탈한 진실이고 처연한 인생인가

봉준호의 영화에선 정상성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이들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구실을 해왔다. 에선 범인으로 몰렸던 ‘추리닝’ 차림의 백광호가 있었고, 에선 한강변 노숙인이 나왔다. 에서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 같은 이들이 등장해 추적의 계기를 준다.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인물들은 에서 어느 순간에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의 야누스적 얼굴은 너무 쉬운 영화적 장치로 쓰여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인공 도준의 캐릭터도 이러한 특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진범의 순수한 얼굴도 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가 깔아둔 복선도 ‘봉준호표’ 영화에 익숙한 이들이면 눈치채기 어렵진 않다. 영화에 필수불가결해 보이지 않는 한두 장면, 자꾸만 반복되는 이름들에 주목하면 결말도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예상을 했어도, 아들과 엄마를 비추던 시선이 역전돼, 아들이 갇혔던 창살의 프레임에 엄마가 갇히는 순간은 날카롭다. 망각의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고 춤추는 엄마와 엄마들의 마지막 장면은, 모성의 모든 얼굴을 창 너머 비친 그림자로 응축한다. 얼마나 허탈한 진실이고 얼마나 처연한 인생인가. 5월28일 개봉.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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