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용산 범국민대책위’ 공동 집행위원장
‘별’을 9개나 달고 나온 그의 눈빛은 선량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에서 농담으로 ‘대통령도 전과 14범인데 당신도 별 5개 더 달고 대통령 하라’더군요.”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 지도 벌써 3주째. 그는 “2월26일이 큰딸 생일이었고 아이가 생일 선물 대신 아빠와 삼겹살을 같이 먹고 싶어했는데,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고2가 된 큰딸은 아버지 직업을 적어내라는 학교의 주문에 “우리 아빠는 MB 악법 저지를 위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고 써낼 만큼 당차다. 엄마에게는 “아빠가 잘못한 게 없는데 판사에게 비굴하게 보이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단다.
불법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경찰 수배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박래군 공동 집행위원장. 검찰이 박 위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3월12일까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구인장을 발부했다. 법원 출두를 거부한 박 위원장은 3월12일 서울 시내 한 조용한 장소에서 을 만났다. 그는 용산 참사가 발생 50여 일 만에 묻혀가는 사회 분위기를 아쉬하면서 동시에 대책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작용했다는 자책감을 토로했다.
=50일이 넘은 상태에서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철거민이라는 게 주는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사람들이 철거민과 자기는 다른 사람으로 인식한다. 중산층에게는 ‘저 문제가 내 문제’라는 의식이 없다. 그냥 집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금의 재개발 구조에서 ‘나도 언제든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철거민과 내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폭력의 프레임’이 있다. 이 점은 정부가 성공했다. 전철련을 폭력·테러 집단으로 마녀사냥해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검경의 의도가 주효했다. 시민단체들마저 폭력 프레임에 맞춰 (대책위 등과는) 거리를 두려는 측면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기에는 폭력집단(으로 비친 대책위)에 들어오는 데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있다. 동시에 대책위로서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싸움으로 만들지 못한 데 대해 자성하고 있다.
=지배세력은 계속 시민들을 분할하려 한다. 시민들도 경쟁사회에서 내가 사는 길로 연대보다는 나만의 요행수를 찾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철거민이 죽었고, 비정규직도 실업자들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분노는 하지만, 이를 저항으로 표출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다.
=‘87년 체제’에서 중산층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결합하지 못하고 분리됐다. 그러면서 민주화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머물면서 경제·사회적인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취약했다는 게 이명박 정부 들어 드러났다. 지난해 중산층의 촛불 열기와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생겨나는 생존권적인 투쟁을 결합해야 한다. 투쟁의 불씨를 이어간다면, 큰 저항의 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책위의) 초기 대응이 아쉽다. 우리가 치밀하지 못했다. 분노를 투쟁으로 이어가려는 측면이 강했다. 초기에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끌어모으는 방식으로 갔어야 한다. 투쟁 중심으로 강하게 표출되다 보니, 사람들이 쉽게 결합하지 못하게 한 측면이 있다. 지금은 많이 고립됐고 잊혀져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시에 폭력 프레임, 공권력에 의한 탄압, 여론 공세 등 여러 가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한 경찰이 박래군 위원장의 수배 전단을 들고 서 있다.
=처음엔 많이 걱정했다. 열사 투쟁을 하면 유가족이 지칠 뿐만 아니라, 경찰 등이 사돈의 팔촌까지 들쑤시며 유가족을 흔든다. 지금 보면, 유가족들이 대책위를 믿고 흔들림 없이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희생자들이 불에 타 죽고, 정부는 주검도 확인해주지 않으면서 강제 부검까지 했다. 죽은 이들에 대한 매도가 유가족들에게 강한 분노를 만들었다. 이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하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요구는 여전하다. 대통령이 나서 한마디 사과라도 하면 장례라도 치러 고인들을 모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고인들에 대한 모독과 명예훼손이 계속되고 있다.
=대책위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보다는, 유가족의 분노와 슬픔을 안고 대신 투쟁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앞으로 (대책위의)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시민단체들과 공조하려 한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재개발 문제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용산 4구역 투쟁을 제대로 해야 한다. 폭력이 없는,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세입자 권리가 보장되는, 생계 대책을 먼저 만들어가는 그런 재개발을 찾기 위한 투쟁이다. 어제(3월11일)부터 4구역에서 철거가 재개됐지만, 아무런 교훈 없는 철거 재개는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철거 저지 투쟁을 만들어갈 것이다.
박 위원장은 시민의 생존권과 사회권을 요구하는 자신의 주장이 세계인권선언이나 각종 인권협약 등에서 벗어나지 않는데도, 이런 문제제기를 하고 저항한 데 대해 검찰은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은 구인장을 발부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했다. 더구나 남대문경찰서의 소환 요구에 두 차례나 응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집회와 시위를 불온시하고 진압의 대상으로 보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냐”며 “현 정권의 ‘형식적 법치’가 그걸 강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한다면 당연히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가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3월9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라고?” 검찰이 박 위원장의 출국금지 명령이 떨어졌음을 막 집으로 알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여권은 있어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없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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