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의 이나 비의 정도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 노래들이 무해하지도 않지만, 유해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악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일률적으로 판정 내려서는 안 된다고 봐요.”
‘매직 스틱’, ‘언더 마이 스킨’이 근거
12월17일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음반심의위 위원으로 활동하던 임씨는 지난 11월 청소년보호위가 이 노래들에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린 데 항의해 최근 위원직을 사퇴했다. 임씨는 “대중음악이 갖는 자극이 1970년대와 2008년에 같을 수 없고, 그때와 지금의 청소년은 다르다”며 “따라서 사회 변화를 심의 기준에 반영하거나 전체적인 심의의 결과가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적 가치관으로 문화상품에 딱지를 붙이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되는 노래는 19살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해서는 안 되고 지상파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에서 방송할 수도 없다.
청소년보호위는 의 노랫말 속 ‘매직 스틱’이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고, 은 노랫말이 전체적으로 선정적이라는 점을 유해매체 판단의 근거로 밝혔다. 그러자 음반을 낸 SM엔터테인먼트는 12월15일 서울행정법원에 유해매체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SM 쪽은 소장에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가사에 선정적 표현이 있다고 지적하지만, 실제 가사는 사랑이나 키스 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고 음란한 자태나 성행위 등에 대해선 묘사하지 않고 있다”며 “가사 중 ‘아이 갓 유 언더 마이 스킨’(I got you under my skin)이라는 부분은 ‘너무 사랑해서 나의 피부 속에 너를 갖고 싶다’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너에게 반해버렸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보호위의 시각이 편협하다는 주장이다.
상상력까지 통제… “문화운동 필요해”문화계는 이번 사태가 새 정부 들어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밀어닥치는 보수화의 물결이 문화 쪽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촛불집회와 일제고사 거부 등의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온 폭력적 억압의 과정이 문화판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전반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갖고 있는 문화적 보수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며 “청소년 보호라는 논리를 내세워 젊은 세대의 리버럴한 에너지를 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강화로 문화계가 침체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동방신기 음악에 대한 개인적 지지 여부를 떠나 문화운동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의 기준의 자의성과 판정의 기술적 실효성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과거 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노랫말도 여러 차례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들이 케이블 채널이나 인터넷 등 뉴미디어를 통해 노래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충분한 상황에서 판매 및 방영금지 조처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청소년들이) 그 음악들을 듣는다고 실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정부가) 지레 겁먹고 시민의 행동과 상상력까지 통제하려는 게 문제”라며 “청소년들을 더 혼란스럽게 할뿐더러 사회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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