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법정 드라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수오 특유의 유머를 찾기는 어려우며 할리우드 법정 영화의 드라마틱한 전개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한 남자가 유치장과 법정을 오가며 투쟁하는 과정이 반복될 뿐이다. 극적인 반전도, 관객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진실도 없으며 수차례의 심문과 증언들, 주장과 반론들이 영화 상영 시간인 140여 분을 채운다.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시작하는 게임이며, 이 경우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주인공이 결백을 호소하는 그 집단도 알아줄 것인지다. 영화는 정면 돌파의 길을 선택한다. 140여 분 동안, 다른 장치 없이 일본 사법제도가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판결이 날 때까지의 과정을 단계별로 따라가는 것이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가네코(가셰 료)란 개인을 통해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끝까지 건조한 태도로 진실에 접근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아침, 가네코 테페이(가셰 료)는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탄다. 출근길 사람들로 꽉 찬 전철에 마지막 승객으로 겨우 타는 바람에 그의 상의가 문에 낀다. 사건의 시작은 이때부터다. 몸을 움직이며 옷을 빼내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그때 그의 앞에 서 있던 소녀가 “그만하세요”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잡는다. 영문을 모르는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지만 따라 내린 소녀로부터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그는 곧바로 유치장에 구금된다. 자백을 강요하는 경찰에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던 그는 현행범으로 기소되고, 치한 원죄(寃罪) 사건에서는 일본 형사재판의 문제가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믿는 변호사(야쿠쇼 고지)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과 동일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긴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의 목적은 분명하다.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99.9%가 유죄를 선고받는 일본 사법제도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피해자의 증언만으로도 기소할 수 있는 치한 사건의 경우는 재판을 받지 않아도 이미 유죄를 선고받은 것과 다름없는데, 이 불가능의 지점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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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가정이 사실로 둔갑하는 데에는 경찰·검찰·변호사의 이상한 공모가 있다. 유죄를 인정하면 조용히 끝나지만 무죄를 고집하면 막대한 시간을 들여 재판을 받게 되고 무죄 선고 확률도 거의 없다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라고 조언하는 변호사나, 형사사건을 꺼리고 민사사건만을 맡으려는 변호사. 사건의 사실을 밝히기보다는 사건 정황에 대한 남자의 진술을 전혀 다른 뉘앙스의 문장으로 정리하고 구류를 늘려서 자백을 받으려고만 하는 경찰. 판사 최대의 사명은 “죄가 없는 사람을 벌하지 않는 것”이라며 몇 차례의 형사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판사를 좌천시키는 법원. 여기에 피의자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족이라는 사실, 그의 집에서 음란한 비디오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등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실들이 그의 유죄를 주장하는 증거로 사용된다.
자신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과정에서 순진한 청년은 일본 사법제도의 관료주의와 폭력성에 눈을 떠간다. 자신이 벌써 몇 차례 사건 현장에 대한 구술만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무고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되는 현실에 대해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싸우는 것이다. 자신의 무죄를 말해줄 수 있는 증인을 찾고 재연 비디오를 만들어 당시 자신이 서 있던 위치에서 피해자가 주장하는 행동이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방청석에는 되도록이면 많은 인원이 앉아서 판사에게 사건의 관심도를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소한 지혜도 배운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국가가 범죄를 묻는 형사사건의 피의자라는 오명을 안고 사는 한 자신이 싸워야 할 상대는 결국 국가주의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개인적인 사건으로부터 제도로, 사회로 문제의식을 확장해나가는 영화는 일체의 휴머니즘적 시선을 배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법정 안 방청객의 냉정한 입장에 서도록 한다.
신문 사회면에서 본 기사를 바탕으로 영화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감독이 오랫동안 여러 재판을 참관하고 자료조사를 하며 쌓아올린 이야기답게, 영화는 명료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그건 영화를 감싸안는 시작과 끝의 문구들을 통해서도 선명하게 전해진다. “열 명의 죄인을 놓친다 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이 심판받길 원하는 그 방식으로 나를 심판하기를.”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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