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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음악여행 라라라>에 쏠린 눈, 음악방송에 대한 기대와 희망
등록 2008-12-11 08:44 수정 2020-05-02 19:25

문화방송이 새롭게 선보인 (이하 )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1월26일 첫 전파를 타자마자 인터넷에선 뜨거운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거기엔 나도 한몫 보탰다. 방송을 본 직후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새벽 2시가 가까웠음에도 잠자리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 반가우면서도 불편했던 이유를 블로그에 다다다다 쏘아댔다. 입이 근지러워진 이들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인터넷 공간에 에 대한 갖가지 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대체 의 무엇이 이처럼 많은 이들의 손과 입을 바쁘게 만들었을까? 를 뜯어보며 단서를 찾아보자.

‘라디오스타’ 4인방의 입담은 <음악여행 라라라>에서도 계속된다. 이들의 입담이 프로그램 성격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 논란이 한창이다. 문화방송 제공

‘라디오스타’ 4인방의 입담은 <음악여행 라라라>에서도 계속된다. 이들의 입담이 프로그램 성격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 논란이 한창이다. 문화방송 제공

는 2007년 3월 폐지 이후 끊겼던 문화방송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맥을 이으면서도 완전히 색다른 틀거리를 취한다. 방송은 일반적인 무대가 아닌 녹음실에서 진행된다. 방청객은 없다. 뮤지션은 녹음실 안에서 음반을 녹음하듯 공연을 하고, 카메라는 연주자들의 표정과 손짓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음악영화 에서 주인공이 스튜디오 녹음을 하는 장면이나 세계 최정상급 음악인들을 녹음실에서 만나는 음악 다큐멘터리 를 떠올리게 한다. 방송 내내 1명의 음악인에 집중하는 방식도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다.

이런 용감한 시도가 있기까지는 여운혁 책임 프로듀서(CP)의 공이 크다. 등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그는 틈만 나면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복원”을 외쳤다. 2007년 숱한 화제를 뿌린 신인 발굴 프로그램 도 그가 기획했다.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들이 자웅을 겨루는 서바이벌 게임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슈퍼키드, 스윗소로우, V.O.S 등 ‘쇼바이벌표’ 스타들도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시청률 하락을 이유로 폐지됐다. 여 CP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2008년 를 출범시켰다.

녹음실 세트장, 첫 출연자 이승열

가 1회부터 화제를 모을 수 있었던 데는 첫 출연자 이승열의 공이 크다. 그가 모던록 버전으로 편곡해 부른 원더걸스의 는 포털 인기검색어로 올랐다. 사실 이승열은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 사이에선 실력과 진정성을 갖춘 음악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다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제작진이 이승열을 첫 출연자로 고른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음악적 역량은 뛰어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찾아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에 기대하는 것도 이 대목일 터다. 출연 요청 게시판에는 벌써부터 400건 가까운 글이 올랐다. 대부분의 글에는 이런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12월3일 방송된 2회를 보면 제작진의 의도가 다소 모호해진다. 두 번째 주인공은 윤종신이었다. 4명의 MC 가운데 하나다. 윤종신은 ‘예능 늦둥이’ 이전에 훌륭한 음악인이고, 최근 11집 앨범도 냈다. 다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아니다. 윤종신을 선정한 것은 MC에 대한 예우 정도로 짐작된다. 초대손님으로는 윤종신의 음악 동료인 하림이 출연했다. 첫 방송 이후 다음 출연진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일었는데, 처음엔 하림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윤종신이 동반 출연하는 형태로 알려졌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 애초 알려진 대로만 갔어도 일관된 콘셉트를 세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2회는 번외 성격이 강했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다. 다음 출연진을 지켜볼 일이다(3회는 장기하와 얼굴들, 4회는 넬이 녹화를 마쳤다고 한다).

는 크게 두 뼈대로 이뤄진다. 녹음실 공연과 녹음실 바깥에서의 토크쇼다. 찬반 논란은 대부분 MC들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관한 것이다. 제작진은 ‘라디오스타’의 MC인 윤종신·김구라·김국진·신정환을 그대로 데려와 버라이어티쇼의 재미를 차용하려 했다. 시청률을 의식해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도 붙잡겠다는 의도야 십분 이해된다. 문제는 1회 때 보여준 진행 방식에 있다. MC들은 녹화 전에 미리 이승열의 음악과 생각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질 리 없다. 대신 MC들은 ‘라디오스타’에서처럼 웃기려는 멘트를 남발했다. 이승열이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얘기를 중간에 끊었고, “뜨지 못했다” “흥행 실패” “음악에 대한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따위의 ‘생각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이 프로그램의 반대론자들은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MC들의 산만한 진행이 음악에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찬성론자들은 “그나마 MC들 때문에 이 방송을 많이 본다. 좋은 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MC들의 입담은 필요하다”고 맞받는다. 제작진은 이런 논란에 대해 “앞으로는 4명 집단 체제가 아니라 출연자에 잘 맞을 것 같은 MC 2명씩 짝을 지어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종신은 발라드, 김구라는 록, 신정환은 댄스·힙합, 김국진은 트로트 분야를 전담할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MC들이 깊이와 재미를 두루 꿰어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발라드 종신, 록 구라, 트로트 국진?

그게 신드롬이건 논란이건 현상에서 엿볼 수 있는 건 음악방송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천편일률적인 음악방송에 물린 시청자는 차별화된 무엇을 원한다. 질리도록 TV 화면에 얼굴을 들이대는 아이돌·엔터테이너 말고 ‘진짜’ 음악인에 대한 갈증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를 조금이라도 충족해줄 낌새가 보이면 사람들은 눈을 반짝인다. 이런 이유로 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것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행보다. 가 초심을 잃고 예의 매너리즘으로 돌아간다면 시청자는 냉정하게 돌아설 것이다. 제작진이 긴장의 고삐를 더욱 조여야 할 이유다.

사족 하나. 지면을 빌려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출연 신청을 한다. 추천 음악인은 이장혁과 못(MOT). 이승열만큼이나 실력과 열정이 뛰어난 이들이다. 이장혁이 몸담았던 전설적 밴드 ‘아무밴드’ 1집과 명곡 이 실린 솔로 1집, 성탄절 즈음 나올 솔로 2집, 한국에서 가장 독창적인 음악 중 하나인 못 1집과 2집을 일단 들어보시라. 출연 여부 판단은 그 다음에….

서정민 한겨레 기자 blog.hani.co.kr/west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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