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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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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인어의 사랑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착한’ 애니메이션 신작 <벼랑 위의 포뇨>
등록 2008-12-11 17:37 수정 2020-05-03 04:25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신작 (이하 )로 돌아왔다. 는 사랑에 대한 영화이자 사랑스런 애니메이션이다. 노년의 거장은 더 이상 소년과 소녀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고 세계를 구하는 무거운 임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다만 소년과 소녀의 귀여운 사랑 혹은 우정을 통해서 ‘사랑과 책임’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는 인어가 왕자를 사랑해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의 이야기 구조를 빌려오지만, 보다 희망적인 결말로 끝난다. 소스케와 포뇨, 다섯 살 소년·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자신을 버리면 사랑을 얻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거나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해 격심한 고난을 감내하던 전작들에 견줘 ‘착한’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다.

소스케가 사랑을 잃지 않으면 포뇨는 물거품이 되지 않는다.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사랑과 책임’을 강조한다.

소스케가 사랑을 잃지 않으면 포뇨는 물거품이 되지 않는다.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사랑과 책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되어 소스케 만나고 싶어

원래는 ‘벼랑 위의 소스케’. 바닷가 벼랑 위의 외딴집에는 소스케가 산다. 소스케의 아버지는 선장으로 바다에 나가 있어 소스케는 양로원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산다. 어느 날 소스케는 바다에 나가 놀다가 파도에 밀려온 포뇨를 만난다. 포뇨는 소스케가 붙여준 이름. 포뇨는 작고 동그란 입술에 통통한 볼살, 여기에 붉은 머리를 가졌다. 영화에선 “포동포동해서” 포뇨라고 부른다고 나온다. 포뇨는 호기심이 많다. 원래 인간이었던 아버지 후지모토의 감시를 피해 물위로 나온 포뇨는 갑자기 쓸려오는 바다 청소 그물에 걸리고 급기야 병 속에 갇혀버린다. 마침 바닷가에 놀러갔던 소스케가 병에 갇힌 포뇨를 구하지만, 금붕어로 착각한다. 소스케는 앙증맞은 포뇨를 좋아하게 되고, 포뇨도 소스케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마법을 쓰는 후지모토는 해일을 일으켜 포뇨를 바닷속으로 데려가버린다.

그러나 포뇨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어공주를 닮은 어머니와 인간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포뇨는 인간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을 가진 아이다. 포뇨는 인간이 되어 소스케를 만나기 원한다. 소스케의 다친 손가락을 빨다가 인간의 피를 마시고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포뇨의 꿈을 더 이상 막기는 어렵다. 사랑은 존재를 바꾸고 포뇨는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포뇨는 이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 ‘브륀힐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포뇨’라고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몸마저 변한다. 포뇨의 지느러미에서 인간의 손발이 쑥쑥 튀어나온다. 물론 아버지 후지모토가 지구를 정화하기 위해 모아둔 생명의 물의 힘이지만, 포뇨의 간절한 마음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 변화다.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답게 는 환경오염의 문제를 깔고 있다. 원래 인간이었던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는 인간 때문에 물과 공기가 오염됐다고 여기고, 생명의 우물을 통해 우주 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포뇨가 생명의 우물을 건드려 우주 질서가 무너지고 해일이 일어난다.

마을에 폭풍과 해일이 덮치고, 소스케와 엄마는 물난리를 만난다. 하지만 벼랑 위의 집을 ‘폭풍우 속의 등대’로 여기는 소스케 엄마 리사는 소스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 소스케는 포뇨를 다시 만난다.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포뇨의 모습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이들은 서로 금방 알아본다. 그리고 포뇨가 달려가 소스케를 껴안는 장면은 순진무구한 끌어당김이 무엇인지 한눈에 보여준다. 이들은 벼랑 위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지만, 다시 소스케의 엄마는 할머니들이 걱정돼 양로원으로 떠난다. 이제 소스케와 포뇨만이 집에 남는다. 마침 거세진 폭풍으로 엄마는 길을 잃는다. 보통 미야자키의 영화라면 여기서 아이들이 극심한 고난을 겪게 되지만, 에서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이야기의 굴곡이 적지만, 그렇다고 감동이 얕은 것은 아니다.

의 세계는 적이 없는 세계다. ‘미야자키 월드’에서 인간 세계는 대개 오염된 세계였다. 그러나 에 등장하는 마을엔 악한 인물이 없다. 아니 영화에 악당 캐릭터가 없다. 그리고 해일과 폭풍에 마을이 가라앉지만, 탁류가 아니라 투명한 물에 잠긴다. 그렇게 마을이 바다에 잠겨도 응징의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 그곳은 오히려 양로원 할머니들의 병이 낫는 해원의 공간이다. 그래서 도시가 가라앉는다는 비극성보다는 신비한 세계에 들어간다는 두근거림이 앞선다. 인간이 되기 위해 포뇨는 중요한 것을 잃는다.

“물고기도, 사람도 다 괜찮아요”

그러나 어떠한 망설임도 없다. 포뇨의 운명은 소스케에게 달렸지만 소스케도 부담을 느끼거나 고뇌하지 않는다. 그저 “물고기 포뇨도, 사람 포뇨도 다 괜찮아요”라고 즐거워한다. 그것은 무구한 마음으로 자아를 버려야 사랑을 얻는다는 거장의 충고처럼 들린다.

는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에 견줘도 단순한 이야기다. 그러나 격랑이 없다고 울림이 얕지는 않다. 흐르는 물처럼 서서히 흘러 어느덧 깊은 감동에 이른다. 여기에 ‘연필로 영화를 만든다’는 원칙으로 만든 그림은 순한 이야기에 순정한 느낌을 더한다. 앙증맞은 포뇨뿐 아니라 돌고래 파도의 일렁임도 오랫동안 기억된다. 감독의 말대로 에서 “바다는 배경이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이다”. 등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히사이시 조가 다시 음악으로 그림에 리듬을 불어넣는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4년 만의 신작인 는 일본에서 1200만 명을 동원했고, 2008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12월18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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