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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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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미스들, 잔치로구나

‘예능 초보’ 여성들의 관계지향적 리얼 버라이어티 SBS ‘골드 미스가 간다’
등록 2008-11-28 15:05 수정 2020-05-03 04:25

사람들은 연애에 관심이 많다. 아니, 엄밀히 말해 남의 연애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함께 초병 근무 서는 신병부터 제휴업체 김 대리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유무가 초미의 관심사고, 동네 부동산 사장님부터 10년 계주까지 동네 선남선녀 중매에 두 발 벗고 나선다. 하기야 누가 봐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면 나서서 좋은 짝을 찾아주고 싶은 사명감이 생길 법도 한데, 그건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작대기’부터 데이트 리얼리티 쇼까지 현재 예능 프로그램은 일반인부터 연예인까지 출연자들의 연애 상담과 맞선 만남을 주선하며 진화해왔다. 특히 SBS 의 ‘골드 미스가 간다’는 여자 연예인 6명을 주축으로 진행되는 데이트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흥미를 선보인다.

‘골드 미스가 간다’는 기존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양정아(왼쪽 세 번째), 진재영(오른쪽 두 번째), 장윤정(맨 오른쪽) 등을 발굴해냈다. SBS 제공

‘골드 미스가 간다’는 기존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양정아(왼쪽 세 번째), 진재영(오른쪽 두 번째), 장윤정(맨 오른쪽) 등을 발굴해냈다. SBS 제공

양정아·진재영·예지원… ‘낯선 사람들’

양정아·신봉선·송은이·진재영·예지원·장윤정이 출연하는 ‘골드 미스가 간다’는 일단 재미있다. 그런데 이 재미가 기존 데이트 프로그램과는 좀 다른 데 있다는 점에서 ‘골드 미스가 간다’는 독특하다. 먼저 기존의 버라이어티에서 남자들이 주축이 되던 것과는 달리 출연진이 모두 여자라는 점은 프로그램의 감수성 자체를 차별화하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잘 만나지 못했던 출연진들, 양정아와 진재영, 예지원과 장윤정 등이 발산하는 재치와 개성이 ‘골드 미스가 간다’를 지탱하는 힘이다. 사실 송은이와 신봉선의 역할은 이 ‘낯선 사람들’의 개성을 발견하고 개발시켜주는 역할에 가깝다. 특히 출연진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양정아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강한 이미지를 벗고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신선한 캐릭터로 거듭나고 있다. 진재영도 마찬가지다.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던 그녀가 흥분하면 쏟아내는 부산 사투리는 그녀를 명랑만화의 캐릭터처럼 만든다. 남들과 다른 차원에서 지내는 것 같은 예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독특한 어휘를 시기적절하게 구사하는 장윤정 또한 ‘골드 미스가 간다’로 재발견하는 예능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들은 프로그램이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가 맺어지는 공간이 기숙사를 연상시키는 공간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그들은 한 방에 두 명씩 룸메이트 생활을 하고, 거실에 모여 수다를 떤다. 밖에 나간다 해도 찜질방 같은 닫힌 공간이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경우는 게임을 할 때뿐이다. 맞선을 볼 때 외에는 혼자 있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정적이고 진행을 맡은 신동엽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신동엽의 역할은 철저히 그녀들을 보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6명의 출연자들은 걸핏하면 그를 놀리고, 신동엽은 여자들 틈에서 당황해하다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권력관계의 전복은 이 프로그램이 기존 버라이어티에서 여성 출연자를 다루는 방식의 전복을 시사하며 ‘골드 미스가 간다’를 좀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프로그램의 방향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6명의 출연자들이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한 생각을 나누던 ‘골드 미스가 간다’는 차츰 이 ‘예능 초보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건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쇼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제작진은 그들의 대화를 잡아내고, 감각적인 편집과 자막으로 순간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런 구성은 명백히 문화방송의 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한국방송의 을 비롯해 M.net의 이나 MBC에브리원의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받은 영향의 결과지만, ‘골드 미스가 간다’가 돋보이는 것은 이런 혼합된 형식을 통해 어느 프로그램들보다 ‘관계’에 집중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맞선을 위한 게임 이외에 출연자들은 언제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그녀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로 채워진다. 그 와중에 양정아가 실수를 하면 송은이가 놀리고, 양정아가 화를 내면 예지원이 엉뚱하게 끼어들고, 그런 예지원에게 장윤정이 한마디 거들 때 진재영도 슬쩍 거들다가 신봉선에게 놀림받는, 뭐 이런 구도가 ‘골드 미스가 간다’가 찌르는 웃음의 구도다. 거실의 푹신한 소파나 찜질방에서의 편안한 복장은 예능 프로그램에 처음 발을 들인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는데다 여자들끼리의 수다는 대화의 격을 없애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분위기에서 양정아의 “이 나이에 내가…”라는 푸념이나 진재영의 걸쭉한 부산 사투리가 힘을 얻는다. 예지원의 ‘빠로네~’와 장윤정의 ‘잔치로구나!’ 같은 추임새가 힘을 얻는 것도 이런 맥락 안에서다. 여기서 비로소 송은이나 신봉선은 기존 버라이어티쇼가 요구하던 ‘웃기는 무성적 개그우먼’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들은 서로를 놀리는 것만큼 칭찬도 자주 한다. 게임에서는 서로 밀치고 잡아당기지만 맞선을 앞둔 당사자에게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예쁘다, 매력 있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여섯 여자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쾌감이면서 동시에 여성적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태생적으로 출연자들의 맞선을 위해 존재한다. 여섯 여자들의 이타적 관계가 ‘골드 미스가 간다’를 지탱한다고 해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매회 등장하는 설문조사는 시청자의, 혹은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반영되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들의 숨은 매력은 프로그램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할 것 같은 연예인’을 꼽을 때 그들의 기존 이미지를 통해 투표를 한다. 그것은 연애·결혼과 관련해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성역할 고정관념 뒤집진 못해도…

물론 이 프로그램에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특히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견고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지상파 프로그램은 그 합의 안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골드 미스가 간다’는 최근 한국의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고정된 틀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는 증거로도 충분하다.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그렇고, 그것이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지 않은 출연진의 입을 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경쟁과 견제가 아닌 다른 관계로 구성되는 내향적 예능 프로그램의 성장을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매사에 경쟁이 요구되는 시대에 그건 흥미로운 관전이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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