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의 광팬인 남자와 FC 바르셀로나의 광팬인 여자가 만났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창의적인 플레이” “헌신적인 어시스트”를 경유해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여자는 늘 여유로운 표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고, 남자는 그녀가 “나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나‘도’ 사랑하는지” 전전긍긍한다. 월드컵 4강 신화의 함성이 울려퍼지는 광장 한가운데에서 남자는 마침내 프러포즈에 성공한다. “너를 꼭 연애의 무덤(=결혼)으로 데려가리라.” 아내가 된 여자는 여전히 종종 술에 취해 새벽녘에야 들어오지만, 그 정도쯤이야 단단히 각오했던 남자는 꿈결 같은 신혼생활에 취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침대에서 감행한 느닷없는 고백. 처음에는 자신에게 사람이 생겼다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 하고, 급기야 그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더니, 황당하게도 지금의 남편과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박현욱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대사는 이것이다. “별을 따달래, 달을 따달래, 그냥 남편 하나만 더 갖겠다는 건데….” 우리는 그녀의 발언에 놀라는 척하지만, 내심 알고 있다. 남편 하나만 더 갖겠다는 말이 별과 달을 따준다는 실현 불가능한 사탕발림보다 얼마나 현실적인 소망인지,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그간 한 명 이상의 아내를 갖고 살았는지,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맹세가 관계를 갉아먹는 집착과 껍데기로 얼마나 변질될 수 있는지,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억제하기에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 다만 우리는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이상한 건 여자가, 아니 아내가 다른 남자‘도’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에 있지 않다. 이상한 건, 그녀가 ‘남자’ 하나만 더 갖겠다고 하는 대신, ‘남편’ 하나를 더 갖겠다고 말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그녀는 왜 영화 속 남편의 말대로 동거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연애도 아니고, 이혼 뒤 재혼도 아닌, 중복 결혼을 원하는 것일까.
그녀는 이 이중결혼을 “하나를 반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두 배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녀와는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에서 너무도 다른 ‘남편 같은’ 남편 1과 그녀와 쌍둥이처럼 닮아서 그녀를 그녀답게 만들어주는 ‘애인 같은’ 남편 2. 그녀는 전자의 집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거의 도맡아 하지만, 후자의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며 나란히 앉아서 일을 한다. 그녀는 두 남자와의 결혼 안에서 완전한 사랑, 혹은 결핍의 충족을 꿈꾸는데, 이러한 그녀의 이론과 선택이 철없는 환상으로 보이건, 환상의 대담한 실현으로 보이건, 주목할 건 앞서도 말했듯, 두 남자와의 사랑이 아닌 두 남자와의 ‘결혼’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알다시피 결혼은 낭만이 아닌 삶의 문제이고 사랑을 넘어서는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편 2와는 법률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영화에는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그와도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 1과 남편 2의 가족들에게 거의 완벽한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며 아내에게 부과된 성 역할 또한 아무런 반감 없이 해낸다. 두 배의 사랑을 얻은 대가로 그녀는 두 배로 무거워진 의무와 제도적인 관습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두 가지 사랑을 지키고픈 욕망이 굳이 두 개의 결혼을 꾸리고픈 욕망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혼제도에 대응하는 상징적 제스처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그녀는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일처일부제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혼제도를 유지하는 남녀 간의 성 역할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심지어 적극적으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파괴적이고 전복적인 사랑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호명 속에 안착하는 사랑들을 욕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결혼제도가 곧 일처일부제를 의미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녀의 선택은 결혼제도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그녀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의 (제도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불륜으로 낙인찍는 사회에서 결혼제도를 철저히 이용함으로써 그 제도 혹은 제도의 수혜자들을 골려주며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법적으로 두 남자와의 중복 혼인은 불가능한 현실에서 그녀와 남편 2의 결혼은 사실, 그녀가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대응하는 상징적 제스처에 가깝다. 이 이중 결혼이라는 상징적 제스처에는 법적 효력은 없어도 현실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고, 그녀는 그 순간들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많은 평들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도발적인 이야기라는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은 뻔한 일이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것이 뭐 그리 기겁할 일인가? 우리는 이미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혹은 현실에서 수많은 남편들과 아버지들의 (중복) 결혼을 지겹도록 보고 또 보았다. 아버지들의 권위적이고 내숭 떠는 두 집 살림과 비교했을 때, 이 아내의 두 집 살림은 따뜻하며 적어도 책임감을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 아내의 그러한 두 집 살림이, 과거 아버지들의 두 집 살림처럼 인과응보의 결말로 치닫거나 눈물과 후회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이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랑을 하느냐 않느냐개인적으로는 발칙한 코미디와 자못 심각한 멜로를 오가는 영화의 구성, 그리고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밀고 나아가는 영화의 방식에서 결점이 없다거나 그것들이 충분히 전복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마음을 스쳐지나간 사랑에 대한 어떤 상념들로 글을 끝맺고 싶다. 사랑을 믿는다거나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태하고 어리석은 선언은 없다. 내 곁의 당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 혹은 당신이 나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골몰하는 것처럼 소모적이고 사소한 질문도 없다. 다만, 지금 사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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