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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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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갤의 시트콤 진출 선언인가?

문화방송의 새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 확실히 인터넷 팬 문화 속으로 뛰어들다
등록 2008-10-23 13:55 수정 2020-05-03 04:25

요즘 TV에 그분이 너무 안 와주신다. 홈쇼핑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지름신 말고, 막힌 가슴 빵빵 터뜨려주는 웃음신 말이다. 방송 3사의 개그 프로그램 삼국지는 졸렬해진 지 오래고, 재능 많은 개그맨들을 앞다퉈 빼간 버라이어티쇼는 야생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래, 이런 난국일수록 제대로 된 그분이 등장해주셔야 한다. TV 코미디의 가장 강력한 계보- 으로 이어지는 못 말리는 가족들 세계에서 말이다.

〈그분이 오신다〉 문화방송 제공

〈그분이 오신다〉 문화방송 제공

그분이 너무 안 와주시는 요즘

이 조용히 파도에 밀려나간 뒤 문화방송 시트콤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등장한 .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돌아오는 여주인공의 귀국 장면으로 배포 크게 첫 출발을 알렸는데, 아무래도 초반의 향방은 위태위태하다. 여러 미디어에서 베껴쓴 홍보자료를 통해 가족들의 캐릭터를 미리 소개받은 때문인지, 막상 본방으로 확인하니 김이 빠진 느낌이 든다. 확실히 초반부터 확 치고 나오는 캐릭터라든지, 도발적인 상황이라든지, 예상 밖의 사건이라든지 하는 팔팔한 생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4회 정도부터 조금씩 탄력이 붙어 앞으로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낸다.

‘도오오오 라라라라 이이이이 바바바바….’ 어쨌든 지금까지는 이 사이코델릭한 괴성이 ‘그분’의 포인트다. 서영희는 당대 최고 스타로 급부상해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기 일보 직전, 과거 남자친구와의 발그레한 셀카 사진이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몰락해버린 여배우 이영희 역할을 맡으며 극 초반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녀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 를 패러디한 의 주연배우로서 유감 없는 추접신을 보여주고, 삼류 엽기 광고 ‘돌아이바’를 통해 맥없이 진행되던 이 시트콤에 확실한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달리 보면 이영희 이외의 캐릭터가 치고 나오는 초점들이 흐릿하다. 쇼핑광이지만 백화점에서는 블랙리스트인 부인, 고스톱으로 맞붙는 고부간의 갈등, 정반대의 개성으로 부딪히는 남녀 이란성쌍둥이 고등학생 같은 코드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설정일 뿐이다. 며느리를 못마땅해하는 윤소정의 소심한 내면 내레이션 톤은 좋지만 쏙쏙 찌르는 대사발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재용의 건방지고 도도한 쌍둥이 누나 재숙은 자꾸 의 강유미를 떠오르게 한다.

캡처를 고려한 세심함?

아직 웃음의 도화선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불확실하지만, 가 보여주는 시트콤 패턴의 변화는 주목해볼 만하다. 때부터 지상파 시트콤이 지닌 최소한의 규율을 흔드는 모습이 두드러졌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인터넷 팬 문화 속으로 뛰어들면서 노골적으로 네티즌들과의 연애를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달리 말하면 인터넷 문화에 깊숙이 빠져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이 드라마를 2차적으로 소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 듯한 코믹 패턴들이 즐겨 등장한다.

인기 웹툰 의 불사조 캐릭터는 만화체 그대로 불쑥불쑥 등장하고, ‘돌아이바’ 광고에서 이영희의 입에 들어가는 하드와 하늘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신과의 대화 장면 등은 디시인사이드의 합성 패러디 문화를 그대로 재현한다. 영희가 들여다보는 광고 화면에서 공중부양 여행을 소개하면서 전화번호를 ‘080-카레카레-100분카레’로 소개하는 장면 등 패러디 코드들이 확실히 웃음을 터뜨려내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인터넷 다시보기나 캡처 등의 파생적인 문화를 미리 고려한 듯, 돌아이바의 포스터에 ‘불고기맛, 치킨 바베큐맛’이라는 부분을 세심하게 적어놓은 것도 이러한 효과를 배가한다.

캐릭터 면에서도 30대 이상보다는 20대 이하의 네티즌들에게 향해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케이블 TV 에서 조금 유화된 형태로 옮겨온 재용이와 그 친구들의 ‘오덕후’(어떤 물건이나 일에 빠져 집착하는 사람) 코드 역시 폐인 문화와 직통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한정판 게임을 사려고 텐트를 치고 밤샘하는 장면 등은 이런 소재를 만화나 인터넷 유머로 충분히 접해온 시청자에게는 감이 처지는 에피소드로 느껴질 것 같다. 그 오덕후들의 디테일을 살리지 못하고 전형적인 상황과 기계적인 대사에 머무른 점도 아쉽다. 〈NHK에 어서 오세요〉 등 오타쿠 만화를 참조해보는 건 어떨까?

어른 캐릭터가 ‘오실지’를 결정할 듯

여러 개그 프로그램의 콩트 콘셉트에 비해 시트콤이 강세를 보이는 점은 역시 연기파 배우들의 구수한 캐릭터 표출 능력이다. 이들은 무언가 파격적인 설정과 도발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소시민의 진지하면서도 치졸한 내면을 드러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 세대적으로도 30대 이상을 포함한 더 넓은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아직은 여러 캐릭터들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가족’들로 배치된 인물들이 제대로 튀어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특히 오랜 실종 끝에 기억을 상실하고 돌아온 이문식이 보여줄 모습을 주목해봐야 할 것 같다. 극 초반이라서인지 김구라, 소희 등 카메오 출연이 주는 재미에 시선이 가긴 하지만, 카메오의 남발이 급속히 약발을 떨어뜨린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등 어른 캐릭터들이 얼마나 살아나느냐가 결국은 ‘그분’이 정말 오실지 안 오실지를 결정하는 열쇠가 될 것 같다.

이명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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