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물에 빠진 달을 건져오너라

3명의 예술인이 추억 속에서 끄집어낸 ‘나의 잊지 못할 보름달’
등록 2008-09-10 14:16 수정 2020-05-03 04:25
음력 8월15일, 밤하늘의 달은 가장 밝아지고, 덩치도 가장 커진다. 달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이 한가위 보름달을 우리 민족은 지구상의 어떤 민족보다도 유난히 사랑했다. 보름달은 풍요와 온전한 삶의 기원을 담은 추석의 절대 상징이자 정신적 뿌리와 같은 것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면서 송편을 빚거나 놀이판을 벌이는 따위의 숱한 추억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터다. 보름달에 얽힌 시공간의 추억을 3명의 예술인들이 글로 이야기한다. 경상도 김천벌이 고향인 시인 문태준, 제주도 오름 부근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작업하는 화가 강요배, 전국 고을 곳곳의 전통 춤판을 고향길처럼 누비고 다닌 기획자 진옥섭씨. 그들에게 ‘잊지 못할 나의 한가위 보름달’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왔을까. 편집자


보름달. REUTERS/ PUNIT PARANJPE

보름달. REUTERS/ PUNIT PARANJPE

가을 달빛에 젖은 동산

마루에 서서 고개를 들면 멀리 황악산이 보이는 곳에서 나는 자랐다. 노루가 울고 산열매가 익던 곳. 경부선이 지나가서 상경하는 열차의 객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곳. 골목마다 까맣고, 몸이 말라 가을 덩굴만 같았던 아이들이 송사리 떼처럼 몰려다니던 곳이 내 고향 마을이다. 마을에서 어린 나에게, 나의 동무들에게 제일의 놀이터는 동산. 무덤들이 많았던 그곳은 손바닥만 한 작은 언덕이었다. 소와 염소를 한 마리씩 몰고 온 아이들이 꼬옥 틀어쥐었던 소와 염소의 고삐를 풀어놓고 놀던 곳. 소는 소끼리 뿔을 맞대 몸을 밀고, 염소는 염소들끼리 구슬 같은 똥을 누며 울고, 편을 가른 아이들은 또 그네들끼리 시끌시끌하던 곳. 그래서 짐승과 아이들이 서로 다투듯 그들의 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그 소리들이 하늘로 부글부글 끓으며 올라가던 곳. 글쎄, 낮에 그 소리를 들으면 마치 벌들이 떼를 지어 이사 가는 것 같고, 밤에 그 소리를 들으면 은빛 은하수가 조금 낮은 하늘로 내려온 것 같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가자는 듯 소와 염소가 일제히 울며 보채던 곳. 가끔 성미 급한 소와 염소들은 혼자 집을 찾아가던 곳.

동산이 아름다웠던 것은 달빛에 축축하게 젖을 때였다. 동네에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기에 가장 좋았던 곳. 바다로 돌출한 ‘곶’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우리는 달이 이 우주에서 날마다 새로이 생겨나는 줄로만 알았다. 품으로는 도저히 한꺼번에 껴안을 수 없는, 몸 큰 달이 떠올랐다. 추석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아이들과 할머니들이 가장 앞줄에 서서 달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사람들의 얼굴 가득 축복처럼 내려앉았다. 나는 할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누이에게도 금빛 비늘 같은 달빛이 내려 할머니와 아버지와 누이의 얼굴이 점점 환해지고, 부드러운 미소로 점차 바뀌는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달빛은 동산의 무덤 위로도 내리고 가을 덩굴에게도 내리고 마른풀에게도 내리고 지붕에도 내리고 저수지에도 내리고 깻단에도 내리고 골목길에도 내렸다. 그것은 빛의 은혜, 빛의 사랑. 해서 한 해 농사의 수고로움을 잊게 하고, 근심과 다툼을 잊게 하고, 오직 우주의 한 살림만을 생각하게 했으니 달은 세상에서 가장 원만한 분. 동산에 올라 몽실몽실한 달이 막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아야겠다. 그분이 꼭 들어줄 것 같은, 겨자씨만큼 작은, 나의 가을 기도를 올려야지.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달 따는 할머니

추석 한가위, 쟁반같이 둥근달을 보며 할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달을 따준다는 거였다. 때가 언제인고 하니 국어 교과서에 멍청한 공주가 나오던 그 시절이었다. 없는 게 없는 공주가 달 따달라고 생떼를 쓰는 이야기. 왕은 안절부절, 학자들은 우왕좌왕, 어전이 어수선할 때 등장한 꼬마광대 왈 “공주에게 물읍시다” 해서 공주가 말한 손톱만 한 황금구슬을 목에 걸어준 것을 배운 때였다.

그러니 내게는 할머니의 말이 참 시답잖은 소리였다. 그래도 한번 놀아주잔 심산으로, 어떻게 따느냐고 눙쳐 물었다. 대나무 장대로 밤 따듯 딴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워오는 거라 했다. 내가 주워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몇 번을 그럴 거냐고 다짐받기에 버럭 화를 내며 그러겠다고 장담했다.

할머니는 허공에 장대를 휘두르다 떨어졌다며 대야를 가리켰다. 그득한 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뭐야! 실망스런 표정을 짓자 할머니는 무서운 얼굴로 바지 걷고 들어가 건지라 했다. 일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졌기에 양말 벗고 들어가 미꾸라지 잡듯 찰랑거려야 했다.

여름 지나면 냇가에서 멱 감을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용의검사를 한다고 예고하지 않으면 따로 발 씻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 추석 무렵 양말 속의 때는 가마솥의 누룽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대야에서 달을 건지다가 때가 불었고 할머니가 박박 벗겨냈다. 삼학년 때나 됐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알이 꽉 찬 달을 살살 간질이던 추석녘의 밤이었다.

진옥섭 공연기획자· 저자

봉긋한 오름 위에 걸린 달

제주섬의 동편으로 멀리 가없는 바다가 있다. 바다를 머리에 이고 이켠으로 너른 대지가 펼쳐졌다. 들도 바다를 닮아 작은 언덕들이 첩첩이 접히며 파도를 이룬다. 거친 현무암과 투박한 화산회토와 어지러이 뒤얽힌 가시넝쿨들로 이루어진 황무지 언덕이다.

평원에는 오름이 봉긋하게 솟았다. 풋풋한 여인의 자태를 닮았다. 부드러운 윤곽선은 허공을 밀어내고 오름의 안쪽으로 돌아든다. 거기에는 우묵한 굼부리가 있다. 화산체가 대지 위에 솟아오르며 만들어진 분화구다.

제주섬은 먼 신생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과 골짜기와 강물이 있는 노년기의 육지부와 달리 평평하게 펼쳐진 젊은 대지다. 우리는 또래 몇몇이 모여 오름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사십대의 10여 년간 100여 개의 오름을 오르고 내렸다. 완만한 경사면과 길지 않은 코스와 빈 들에서 맞는 바람결이 상쾌했다.

해 저문 날 언제였던가. 우리는 검고 둥그런 오름 능선에 걸린 보름달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오름의 굼부리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크고 밝은 것이 서서히 대지를 빠져나와 창공으로 오르는 것이었다. 젊은 대지의 자궁이 달을 낳는다 할까.

제주에서 사람들은 ‘달’을 ‘ㄷㆍㄹ’(아래아 표기)이라고 부른다. 달이 고개를 내미는 그 오름(월랑봉)의 이름도 ‘ㄷ·랑쉬’(아래아 표기)다. 가을이라 하늘이 맑아 마주 보는 오름과 달이 이뻤다. 지금 초로의 우리들은 서로가 잘 만나지 못한다.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오고 마음도 늦가을의 날씨처럼 서늘해지기 때문이다.

당뇨병으로 몸이 불편한 벗에게서 전화가 왔다. 혼자서 외로이 있는데 위문을 안 오겠느냐고 한다. 부인은 어디 갔느냐고 되묻는다. 큰딸 첫아기 받으러 갔다 한다. 보름달! 보름달 같은 아기.

강요배 화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