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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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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이라는 헛발질

등록 2008-07-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어딨는지 모르는 이를 찾는 ‘추적’ 프로그램의 변화, 근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케이블 ‘근접취재’ 프로그램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국내 방송에서 최고의 추적팀은 한국방송(KBS) 〈TV는 사랑을 싣고〉(금요일 저녁 7시30분)에 있다. 1994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긴 세월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의뢰인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척척 만나게 해준다. 7월4일 방송분에서는 로버트 할리가 29년 전에 만난 첫 한국인 친구를 찾았고, 한 어머니는 30년 전에 헤어진 두 딸을 찾았다.

“아휴” 대신 “어이구”라고 해주고 싶구나

추적팀은 세월을 헤집어 단서를 찾는다. 로버트 할리의 경우 당시 친구의 주소를 적은 수첩이 추적을 시작하는 단서였다. 그런데 대구의 친구 집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 아파트에는 지난해 이사온 사람이 살고 있었다. 9년 전 의뢰인의 친구를 만났다는 사람을 다시 찾아가고, 추적 대상자가 밴드 활동을 한다는 것을 단서로 모든 라이브 밴드를 샅샅이 뒤졌다. 활동하던 밴드를 알아내고, 연습실을 찾고, 가까이 있는 악기사를 찾아가고, 악기사 사장의 도움을 받아 전화를 걸어 추적 대상자를 찾아갔다. 고난의 추적이지만, 그 과정은 방송 시간으로는 3분 정도다.

뭐든지 다 해낼 듯 보였던 방송사 카메라 옆에 땀방울(;;) 몇 개 붙이고 싶은 ‘당황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TV는 사랑을 싣고〉가 처음이 아닐까. 이 ‘헛발질’은 꽤나 재미가 있어서, 보는 사람이 애가 타도록 일부러 찾는 사람을 꼭꼭 숨겨두기도 했다. 그럴 때는 방청객이 “아휴” 하는 소리를 연방 질러댔다. 보고 싶은 선생님은 그날따라 야외 수업 중이고, 친구는 다른 데 출장을 가고, 첫사랑은 이민을 갔단다. 어리둥절 ‘패닝’하던 카메라가 찾는 사람 얼굴을 비추기 전까지, “저는 아닌데요” “지금 없습니다” “옆 사무실 가보세요” 하는 사람들의 ‘연기’ 티도 팍팍 났다. 그렇게 매번 추적 대상자를 찾는 데 성공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긴 했지만 돌이켜보건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추적을 하는 카메라에 대고 “아휴” 대신 “어이구”라고 해주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다.

SBS의 (일요일 낮 12시10분)에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너가 있다. 아이디어 상품이 맨 처음 어디서 나왔는지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7월6일 방송분에서는 삼각김밥이 눅눅해지지 않는 포장의 비법을 찾아나섰다. 찾아간 곳은 편의점. 직원은 말한다. “삼각김밥이 일본에서 나왔으니까 이 포장도 일본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제작진은 일본 도쿄의 편의점으로 날아간다. 현지 직원은 한참을 생각하는 빛이 역력하더니 그 상품을 개발한 사람이 있는 곳과 성을 알려준다. 편의점 직원이어서 아는 게 아니라, 일본인의 상식쯤 되니까 이 정도로 척척인 것 같다. “오사카의 스즈키상을 찾아가세요.”

그들은 오사카로 향한다. 알고 보니 유명한 아이디어 상품 개발자였던 스즈키상사의 스즈키 사장. 추적 대상자는 자기 사무실에서 여유롭게 취재진을 맞는다. 제작진이 인터넷이라도 먼저 검색해보고 갔다면 도쿄에 가서 편의점을 찾고, 일반인에게 무턱대고 마이크를 들이대지는 않았을 것 같은 황당함이 가슴 깊게 스며든다(요즘 기름값이 참 비싸다). *이렇게 추적하기 전에 아이디어의 가치를 판가름하기 위해 보여주는 ‘종이 접기 달인’의 ‘종이로 삼각김밥처럼 싸기’도 이해할 수 없는 ‘헛발질 세트’ 중 하나였다. 달인은 요모조모 살피고 나서 완벽하게 재연해냄으로써 삼각김밥 포장이 ‘별게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기 ‘놀라운’ 추적팀을 하나 더 소개한다. 케이블채널 티브이엔(tvN) (월요일 밤 9시 본방송)의 ‘잠복취재 72h’ 제작팀이다. 그들이 만드는 코너는 ‘새로운 스타일의 추적’을 보여준다. 72시간, 3일 동안 (주로) 연예인을 추적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잠복취재’ ‘근접취재’라는 제목과 달리 이 코너 제작진은 ‘잠복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근접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원더걸스 72시간 근접취재기’(6월23일 방송분)를 보자. 그들은 첫쨋날, 이튿날과 그 다음날 가요 프로그램 녹화가 예정된 방송사를 사전 답사한다. 이후 취재 차량은 원더걸스 소속사 빌딩 앞으로 간다. *내려서는, 팬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뭘 기다려요?” 예상 못했던 답이 들려온다. “대박.” 다시 다른 팬을 찾아간다. 방송 멘트로 “취재팀은 노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가 읊조려진다. “아저씨 tvN이죠?” “(어떻게 알았어요… 등등 뒤 시인) 네…. 집으로는 안 가요?” “저희는 안 가게 돼 있어요. 그래야 원더걸스도 쉬죠.” 취재팀은 원더걸스 숙소로 간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숙소 가까이에서 팬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난 뒤, ‘결단’을 내린다. “내일 다시 여기로 오기로 하고 오늘은 철수하죠.”* 둘쨋날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아침 일찍 교복을 입고 나온 원더걸스 멤버 하나가 차량을 잘못 알고 취재 차량의 문을 연 것이다. “아이고, 깜짝이야.” 취재진은 기껏 찾아온 근접 기회를 마다하고 카메라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간만에, 간결한 편집의 묘미를 보여준다. 점프 컷 뒤, 원더걸스 멤버는 자신을 데리러 온 차량을 찾아가고, 취재진은 창문에 바싹 갖다대고 줌을 한껏 당긴 ‘근접취재’를 계속한다.

이 ‘막무가내 72시간’ 추적은 특종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민수가 4월 중순 노인을 폭행한 뒤 ‘컨테이너’에 숨어 산다는 제보를 근거로 찾아나섰다가, 그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방송일(5월19일) 전, 온라인 연예뉴스에서 “최민수가 컨테이너에 숨어 산다”라는 그들의 촬영 내용이 기사로 보도되면서 당장 화제가 됐다. 방송일 ‘최민수 컨테이너’ 관련 보도를 〈ENews〉는 총 네 꼭지로 구성해 방송했다. 첫째 편 ‘최민수 노인 폭행설, 그 진실은?’, 둘째 편 ‘최민수가 칩거 중인 컨테이너를 찾아라’, 셋째 편 ‘최민수가 칩거 중인 컨테이너로의 잠입’, 넷째 편 ‘최민수가 컨테이너에 칩거한 진짜 이유는?’이다.

추적은 스토킹처럼?

제작진은 둘째 편 내내 주변 탐문 수사를 하고 컨테이너를 찾아간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컨테이너를 찾는다. 이때 불 피우러 나온 최민수의 모습도 포착된다. *둘째 편의 끝은 최민수가 있는 컨테이너 주변의 다른 컨테이너에 잠을 자러 들어갔다가 찾아온 사람이 “당신들 누구냐” 하고 추궁하자 한꺼번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쫓겨난 그들은 차량에서 밤을 지새운다. 셋째 편의 시작은 “차량에서 밤을 지새운 제작진이 간 곳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서울이었다”는 멘트다. 제작진 6명은 엠티를 온 사람들처럼 위장하고 잠복취재를 시도한다. “총 6명의 취재진들이 컨테이너 근처로 엠티(MT)를 떠난다는 설정의 위험한 잠복취재. 펜션의 방을 예약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냉장고에 준비한 음식을 넣고, 최대한 시끄럽게 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취재팀.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준비… 밤 11시. PD와 작가가 연인으로 가장해 컨테이너 주변을 배회합니다. 하지만 조용한 이곳. 이 시간. 컨테이너의 불이 꺼져 있습니다. 컨테이너 위로 몇 마리 개가 포착이 됐고요.”* 다음날, 이미 뉴스를 통해 보도됐기 때문에 컨테이너 주변으로는 연예뉴스 차량들이 포진해 있다. 방송 멘트 “〈ENews〉 취재진 역시 그들보다 더 근접해 있지만 더 이상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만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째 편에서 보여준 최민수의 기자회견 장면이 나온다. 최민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실 우리 살아가는 모습에서 공간과 공간에 대한 질서는 없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공간이나 그 부분을, 사전에 논의 없이, 아니면 전에 의사표현 없이, 그냥 들어올 때가 많이 있어요.”

72시간 잠복취재진의 결론을 맺는 멘트는 이것이다. “그가 칩거에 들어간 것은 자신의 공간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그만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최민수가 칩거한 이유가 드러나는 ‘연예 밀착취재’의 순간이다. 시청자의 욕망을 과도하게 평가한 ‘추적’이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방송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스토킹’이 될 수밖에 없는 추적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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