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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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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조각-회화-사진 사이로 걷기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그림 같은 사물을 사진으로 찍는 장유정과 조작한 사물을 그림과 사진으로 만드는 유현미

▣ 박영택 경기대 예술대학 교수·미술평론가

1839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세계 최초로 카메라의 발명이 공표된 이후, 사진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제 사진이 단순한 기술의 차원을 넘어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확고히 자리잡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전시장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시 중 상당수를 사진이 차지하고 있고, 중요한 기획전에 사진 매체가 두드러지게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에서도 사진이 중요한 상품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사진의 르네상스,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른바 사진이 현대미술의 리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기서 현대미술이란 동시대 혹은 최근의 미술을 지칭한다). 이는 사진작가들이 현대미술의 중심 리더가 되었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사진이란 매체가 다른 어떤 매체보다 현대미술의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잡종적 삶과 생각이 작업의 근간

그런데 나로서는 오히려 사진 쪽 작가들보다 미술 쪽 작가들이 사진 매체를 자유롭고 기발하게 다루면서 이미지에 대한 풍부한 사유, 재현을 둘러싼 논의, 사진이란 매체의 의미·조건 등에 풍요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여러 작가들의 사진을 보다가 문득 사진을 통해 실제와 환영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들은 사진이란 매체를 공유하지만 이들에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나 개념의 도상화가 아니다. 이들은 사진이란 매체 자체를 질문하고, 사진이 구체적인 실세계를 담아내면서 그것이 평면 위로 안착되는 과정에서 야기하는 지각 체험을 문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사진은 조각과 회화, 사진의 경계를 넘어서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사진이 지닌 기이한 매력을 정교하게 연출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경계를 뛰어넘어 살고 생각하는 데서 진행된다. 경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단위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숙고함으로써 다양한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인위적 경계를 극복하는 일이다. 이른바 하이브리드적, 잡종적 삶과 생각이 작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현실과 비현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식과 무의식 등이 작업의 주된 테마가 된다. 아울러 조각과 회화, 사진과 입체 등이 혼성적으로 직조돼 있다.

독일의 생리학자 페닝거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은 각각 2차원의 영상밖에는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두 눈에서 받아들인 조금씩 다른 2차원 영상들이 두뇌에서 종합되면 3차원이라는 질적으로 다른 공간적 비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비슷한 방식을 통해 서로 다른 형태로 수용된 두 데이터가 두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창조성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 눈 역시 매우 잡종적이고 그로 인해 창조적인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내는 기관인 셈이다. 이들의 사진은 우리 눈의 그같은 속성을 끌어들여 그 환영성을 길어 올리면서 동시에 각 장르들의 혼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따라서 그것은 기존의 장르 개념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창조성’으로 이어진다.

사실 작업은 그것 자체로 머물지 않고 보는 이들에게 보는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각각의 장르 특성과 그 장르가 순간 녹아버린 경지에 대해 말을 건넨다. 그리고 현실과 환상, 꿈과 무의식이 오고 가는, 현기증 나는 그러나 더없이 유쾌하고 은밀한 보폭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가 장유정과 유현미 등이다.

관람자는 숨은 그림 찾는 능동적 주체로

장유정은 사진·회화·설치의 장르를 넘나들며 구조적인 표현과 매체 자체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선보인다. 그는 일상적인 공간의 한 부분을 선택해 그 위에 그림자나 빛을 강조한 회화 기법을 얹혀서 그림처럼 보이게 한 다음 이를 사진으로 찍어 최종적으로 작가만의 의도된 공간으로 만든다. 순간 그것이 실제인지 회화인지 혹은 사진인지 헷갈리게 하고 그 구분과 경계를 교묘히 흔든다. 따라서 보는 이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기존 장르에 고정되고 익숙해진 습관적인 눈들이 순간 불안해진 것이다. 그의 사진은 결국 사진을 통해 허구의 상, 메타픽션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작가는 회화와 사진 장르가 지닌 본질을 의문시하면서 이를 다시 설치화하고 그것의 재현 도구로서 사진을 끌어들여 자신이 만든 가상의 공간, 허구적 공간을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의 지각을 건드린다.

유현미의 근작은 이른바 ‘크로싱 장르’이자 다분히 하이브리드적이다. 조각과 회화, 사진이라는 세 장르가 긴밀히 결합돼 있으면서 서로를 참조하고 은폐하다가 슬쩍 공모 관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일상생활을 둘러싸는 각종 사물들을 석고붕대로 고정해 조각된 사물을 만들고 그것들을 인위적 공간(작가의 스튜디오)에 포함시켜 한 장의 그림, 사진으로 꾸며낸다. 제소와 젤미디엄 그리고 석고붕대 등을 사용해 사물·의사사물을 만들었는데, 사실 조각에서는 오브제가 전부이지만 이를 다시 회화로 전향시킨 것이다. 사물(오브제)에서 조각으로, 회화로, 다시 사진으로, 결과적으로 그 모두가 통합된 형국인 셈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조각과 회화의 과정을 실현하고 모방하면서 그렇게 연출된 이미지를 사진으로 다시 재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조각과 회화, 사진이라는 장르의 차이와 경계가 어지럽게 섞이고 결합해서 다소 기이한 장르가 되었다. 세 장르의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을 통합한 것이 작가의 작품인데, 그러니까 사물을 미라화하고 회화적으로 연출한 동시에 공간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조율된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이 작품은 실재와 환영의 간극이 여전히 예술의 본질적 정체임을 일러준다. 결론적으로 서로 다른 장르와 상황들이 만나서 창조적 이미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이들이 ‘사물 자체-조각-회화-사진’의 영역 사이를 횡단하고 거닐고 헤매면서 상상력과 깨달음, 그렇게 만나는 환영의 장면을 즐기도록 권유한다. 여기서 관람자는 단순한 수동적 존재를 벗어나 기꺼이 작품 표면으로 호명돼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거나 숨은 그림을 찾는 식으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두산갤러리 ‘메타픽션 전시’(6월19일~7월20일, 장유정·유현미씨 작품)·트렁크갤러리 ‘환영구성 그리고 판타지’(6월12일~7월26일, 유현미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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