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달려라, 히히

등록 2008-06-20 00:00 수정 2020-05-03 04:25

2년 전 하인스 워드 만났던 농구선수 장예은, 육상선수로 다시 시작하다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내부에 계단 벽을 따라 전시된 사진들 중엔 ‘웃음’이란 제목의 사진이 있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오누이처럼 따뜻한 웃음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 앞에선, ‘웃음’ 외에 적당한 제목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2년 전 촬영된 사진 왼쪽엔 미국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32)가, 오른쪽엔 흰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워드 오빠’를 반갑게 맞이한 농구선수 장예은(21)이 있었다. 둘은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공통점이 있다. 장예은은 미국 아빠에게 간 동생 둘과 달리 한국에 혼자 남은 어머니 곁을 지켰다.

농구단 떠난 뒤, “육상 해보지 않겠냐”

“너무 환하게 웃고 있던데요?”

“히히, 원래 잘 웃기도 웃어요. 어렸을 때부터 혼혈 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포기하지 마라, 그런 걸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인스 워드가 바로 내가 꿈꾸던 모습으로 영웅이 돼 왔잖아요. 그게 고마웠고, 자랑스러웠어요.”

장예은은 어머니와 월세 단칸방에서 살았고, 어머니는 밭일, 공사장일, 식당 종업원 등으로 딸을 키웠다. 장예은은 자신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이쯤에서 거둬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햐얀 피부색 가진 아이들 못지않게 저도 애국심이 있거든요”라고 말하고 나선 또 ‘히히’ 웃음을 보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여자농구 춘천 우리은행에 1순위로 뽑혔다는 소식(2005년 말)을 듣고 펑펑 울었다는 ‘혼혈 농구선수’에게 사람들은 제법 관심을 보였다. 초등학교 때 레이업슛을 하기 위해 뛰어올랐더니, 손이 여유 있게 림을 훌쩍 넘어 올라가기에 그냥 덩크슛을 꽂아버렸다는 일화를 듣고 나서는 이 선수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많았다. 첫 월급으로 엄마 반지를 사드리고, 해외 전지훈련 가서 혈압에 좋다는 엄마 약을 사올 때만 해도 장예은 역시 이 안정된 생활이 한동안 이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장예은은 2년 만에 짐을 싸고 조용히 농구단을 나왔다. 4경기 출장, 평균 1득점·1리바운드가 그가 여자농구 기록지에 남긴 흔적이다. 그는 “한 경기에 가장 많이 뛴 게 3분 정도였어요. 그것도 경기 흐름이 결정난 뒤에 나가는 식으로…”라고 떠올렸다. 당장 팀 성적이 다급한 구단으로선 ‘또 그 주전, 또 그 베테랑 선수’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제아무리 1순위로 팀에 들어간 장예은이라도 벤치에서 기다림을 반복해야 했다. 설 자리가 없던 그는 2007년 말 경기도 한 시청팀에 들어갔으나,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3개월여 만에 팀을 나왔다.

“그러곤 매일 울다시피 지냈어요. 내가 태어났으면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있을 텐데, 무언가 하나 해내야 할 텐데, 운동을 그만둔다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바로 그때, 우리은행 농구단 체력고문을 지낸 뒤 스포츠 전문 클리닉 원장을 하고 있는 이준 아시아육상경기연맹 지도자분과위원이 육상을 권했다. 키가 1m75인데, 하체는 1m80 정도 사람들과 맞먹는 80cm나 되는데다, 엉덩이 근육이 위로 치켜올라가 있어 전방으로 치고 나가는 추진력을 갖춘 신체조건을 눈여겨본 것이다. 제자리 점프를 아주 잘한다는 여자 선수가 55cm 안팎인 데 비해, 60cm를 거뜬히 뛰어오르는 순발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를 하다 “타이어를 끌고, 언니들이 맞는 걸 보고 무서워서 그만뒀다”던 장예은이 원래부터 육상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였다. 장예은은 초등학교 3학년을 뛰어넘어 4학년으로 월반해 6학년 언니들과 겨루는 경기도 육상대회에 나가 멀리뛰기 우승을 한 경험도 있다.

며칠 고민 끝에 장예은은 “예, 해볼게요”라고 전화를 걸었다. 육상으로 바꾼 지 3개월이 흘렀다. 지난 6월1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마르페 스포메니 스포츠클리닉’에서 만난 그는 군살이 빠져 3kg이 줄었으나, 몸은 육상선수 폼이 날 정도로 탄력이 붙어있었다. 그는 “근육이 아주 선명해졌다”고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재미없으면 못해요. 뛸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달릴 때 바람에 맞부딪치는 느낌이 좋고요. 내가 바람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내가 달리면서 일으키는 바람을 느끼게 해줄 정도로 빨리 뛰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달리니까 더 좋아요”라고 하는데 신난 표정이다.

관절 가동 범위, 유연성, 순발력 뛰어나

“어제 이준 선생님께서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하셔서 속상해 두 시간밖에 못 잤어요. 누우면 낮에 트랙에서 뛰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와, 그럴 땐 심장아 막 뛰는데…. 정말 잘하고 싶고, 더 뛰고 싶고….”

곁이 있던 이준 원장은 “요즘 예은이는 더 욕심을 내려 하고, 난 그 욕심을 자제시키려고 하고 그럽니다. 과정이 있는 건데 지금 더 강하게 하면 염증이 생기니까요”라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장예은은 그동안 이준 원장 개인지도 아래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7시까지 스포츠클리닉에서 기초체력, 근지구력, 달리기 자세 등을 집중 훈련했다. 일주일에 사흘은 트랙에도 나간다. 이 원장은 “수직운동을 하는 농구는 주로 무릎을 사용하는데, 수평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육상은 발목, 무릎, 엉덩이 쪽 고관절을 두루 사용하기에 그쪽을 보완했고, 다음달부터 스피드 훈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초보 육상선수가 트랙부터 나가지 않고, 이렇게 육상에 필요한 근력훈련을 체계적으로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원장은 “체력이 굉장히 좋다. 맥박 수가 잘 안 올라가고, 회복 속도도 빠르다. 발을 휘젓는 범위도 넓어 200m와 400m를 주종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기대할 만한 것인가? 여자 200m(23초80)는 1986년, 400m(53초67)는 2003년 이후 한국 신기록이 멈춰 있다. 이 원장은 국가대표팀에서 여자 100m·400m, 남자 400m 한국 신기록을 조련한 경험이 있다.

“신기록을 세웠던 선수들과 비교해 관절 가동 범위의 유연성과 순발력이 뛰어나 해볼 만해요. 앞으로 실제 경기를 통해 페이스 조절하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 과제죠.”

장예은은 오는 10월 전국체전을 통해 데뷔한 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8강을 목표로 세웠다. 이 원장은 최근 육상전국대회에 장예은을 데려가 현장을 느끼게 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원장에게 슬쩍 “요즘 외국 선수 키우냐”고 물었다고 한다.

수입 줄어서 편찮으신 어머니께 죄송

현재 무소속인 장예은은 이 원장이 주선한 후원인을 통해 매달 100만원을 받아 교통사고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액을 보내고 있다. 그중 15만원을 받아 한 달 생활비로 쓴다. 수입이 줄어들어 딸은 어머니께 죄송스러운 마음인데, 어머니는 “걱정 말고 열심히 운동하라”며 응원해주고 있다.

장예은은 자신의 소망을 얘기하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를 조용히 읊었다.

“원컨대 주께서 나에게 복의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야베스를 낳을 때 참 고통스럽고 어렵게 낳았다고 해요.” 야베스는 ‘고통’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거죠. ‘주께서 나에게 복의 복을 더하사, 육상으로 세계로 나아가 나의 지경(활동범위)을 넓히시고 나를 도우사 근심이 없게 하소서’라고.”

그는 달리고 있고, 우린 그가 보내는 ‘웃음’이란 제목의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