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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마스크 쓰고 변신해볼까요

등록 2008-05-23 00:00 수정 2020-05-03 04:25

근육질 퀵서비스맨의 비밀, 링 위에 서면 ‘아이언맨’이 되는 프로레슬러 윤강철

▣ 글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오늘 제대로 된 밥을 먹는 건 이게 처음이네요.”

그렇다면 100kg의 저 몸무게를 도대체 어떻게 지켜나가겠다는 건지. 그는 저녁 8시가 다 돼서야 설렁탕 한 그릇을 국물도 남기지 않고 비웠다. “아침 일찍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짐을 찾아 보내줘야 하거든요. 1천원짜리 김밥이나 삼각김밥 같은 거 대충 먹으면서 운전해요. 요즘엔 김밥 서너 조각 먹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오전 10시쯤 나머지를 먹고 그래요. 김밥에 좀 물려서.” 식당 탁자 위엔 무전기와 휴대전화 둘이 놓여 있었다. 차에 휴대전화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연락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고객이 가라는 곳이면 어디든 신속·정확하게 달려가겠다는 그는 ‘24시 나르는 퀵’의 퀵서비스맨 윤강철(34)이다.

5월13일 서울 시내에서 만난 그는 “인천 갔다가 수원에서 막 오는 길이에요. 우리끼리 ‘똥짐’이라고 부르는 70~80kg짜리 짐 여러 개 옮기는 배달도 있었는데 허리가 좀 아프네요”라며 엄살을 부리듯 말했다. 지하 월셋방에서 혼자 사는 그는 택배로 한 달 150만~180만원을 번다. 급한 서류를 보내기 위해 새벽에 택배를 찾는 부름에도 잠을 뿌리치며 뛰어가야 쥐는 돈이다. 그래서 그는 주말에도 이삿짐을 나른다. 회사에 수수료를 떼이는 택배보다 하루 수입이 좀 낫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제때 밥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운전하다가 잠이 오면 내 뺨을 때리고 그러죠. 물건 배달 가면 반말하시는 건 예사고. 하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손님은 왕이다, 고객은 상관이다, 마음을 비우고 깍듯이 대하죠.” 넉살 좋은 그가 껄껄 웃으며 또 한마디 한다. “일상에선 피곤한 일이 많지만, 링에선 바로 내가 영웅이 되잖아요.”

주말에도 이삿짐 나르며 전봇대랑 운동해

그렇다. ‘나르는 퀵’이 적힌 옷과 뿔테 안경을 벗으면 그는 ‘퀵서비스맨’이 아니라 강철같이 탄탄한 근육의 ‘아이언맨’으로 변신한다. 삼단 로프 꼭대기를 밟고 강하게 탄력을 준 뒤 큰 궤적을 그리며 뒤로 돌다가, 그것도 모자라 다시 측면으로 두 바퀴 회전하며 떨어지는 ‘대포동 2호’(코르크스크루 문설트) 기술. 묘기에 가까운 이 현란한 기술을, 국내에서 다른 선수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이 기술을 링에서 실현하는 그는 마니아팬을 꽤 갖고 있는 프로레슬러 윤강철이다.

“공중에서 몸을 날려 도는 느낌. 그거 안 해보면 모릅니다. 돌다가 떨어지면 바닥에서 ‘팡’ 소리가 나고, 그 순간 관중이 소리를 확 지르고. 그 기분 최고죠.” 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터트린 웃음이 식당을 가득 채웠다.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허리가 아프다고 했지만, 미안하게도 ‘설마’ 하고 느껴지는 건 186cm의 큰 키와 옷이 뜯어질 듯한 근육질 몸 때문이었다. 지난 5월5일 세계프로레슬링 대회에서 그는 다리 정강이로 야구방망이 3개를 박살내는 ‘쇼’를 보여줬다. “2년 전 뒤로 한 바퀴 돌아 떨어질 때 상대가 무서웠는지 피하는 바람에 무릎 인대를 크게 다쳤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8개는 깰 수 있었다”며 되레 아쉬워했다.

이런 그도 학창 시절 꽤 많이 맞고 다닌 약골이었다고 한다. “키가 너무 작아 늘 반에서 1·2번이었고, 부산으로 전학갔더니 서울 촌놈 왔다고 말투 흉내내면서 따돌리고, 정말 많이 때리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태권도와 합기도(현 5단)를 배웠고, 키도 훌쩍 자라면서 소심한 성격도 조금씩 달라졌다. 직업훈련원을 거쳐 군에 입대한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동생들 학비도 벌고, 내 앞가림은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부사관에 지원해 직업군인을 택했다.

2003년, 직업군인 그만두고 선택한 길

“합기도 세계대회에 나가 우승도 두 번 하고, 군대 검열 같은 거 있으면 항상 1등도 하고,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군생활을 잘했어요. 위병소 들어서서 나무 냄새 맡고 나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그런데…. 그 평안한 현상유지를 보면서 이대로 끝나긴 인생이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죠.”

고교 시절 전교 꼴등도 해봤다는 그는 뒤늦게 “대학물도 먹고 싶어서” 부산 동명대 생활체육학과에 들어갔다. ‘현상유지’가 오히려 마음에 불편함을 주던 그때, 김두만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회장과 친한 지도교수가 레슬링을 권했다. 보디빌딩도 전공한 그의 예사롭지 않은 몸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어렸을 때 막연히 프로레슬링을 해보고 싶다던 그 생각이 말이죠. 그러니까 10년간 군생활을 하면서, 또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던 어릴 적 그 생각이 그렇게 다시 되살아난 겁니다.” 군에선 만류했으나, 바로 전역서를 넣었다. 그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뒤 부산을 떠나 가방을 둘러메고 서울의 프로레슬링 체육관을 찾았다. 2003년 겨울이었다. 2005년 멕시코로 6개월간 레슬링 유학까지 떠나 현지에서 여러 차례 경기를 뛴 그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경기를 300회 가까이 치렀다.

레슬링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으니, 찜질방에서 1년간 지내며 막노동도 했고, 공장 생산직 직원으로도 일했으며, 방송 보조출연·스턴트맨으로도 활동했다. 퀵서비스를 하는 요즘엔 틈틈이 차를 세워두고 전봇대에 고무줄 매달아 당기기, 발차기, 팔굽혀펴기 등을 하며 수시로 운동을 한다. 올해부터는 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개설한 스포츠엔터테인먼트학과 프로레슬링 입문 과정에 매주 목요일 저녁 강의도 나간다. 그곳엔 또 다른 ‘나’를 링에서 깨워내기 위해 퇴근 뒤 수업을 듣는 기업체 직원들도 있다. 화려하고 빠른 기술과 쇼맨십을 두루 갖춘 그는 “프로레슬링을 하면 만화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영웅이 되고 싶잖아요. 이곳에선 만화 같은 영웅이 될 수도 있고, 타이거마스크로 변신해 악당을 물리칠 수도 있죠. 내가 준비한 기술을 했을 때 관중이 환호하고 즐거워하니 또 얼마나 보람이 있습니까? 링엔 모험심도 있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도 있죠. 윤강철 하면 재밌고 신나고 카리스마가 넘치고, 아이언맨의 포스가 느껴지는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기업체 직원들 위한 저녁 강의에 나서

그는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프로레슬링은 아름다운 반칙이 허용되는 곳”이라고 했다. “현실에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기 힘들지만, 레슬링에선 약한 자가 기술을 걸면 강자가 그 기술을 받아서 넘어가줍니다. 레슬링에선 약자의 기술을 받아줄 줄 알 때 진정 강자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는 “레슬링이 사회체육으로 커져서 김 부장과 이 대리가 넥타이를 매고 와서 ‘오늘은 이 대리 고생했으니 네가 이기고 내가 기술 받아줄게’ 하면서 맞붙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냐”고 즐거운 상상을 했다.

밤 9시가 넘어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1만7천원짜리 택배였다. 그는 “기름값 빼고 수수료 떼면 5천원 정도 벌겠네”라고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는 다시 ‘퀵서비스맨’으로 돌아갔고, 그 일상에 지칠 때쯤 다시 만화 속 주인공 ‘아이언맨’으로 돌아와 공중 돌아 두 번 비틀기로 또 허공을 날 것이다. 한때 잊었으나 돌아 돌아 찾아온 그곳. 어린 시절 그가 꿈꿨던 링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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