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 대신 민생, 전문 용어 대신 편안한 술자리의 언어로 풀어내는 시사와 엔터테인먼트의 독특한 접점
▣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
“지난주 한반도는 ‘비몽사몽’이었다. 협상을 보러간 분들이 괜히 졸린 상황에서 협상을 한 것 같다.” 네티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난주 문화방송 (토요일 5시15분)에서 7명의 ‘용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친 소떼의 퍼레이드가 한반도를 휩쓸었던 그때, 이하늘은 쇠고기 수입 협상에 참여한 관료들이 ‘얼리버드’인 탓에 졸면서 협상을 한 거 아니냐며 졸속 협상을 꼬집었고, 박미선은 쇠고기가 들어가는 상품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그리고 김구라의 일갈. “(수입산) 쇠고기 육회를 먹느니 삼겹살을 씹어먹겠어!”
생필품 50개를 애드리브로 정했다?
시사 프로그램이 늘 ‘아는 사람만 아는’ 화법으로 뜨뜻미지근한 발언들을 하는 사이, 는 누구나 박장대소할 수 있는 표현으로 세태를 꼬집는다. 이명박 정부의 물가 정책에 대해서는 “(생필품 품목 50개를) 애드리브로 정한 게 아닐까요?”라는 촌철살인이 뒤따르고, 어린이 납치 사건에 대해서는 “차라리 애들 이마에 카메라를 붙이는 게 낫겠다”며 대중의 허탈한 심정을 대변한다.
김국진, 김구라, 신정환, 윤종신은 문화방송 의 ‘라디오 스타’에서 초대된 연예인을 마음껏 가지고 노는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들은 에서 박미선, 김성주, 이하늘을 만나 시사를 가지고 논다. 야간자율학습 자율화 같은 문제가 나오면 중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박미선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선후배 간의 체벌 문제가 나오면 1년 전 문화방송을 퇴사하며 진통을 겪었던 김성주 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물론, 이는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다. 는 사실상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 온갖 댓글을 다는 네티즌의 모습을 토크쇼로 재현한 것과 같다. 출연자들이 신문기사를 하나씩 골라서 계속 수다를 떠는 것이 그렇고, 스스로 ‘독설 9단’이니 하며 칭찬보다는 비난을 먼저 하려는 게스트들의 성격도 그렇다.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가 늘어놓는 연예인에 대한 독설은 논란을 일으키지만, 졸속으로 이뤄진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독설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정해진 형식 없이 시사부터 시작해 출연자들의 사생활 폭로까지 이어지는 의 수다는 때론 산만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그 여유로움 속에는 지금의 시청자가 원하는 어떤 ‘목소리’가 담겨 있다. 시사 프로그램은 정색한 얼굴로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으면서, 어떤 이슈도 최대한 돌려서 비판하지만, 는 ‘수다’를 빌미로 무엇이든 직설적으로 말한다. 시사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아이들 납치 사건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대중의 마음. 는 바로 그 욕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준다. 물론,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에 위치한 에서 엄정하고 날카로운 시사 이야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김성주는 물가가 오른다는 얘기에 “그럼 돈을 많이 찍어내면 될 것 아니냐”는, 웃기려는 것인지 진심인 건지 알 수 없는 발언을 하고, 김구라는 선후배들의 폭력 문제에 대해 “폭력은 저질러서는 안 되겠지만 선후배 군기 잡기는 하버드에서도 있을 것”이라거나, “남자 입장에서는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아도 다 참아주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말을 하면서 주부인 박미선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때론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의 이런 발언들이 오히려 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유다. 시청자는 그 발언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발언들조차 수용하면서 무엇이든 거침없이 말하는 를 보며 통쾌함을 느낀다. 정치에 염증이 난 대중은 국회의원 선거 때 투표는 많이 하지 않지만, 지금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다. 는 시사를 거대 담론 대신 민생을, 전문 용어 대신 편안한 술자리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시사와 엔터테인먼트가 만나는 독특한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토크쇼가 그토록 오랫동안 시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던 시사와 오락 프로그램의 조화가 유머 섞인 독설과 불만의 ‘수다’를 통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이뤄졌다.
공정하지 못해 더 통쾌하다
특히 의 유일한 여성 출연자인 박미선이 보여주는 능력은 발군이다. 박미선은 수입 쇠고기 문제에 대해 자신이 자료를 찾아 문제점을 지적하는 성실한 토론자인 동시에, 30대 이상의 남자뿐인 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여성이자, 어머니이며, 선배 방송인이다. 김구라를 비롯한 ‘라디오 스타’의 출연진들이 그들 특유의 독설을 통해 어떤 소재든 이야기할 수 있는 의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하면, 박미선은 선배의 입장에서 이슈를 전환하고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들에 대해 적당히 반론을 하면서 균형을 잡으며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다.
또한 스스로를 ‘신용불량자’였다고 말하는 이하늘은 래퍼의 언어로 서민층의 정서를 대변한다. 다른 출연자들처럼 웃기는 멘트를 하려는 노력 대신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이하늘은 시사를 코미디로 다루면서도 너무 경박해지지 않는 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남녀 동거 문화에 대해 “여자친구의 집에 에어컨이 있는 게 너무 좋아서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하늘의 말은 웃기기도 하지만, 지금 뉴스에 나오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면을 보여준다.
과거 연예인에 대한 폭력적인 욕설을 하던 김구라가 여전히 종종 김국진의 이혼 문제를 거론하며 ‘물어뜯기’를 하고, 동시에 시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불편한 부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미선부터 그런 김구라까지 모든 사람들이 모여 ‘눈높이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다.
사회의 ‘명랑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역설
의 출연자들이 수입 쇠고기 문제에 대해 발언하자 네티즌들이 그들을 ‘용사’로 부르며 지지한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대중은 ‘웃고 즐기며 보자’던 오락 프로그램에서마저 시사적인 발언을 원하고, 연예인의 소신 있는 발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웃으면서 TV를 보도록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세상. 세상을 명랑하게 만드는 히어로들을 찾겠다는 슬로건을 내건 의 탄생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명랑하지 못한지 보여주는 역설의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히어로는 늘 그렇듯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우리 이웃들 사이에서 탄생한다. 가 어디까지 ‘지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토요일 오후 5시라는 느슨한 방송 시간 탓에 아직은 여유 있게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 있지만, 관심이 더 높아지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수다스런 히어로들이 지금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TV에서 대신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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