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세 나오미가 상처를 핥아 만든 치유일지 영화
▣ 심영섭 영화평론가
인생의 짐이 무거울 때, 세상의 감독 중에는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 치유의 주사를 놓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이들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랬고, 김기덕이 그랬으며, 이 여자 가와세 나오미가 그렇다. 3살 때 이미 아버지가 버렸고, 어머니가 떠났고,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컸던 그녀에게 카메라는 오랫동안 자신의 환부를 덮는 붕대 구실을 해왔다. 사실상의 데뷔작이자 사적 다큐인 에서 그녀는 어린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러곤 그 쓸쓸한 유년의 시침을 되돌려 기억의 길들을 거슬러 올라가 이 세상 누구도 자신에서 말을 걸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 소녀는 카메라를 들고 나무에게 바람에게 하늘에게 살며시 물어본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왜 이토록 외로운 거냐”고.
결핍 없는 충만함, 자연과 빛
세월이 흘러, 새로 나온 영화 을 찍을 무렵에도, 가와세 나오미는 유일한 피붙이였던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 경험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녀는 엄마가 되는 출산의 신비를 치러냈다. 전작 다큐 에서 할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어린 손녀를 등에 지고 가는 느린 생명체로 비유했을 만큼, 그녀의 할머니에 대한 애착은 절대적인 편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치매는 치매 이상의 문제를 그녀에게 야기한다.
에서 가와세 나오미는 사랑했던 이의 상실을 찬란한 삶의 외경와 접목하는 힘겨운 인생의 숙제를 계속 풀어 나아간다. 그런 만큼 은 그냥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가와세 나오미가 생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핥아 만든 치유 일지, 내면의 풍광을 잡아내는 채색화, 영상으로 써내려간 일기인 것이다.
아이를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마치코는 나라현의 한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요양원의 노인들 중 유독 시게키는 죽은 아내 마코를 못 잊어하는 말썽 많은 할아버지. 나무에도 올라가고, 붓글씨를 쓰다 마치코라는 석 자의 이름에서 ‘치’를 지우며 죽은 아내 ‘마코’라고 우기는가 하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가방 때문에 마치코를 밀쳐 상처를 내기도 한다. 어느 날 마치코는 시게키와 함께 소풍을 갔다 숲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게 되고, 생사의 경계에서 노인과 그녀, 단둘이만 남게 된다.
늘 그러하듯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 세상에서 나무는, 숲은, 바람은, 녹차 밭의 잎새는 녹청색 빛으로 푸르디푸르다. 도시의 아스팔트 키드가 아니라 울창한 나라현의 산골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소녀에게, 자연의 빛은 카메라라는 붓으로 풀어 쓸 수 있는 유일한 물감이었다. 데뷔작 에서부터 일관되게, 오즈 야스지로의 필로 샷(줄거리의 전개와 상관없이 공장 굴뚝의 연기, 난로 위에 올려진 주전자, 빨래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담은 오즈 감독 특유의 정물 샷)이 그러하듯, 그녀의 영화 세상에서 자연과 빛은 결핍 없는 충만함의 순간, 너무 황홀하게 윤기가 나서 오히려 더 슬퍼지는 어떤 경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초기작의 풍광은 가끔 주인공의 감정을 버려두고 제 혼자 푸르렀다. 그건 매혹과 절망, 야속함과 담담함이 동시에 담긴 관조적 푸르름의 스펙트럼에 속했다. 에서 마을을 관장하는 수자쿠, 즉 남쪽의 중국신 앞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도, 나무와 바다는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를 거쳐 에 이르면, 푸르른 녹색의 장원 사이로 가물가물 펼쳐지는 장례식은, 생명력이 약동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치러내는 것이기에 더없이 처연해 보이다가, 어느덧 인간을 감싸안는다. 주인공들은 흙에, 나무에 그리고 서로의 알몸에 몸을 비벼대며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적어도 죽음에 관한 한 그녀는 무엇인가를 믿게 된 듯하다. 카메라가 창밖의 나비를 잡고 있는 순간, 요양원의 할머니들은 “죽으면 춤을 추듯 훨훨 날아서 하늘 나라로 간다”고 말한다.
“우리, 살아 있죠?”
죽음과 삶의 줄다리기 게임 속에서, 계속해서 영화는 ‘살아 있음’에 대해 명상한다. 스님의 입을 통해, 시게키의 웃음을 통해, 마치코의 울음을 통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우리에게 ‘살아 있냐’고 물어본다. 먹고사는 것과 다른, 밥을 위 속에 넣는 것과는 다른,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끼냐고 물어본다. 그러곤 영화 속의 스님은 ‘살아 있다’는 건 실감하는 거라고 말한다. 살아 있음에 실감하는 것. 이미 마치코는 직장 생활이 고단할 때, 간사이 지방 출신의 동료에게서 그녀의 애인이 했다는 전언, “정해진 규칙 따위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삶을 느끼는 데 정해진 규칙 따위는 없다.
울울한 숲에서, 마치코는 기꺼이 추위에 떠는 시게키를 알몸으로 감싸안아 체온을 전해주며 “우리, 살아 있죠?”라고 물어본다. 이미 그녀는 시게키의 가방을, 삶의 짐을 대신 짊어진 채 산길을 오르고 있다. 시게키는 아내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서, 30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켜왔던 나무에 몸을 비벼댄다. 33년 전 아내를 잃었던 시게키는, 그로 인해 아내와 늘 함께 ‘현재’를 살게 되었다. 그 점은 아들을 잃었던 마치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제 나무와 바람은 예전처럼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게키의 늙은 육신을 뉘어주고, 마치코의 눈물을 씻어준다. 서로를 감싸안고, 마음의 고리를 이뤄 두 존재가 포개어지는 찰나, 시게키의 아내가 남겼다는 오르골의 여린 소리가 청명하게 영혼의 창을 두드린다.
영화의 마지막, 하늘로 힘껏 손을 뻗치는 나무들을 우러러보는 마치코의 포즈는 그 옛날, 눈 내리는 하늘에 한없이 시선을 고정했던 이와이 지의 첫 장면 바로 그 포즈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자연의 정한에서 지극한 순정의 투명함을 추구하는 일본 영화의 전통 속에서, 가와세 나오미는 고레다 히로카즈의 이후 다시 한 번, 또 다른 시네포엠(시나리오 형식으로 쓴 시)의 경지를 연다. 칸은 이번 작품으로 가와세 나오미의 손에 심사위원 대상을 안겨주었다. 이제 그녀는 좀 편안해진 것일까.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그 상찬, 그 주목, 그 영광에 마음이 많이 풀렸을까.
나뭇가지보다 굳센 사람 ‘人’자
이 영화를 통해, 오랫동안 자신의 껍질 안에 견고하게 또아리를 틀었던 가와세 나오미는 드디어 인간의 상처는 인간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평범한 진리지만, 그녀의 속세에 대한 불신과 질긴 상처를 생각해본다면, 이건 분명 일종의 성숙이고 초월이다. 그래서 다큐와 극영화의 언저리에 걸쳐져 그 소박한 정직함이 시리디시린 자기 연민과 통했던 그녀의 영화 세상에, 드디어 인간관계의 여린 하모니가 들리는 듯하다.
은 기나긴 감정적 여운 속에 그토록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영혼, 애틋한 상실의 아픔을 부드럽게 위무해준다. 우주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흙 속에 과거를 묻고, 마음과 마음을 맞대어 나뭇가지보다 굳센 사람 ‘人’자를 담아낸 영화.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 역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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