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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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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난공‘불’벽을 둘러치다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간코지와 도쇼다이지에서 엿본 일본의 문화재 방재 시스템… 지역주민·소방당국과의 긴밀한 협업체제 이뤄

▣ 나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은 최근 ‘일본의 경주’인 고도 나라를 찾아 유명한 옛 절 두 군데를 답사했다. 도다이지, 고후쿠사 등과 더불어 일본 나라 7대 사찰인 간코지와 8세기 당나라 승려가 세운 가람이 그대로 보존돼온 도쇼다이지. 둘 다 세계문화유산이다. 1천 년 넘는 건축물이 많은 두 절에는 숭례문 화재 사건 뒤 교훈을 찾으려는 답사객이 늘어나고 있다. 화마를 막기 위한 사찰의 독특한 방재 시스템과 소방당국과의 협력관계 따위를 현장에서 살펴보았다. 가장 앞서간다는 일본 문화재 방재 시스템의 단면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원터치 버튼을 살짝 누르니…

“불을 끄는 건 전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하는 겁니다. 불을 지르는 것도 대개 사람이듯이….”

남빛 승복을 입은 쓰지무라 스님은 “사람을 위한 길이 곧 문화재를 위한 길”이라고 법어를 전하듯 한마디 했다. “화재 감지와 소화 등의 모든 방재 작업과 관련 장비 일체를 사람 중심, 곧 손 놀리는 조작의 편리함 중심으로 맞추려 노력해왔다”고 했다.

스님이 지하탱크에서 소방수를 퍼올리는 엔진 펌프실로 걸어들어갔다. 싱긋 웃더니 펌프실 한구석에 있는 네모난 방재반 기계의 원터치 버튼을 살짝 눌렀다. 고압의 물을 불난 곳에 분사하는 ‘방수총’과 소화전의 펌프를 움직이는 엔진이 버럭 굉음을 내기 시작한다. 펌프실 창문 바깥으로는 스님이 주지로 있는 일본 나라의 고찰 간코지의 고색창연한 본당이 봄비 속에 서 있었다. 히노키 나무로 짠 건물의 벽체와 대들보, 공포 등의 부재들이 1천 년 세월의 때를 입어 더욱 장엄하다. 돌연 스님이 본당으로 달려가더니, 본당 처마 마루 밑에 쑥 손을 집어넣는다. 서류함 같은 것이 딸려나오는데, 그 안에서 덜컥 호스를 집어들었다. 바로 소화전이었다. 엔진의 굉음을 신호로 소화전 호스를 잡고 물을 분사하는 초기 불끄기 작업의 자연스런 동선이 그려진다.

간코지는 6세기 백제 조상들이 세운 아스카지가 전신이다. 이후 8세기에 도읍이 된 나라로 옮겨지고, 12세기 무인정권 시절 다시 고쳐 지금에 이른다. 절의 규모는 중세 무사정권 이래 선실과 본당 정도로 줄었지만, 문화재 방재에 관한 한 가장 짜임새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간코지다. 첨단장비에 절 사람들과 ‘나라마치’로 불리는 인근 전통주택가 주민들의 ‘몰입 방재’가 더해져 난공불락의 방화벽을 쌓은 것이다.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절이라면 거의 다 차려진 첨단 방재장치들은 이 절에도 어김없이 설치돼 있다. 숭례문 화재 뒤 국내 문화재 동네에도 알려진 고압 방수총이 본당, 선실 둘레의 지하, 지상에 7개가 있고, 건물 사방 바닥의 구멍에서 분수처럼 물이 솟아올라 커튼처럼 막을 만들며 불기운을 차단하는 드렌처가 43개나 건물 둘레에 있다. 건물 마루 아래 서랍식으로 수납할 수 있는 방화 호스 등도 눈길을 끈다. 본당과 선실 천장과 바닥에는 내부가 빈 열감지선이 거미줄처럼 둘러쳐져 내부 이상 유무를 감시한다.

이 방재장비들은 종합 경보장치에 연결돼 연구소와 관리직원 사무실에서 특정 부분의 불빛 변화만으로 이상 동태를 파악할 수 있다. 꼼꼼한 방재경보 회로도 건물 곳곳에 내장돼 손바닥 보듯 건물 내부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절 사람들은 장비 자체보다 장비를 사용하는 방식에 더욱 골몰해왔다고 말한다.

이들이 1년에 수시로 벌인다는 진화 훈련 매뉴얼을 보니 단계적으로 초기 진화를 하는 데 집중돼 있다. 감지·경보기로 불난 것을 확인할 경우 우선 건물 내부에서 소화기를 이용해 진화를 하고, 접근이 여의치 않을 경우 건물 바깥 마루 바로 아래에서 서랍형 소화전을 꺼내 대응하고, 더욱 불이 확산되면 조금 떨어진 방수총대로 피해 원거리에서 50m 이상 분출하는 물로 화마를 제압하면서, 드렌처의 수막을 형성하는 단계적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다. 단계별 장비 조작법이 아주 쉽고 간단하다. 8년 전 설비 개수 당시 누구라도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고민이었다고 한다.

간코지 문화재연구소의 이누이 나오키 총무실장이 본당 앞마당의 방수총대로 일행을 데려갔다. 앞마당의 방수총은 지하 내장형과 지상 내장형이 있었다. 스테인리스 상자 속의 지상형 방수총은 상자 안쪽에 노즐과 설명서가 붙어 있었다. 이누이가 설명한다.

일반인도 잠깐 설명으로 조작 가능

“사용법이 간단합니다. 상자를 열고 안에 있는 3단계 작동사용서를 읽습니다. 그다음 포신에 해당하는 노즐을 끼우고 엔진 가동으로 물이 나오면 뒷부분 손잡이를 잡고 화점을 겨냥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일반 관객도 잠깐 설명을 듣고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지요.”

절 건물이 두 채밖에 없는 간코지의 진화 매뉴얼은 도다이지나 고후쿠사 같은 거찰에서는 다르게 응용된다. 자체 건물의 특징을 가장 잘 아는 절과 수시로 건축물 시설을 견학 견습하는 소방당국이 조율하면서 장소별로 다른 진압 매뉴얼을 공유한다. 간코지 내부 공간별로도 감시 매뉴얼이 다르다. 지장상이 놓인 본당 공간 뒤쪽의 후단에는 ‘호노센서’라는 특수센서가 천장에 집중적으로 붙어 있었다. 이 공간구역에서 불자들이 촛불을 많이 켜고 망자 공양을 하기 때문에, 화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야간 경비는 건물 둘레 곳곳에 있는 전자 기둥에서 적외선을 발산해 보이지 않는 차단선을 친다. 차단선에 외부인이 닿으면 요란하게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육성이 사찰 경내는 물론 인근 나라마치 전 마을에 울려퍼지게 된다. 경고음은 소리를 들은 직원들이나 관리를 위탁받은 인근 마을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꺼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방재와 점검이 이뤄지는 구조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절 옆 나라마치 사람들과의 공동 방재 활동이다. 1년 중 호류사 금당벽화가 불탄 1월26일과 여름에 벌이는 진화 합동훈련 등에는 수시로 인근 나라마치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절 내부의 방재설비 등을 공동으로 조작하거나, 참관해 기능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방수총, 드렌처 등의 작동을 직접 연습하면서 긴급 상황 발생 때 전문가 못지않은 진화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소방당국, 가스레인지~옷장 거리까지 체크

나라현에는 여러 곳에 자체적으로 결성한 소화단 혹은 소방단이 구성돼 있다. 에도시대 후기의 상점가 건물을 간직하고 있는 간코지 부근의 나라마치 소화단이 가장 오래됐고 활동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간코지의 경우 나라시 소방단 아스카지구로 편제돼 있는데, 2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진화 방재 훈련을 참관하고 직접 조작도 하면서 심야 방범순찰도 같이 하고 있다. 쓰카모토 실장은 “절과 가옥들이 가깝게 붙어 있어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이 강하다. 불이 나면 소방차가 출동할 때까지 초동진화하고, 진화 뒤 뒤처리도 도맡는다”고 말했다. 나라마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구코 야스아키(74)씨는 “수년 전 소방대원에서 은퇴했지만 작업복을 간직할 정도로 자부심이 크다”며 “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관할 소방서도 수습 교육의 첫 일정으로 절의 내부구조 견학을 잡는다고 한다. 절 관계자는 “금당 옆 수장고에 오중소탑과 불상 등의 국가 문화재가 있는데, 유사시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빼는지를 놓고 토론하곤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나라시 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8세기 당나라 승려 감진이 수차례 풍랑을 헤치고 건너와 세웠다는 니시노쿄 지역의 도쇼다이지. 나라현 교육위원회 문화재보존사무소의 야마다 히로시 주사가 안내를 맡았다. 혈기 넘치는 사천왕상 조각과 일본 최고의 목상 조각인 감진 스님 좌상이 있는 이 절은 8세기 덴표시대의 금당 재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 내부에 불상을 넣고 내년에 위용을 드러내게 될 금당 우진각 지붕을 복원한 장관이 처음 취재진에 공개돼 찬탄을 발하게 한다. 다른 곳처럼 첨단 방재장치들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예당 회랑을 따라 도열하듯 설치된 드렌처, 맨홀 같은 지하 공간에 설치된 대형 방수총(간코지보다 훨씬 컸다) 등도 완비돼 있었다.

이 절의 가장 큰 자랑은 소방당국과의 철저한 협업체제였다. 문화재과를 두고 있는 교토시 소방국과 더불어 나라시 소방국은 각 지역별로 관할 구역마다 문화재 수리 담당자 혹은 사찰 관계자들과 상호 협조 연락 체제를 구축한다. 언론의 관심 속에 국가적 복원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도쇼다이지는 관할인 나라현 미나미 소방서가 금당 강당 등의 내부 구조와 내부 소화기 배치 상황은 물론, 그 옆에 임시 건물을 치고 자리잡은 보존사무소의 소화기, 집기 배치 현황까지 파악해간다. 야마다 주사는 “심지어 사무실 가스레인지의 화기와 옷장의 거리 등도 민감하게 지적할 때가 있어 놀란다”며 “불상사에 대한 책임을 더는 일인 만큼 서로 정보를 더 주려고 하지, 귀찮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원 중인 금당 내부의 소화기 배치 변경 상황, 소화전에 물을 언제까지 쓰고 언제 잠갔는지 등등에 대해 기록한 서류 파일들도 주고받는다고 한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의 수준 높은 방재 시스템은 불타기 쉬운 목조건물이 절대다수인데다, 지진 등의 천재지변과 대화재 등을 많이 겪어본 역사 경험이 작용한 바 크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끊임없이 소방당국과 협력 및 정보공유 체제를 유지해나가려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비면에서도 앞서가지만, 자연재해의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방재 시스템 진화를 고민하며 토의한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일본에선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지진 화재에 따른 문화재 피해를 막기 위해 높은 산간에 대형 저수조를 마련해 전기가 끊겨도 그 유압으로 방수장비를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 결과 지금은 도다이지, 교토 닌나지 등 상당수 사찰에 낙차식 자연 저수조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도 부끄러운 역사는 많다. 1950년 긴가쿠지(금각사) 방화, 1949년 호류지 금당벽화 소실, 나라 가시와라 신궁 소실 등 크고 작은 문화재 화재가 잇따랐다. 20세기 초 국보·보물제도 도입 이후로 화재와 전쟁으로 오키나와 궁성 등 300군데 이상의 문화재가 불타버렸다는 비공식 보고도 있다. 숱한 시행착오가 쌓여 지금의 선진 방재 시스템을 만들었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보완책을 만들었다는 전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방재전문가인 리쓰메이칸대학의 마에다 교수는 최근 국제기념물유적보존협의회(ICOMOS) 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전통 건축물 화재의 방재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펼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본다”고 맥을 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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