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아티스트 백현진, 첫 번째 솔로 앨범 에서 세상의 진풍경을 그리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되는 건 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쓰던 일기는 철이 들면서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재미있었다”에서 은밀한 짝사랑, 담임에 대한 증오를 거쳐 청춘의 과잉 자의식,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해왔다. 개인의 가장 내밀한 기록인 일기에 일상의 잡다한 일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기록되지 않고 없어졌다.
세기말이 지나고 2000년도 지나 서른이 된 백현진은 자신의 이십대를 돌아보고 결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특별했던 날들 대신, 그 누구의 일기에도 쓰여 있지 않을 비루한 일상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려 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이자 미술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결국, 문제적 아티스트인 백현진의 첫 번째 솔로 앨범 은 아무것도 아닌 나날에 대한 스스로의 관찰이다.
‘동네 친구들’과 3년 동안 설렁설렁
백현진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모든 노래는, 심지어 연주곡조차 방송금지 판정을 받았다. 혹여 그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짜증도 냈다. 왜 쇳소리를 내냐고, 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냐고, 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냐고, 도대체 왜 그렇게 노래하냐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한때 영화주간지에 격주로 연재하던 일러스트는 얼마 못 가 지면에서 사라졌다. 독자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뭘 그린지도 모르겠으며, 그림도 못 그리는데다 내용은 심히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그런 항의 말이다. 과연, 액면 그대로 문제적 아티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적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문제적 아티스트’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영화감독들은 백현진을 사랑했다. 박찬욱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뮤직비디오는 언제든 공짜로라도 찍겠다고 했다. 홍상수와 임상수, 송일곤, 정재은 그리고 김지운까지. 작가의식을 가진 감독들은 어김없이 그의 노래를 자신의 필름에 입혔다. 어어부 프로젝트가 발표한 넉 장의 앨범은 희귀 앨범 대접을 받으며 중고조차 구하기 힘들다. 늘상 즐겨 들을 수 없는 음악은 아니었지만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당연히 주류 대중음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디 음악도 아니었다. 몇몇 장르로 범주 지을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의 인디 말이다.
은 백현진이 모든 노래를 혼자 만들었으며 연주는 그가 ‘동네 친구들’이라 칭하는 주변의 뮤지션들이 맡았다. 역시 그와 같은 시절을 살아왔고 함께 놀고 작업했으며 지금도 같이 놀고 작업하는 사람들이다. 방준석, 박현준, 손경호, 정재일, 성기완, 신윤철 같은 선수 중의 선수들 말이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이 앨범을 작업한 백현진은 설렁거렸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설렁설렁 녹음했다. 정교하게 녹음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놀 듯이. 하지만 앨범의 밀도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참가한 이들의 내공과 에너지가 날것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교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고수들의 놀이판이다. 백현진 역시 놀 듯이, 장난치듯이, 뭐 으레 그렇듯이 노래한다.
그런 내공과 놀이의 에너지가 어울렁더울렁거리는 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음악 이야기다. 토크쇼 제목으로 잘 쓰이는 음악 이야기가 아닌, 그야말로 음악으로 이야기를 하는 앨범인 거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메타포와 미메시스로 점철되고 우화와 풍자가 난무하던 게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백현진이 쓰던 가사 아니었는가. 그래서 엄마가 성전환수술을 하고 이마에 레이다가 달리고, 무슨 제임스 조이스 소설처럼 대상도 없고 의미도 없어 보이고 서사도 없는 가사까지 서슴없이 내뱉던 그가 이야기를 하다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같은 노래에서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노래를 빌려 대상을 띄우고, 극적 긴장감을 고취시키는 이야기꾼. 세상에 ‘깍두기 반찬’이란 두 단어를 그렇게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보컬리스트가 또 있었던가?
은 백현진이 노래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작품이다. 거기에 기가 막힌 서사가 덧붙여진다. 사건과 사건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우리 일상 속 서사가 말이다. 그래서 어어부 프로젝트의 작품이 때로 김기덕의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면, 은 그 제목만큼이나 홍상수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킬킬거리는 건, 그 안에 바로 우리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보려 하지도 않고 별로 볼 필요성도 못 느끼는, 그러나 모두 하고 있는. 백현진은 안에서 1인칭과 2인칭, 3인칭을 넘나들며 어제 저녁에 당신이 겪었을지도 모를 그런 순간을 노래한다. 어떻게 이런 게 노래 가사가 될까 싶은 단어와 문장들이 참 뻔뻔하게도 노래가 된다. 그것도 껌딱지와 아교처럼, 멜로디에 착 달라붙어서 흐느적대고 휘청거리고 달리고 걷는다.
빈틈과 빈틈 사이에 있던 잊혀진 감정
어느 노래 할 것 없이 돌출돼 있는, 악다구니 같으면서도 무심한 나날들이 그리는 건 정서다. 그리움이고 회한이고 소외고 아픔이다. 그 정서를 백현진은 특별하지 않게 노래한다. 기승전결도 뚜렷하지 않고 별다른 장식도 없는 멜로디와 구성에 실어. 그러나 그 노래들은 우리가 썼던 그 어떤 일기보다 더 강렬하게 내 얘기처럼 박힌다. 그래,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는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그건 흔해빠진 이별 노래의, 싸구려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감정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할 만한 순간, 그 빈틈과 빈틈 사이에 있던 잊혀진 감정들이다. 감정이 발생하는 지점 전후의 일상을 백현진은 평범한 단어들로 살려내고 노래하는 것이다. 음악으로 그려낸, 이 개인들의 풍속도를 통해서 백현진은 결국 우리에게 말한다. 미화된 과거의 안자락에는 결국 저런 순간들이 있지 않냐고. 모두 그 순간을 마음속으로는 후회하지 않냐고. 그러니까 반성하자고. 그래서 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위악과 은유를 걷어낸, 진솔하지만 더 적나라한 세상의 이야기다. 나도, 당신도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의 진정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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