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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니, 이렇게 시시한 거였니

등록 2008-04-18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이제는 ‘귀여니 현상’이 과거형이 되어버렸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font>

▣ 강유정 영화평론가

‘귀여니’는 일종의 현상이었다. 귀여니는 인터넷 소설 개념이 채 확립되기 전, 판타지나 무협류 혹은 공상과학소설(SF) 장르들에 소외됐던 다른 독자들을 흡입했다. 흡입된 독자는 대부분 중·고교 여학생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귀여니 소설에 쓰인 문체나 대화들은 여고생들이 쓰는 그것을 거의 옮겨다놓은 데 가깝다. 눈물 나는 부분에는 눈물 모양의 이모티콘이 있고, 화가 나거나 웃음 지을 때도 이모티콘이 문자를 대신했다.

잘생긴 문제아… 귀여니 소설의 공통점

이모티콘은 감정의 묘사가 아니라 표정의 상형문자다.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묘사는 감정에 대해 생각을 요구한다. 감정을 언어로 내뱉기 위해서는 조율과 재배치가 필요하다. 뒤범벅인 채 쏟아진다 해도 묘사된 감정은 선택을 거친 언어다. 하지만 이모티콘은 다르다. ‘운다’라는 말에 포함된 수많은 뉘앙스를 ‘T.T’라는 획일성 안에 수렴해버린다. 운다는 말이 지닌 여러 가지 차원은 휘발되고 운다는 사실만 남는다. 당연히 그 의미는 단순화된다. 문자를 읽을 때 필요한 상상력의 수고가 이모티콘 앞에서는 쓸모없어진다. 리모컨 채널이 바뀌듯 이모티콘은 감정에 연결된 지점을 바로 자극한다.

이 점이 바로 ‘귀여니’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다. 그의 소설은 문학이 아니다. 하지만 귀여니 소설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귀여니 소설에 대한 비판을 불편해한다. 엄밀히 말하면 귀여니는 소설이나 문학으로 부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 귀여니 소설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 관심이 일종의 팬덤을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귀여니의 비문이 소외당해왔던 10대 여학생들의 심리를 건드린 것이다. 그렇다면 여학생들은 소설의 어떤 면에 호응하는 것일까?

귀여니 소설의 대중적 흡입력은 몇 차례 거듭된 영화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화된 작품은 모두 세 편이다. 데뷔작인 , , 그리고 4월에 개봉한 다. 영상 이미지로 치환한 귀여니 소설들은, 특히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크게 의존한다.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배우 강동원이나 조한선은 모두 에서 인기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귀여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는 몇 가지 공통 요소가 있다. 일단 남자 주인공들. 이들은 모두 잘생겼다. 두 번째, 남자 주인공들은 모범생이라기보다 ‘싸가지 없는 천방지축’ 문제아다. 남자 주인공들은 여자 하나를 두고 우정이냐 사랑이냐 논하며 서로 싸운다. 그러면서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나는 죽지 않을 거야. 왜냐면 죽고 난 후엔 널 볼 수 없을 테니까” 같은 대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세 번째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 네 번째, 비 올 때 남자 주인공은 우산 들고 마중을 나오고, 해가 난 듯 광채 나는 미모를 우산을 천천히 내리며 선보인다. 다섯 번째, 주인공과의 사랑을 방해하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들 혹은 비밀들이 발견된다. 여섯 번째, 경쟁자인 남자들 중 하나가 떠나거나 심하게 다친다. 그리고 일곱 번째, 어찌했든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이러한 설정들은 순정만화, 할리퀸 소설의 문법과 다를 바 없다. 귀여니 소설이나 소설을 원작 삼은 영화의 주요 관객층이 초·중·고 여학생이란 사실도 이와 상통한다. 평범한 여고생을 둘러싼 두 명의 멋진 남학생이란 설정이 호소력을 갖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남자 배우가 필요하다. 배우의 선천적 매력에 따라 관객의 이입과 공감, 호감의 차이가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는 곧 영화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심이 남자 주인공 캐릭터라기보다 배우 자체임을 암시한다.

탄성은 키득키득 웃음이 되었네

주목해야 할 것은 ‘귀여니 현상’이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과거형이 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달 개봉한 귀여니 원작의 영화 를 통해 직감된다. 장근석(신은규 역)과 차예련(윤정원 역)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는 귀여니의 전작들과 거의 다를 바 없다. 털털하고 방정맞은 여학생 주인공과 멋지고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 비 오는 날 마중 나와 우산을 주고 가는 남자와 우연히 발견한 비극적 사연들 말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는 이나 가 지닌 질감을 주지 못한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허세가 자꾸만 이입을 가로막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앞의 공식대로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옆집에 이사 온 꽃미남 남학생은 ‘별 이유 없이’ 여주인공을 괴롭힌다. 학교 근방 2km 내 최고 인기 스타인 그 남학생이 이 평범한 이웃을 여자친구로 간택한다. 여주인공은 “네 까짓것”이라고 비웃다가 고분고분 여자친구가 돼준다. 그런데 갑자기 남학생의 ‘베프’(베스트 프렌드의 준말) 강희원(정의철)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꼬인다. 몇 년 전 희원의 아버지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을 정원이 신고해 집안을 풍비박산냈기 때문이다. 희원은 정원을 원망하며 둘 사이를 훼방놓는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이 변해 자기 애인이 돼달라고 요구한다. 정원은 착한 여자이기에 책임감을 느끼며 은규를 떠나 희원에게 간다. 충격을 받은 은규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뇌를 다쳐 ‘바보’가 된다.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는 우연과 비약으로 점철되어 있다. 의 불치병과 의 근친상간 모티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것은 강동원이 우산을 비껴들었을 때 탄성이 나왔다면 이제는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다. 에 대한 오마주를 차용한 이 장면은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인 장근석, 은규에 대한 웃음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사랑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보며 관객은 더 이상 울지 않고 웃는다. 지난 5년여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귀여니 원작들은 초·중·고 여학생들이 지닌 판타지의 무대라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학교 생활을 거의 하지 않는다. 부모들도 만화 캐릭터처럼 독특하고 코믹하다. 남자 주인공들은 학교의 ‘짱’이거나 밴드 리더다. 평범한 고교생과는 ‘다른 삶’을 산다. 고민도 성적, 입시 같은 현실 문제가 아니다. 사랑과 슬픔, 인연과 우연이란 추상적이고도 거창한 주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한다.

슬프고 지독한 사랑에 대한 환상은 여학생들의 심장 깊숙한 곳에 있다. 귀여니의 작품들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은 여학생들의 환상을 건드린다. 그런데 그 여학생들이 어느 새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꿈꿨던 달콤한 로맨스가 진부한 우연이라는 것을 깨닫자, 귀여니의 소설은 마법이 풀린 듯 시시해진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보면 귀여니의 소설이 여전히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귀여니 소설에 처음 반응했던 십대들은 이십대가 되어 그 정서와 결별했지만 이제 막 여중생이 된 새로운 십대들이 다시 귀여니를 읽는다.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건드리는 귀여니의 작품, 그 세계에는 십대 소녀를 유혹하는 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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