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가 보여주는 ‘연예인 라이프 스타일’ 시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쥬얼리 서인영은 ‘신상’(신상품)을 유난히 밝히고, 래퍼 크라운J는 화나면 푸시업을 한다. 정형돈은 편의점에서 모든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솔비는 레이스 달린 공주 침대를 좋아한다. 신애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 미숙하다. 연예인 데뷔 뒤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서라고 스스로 분석한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출연자들은 그들 그대로를 ‘연기’한다. 이걸 보고 나면 ‘신상’ 앞에 뽀로통한 서인영이나 마트 가서 장 보는 정형돈은 상상이 안 된다.
손톱 깎는 리얼리티에서 ‘장동건 리얼리티’로
‘우리 결혼했어요’는 지난 2월 설 특집으로 편성됐다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뒤 에 입성했다. 금방 결혼한 신혼부부 집을 구경하러 가는 ‘연예인 동정’ 프로그램이 아니다. 총각·처녀 연예인을 짝지워서는 한집에 집어넣는다. 화장실을 포함한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이들의 ‘일상’을 살핀다. ENG카메라도 동원된다. 정형돈과 사오리, 크라운J와 서인영이 설 특집의 파일럿 편에서 이미 ‘부부생활’을 경험했고, 알렉스와 솔비는 본편에서는 짝을 바꿔 신애, 앤디와 부부생활을 시작했다. 3월16일 첫 방송에서 부부가 처음 만나 이사를 했다. 둘 다 신발에 집착하는 크라운J와 서인영은 신발장 나누는 것으로 티격태격했고, 아이의 신발을 ‘무서울 정도로’ 모았고 진열장까지 가져온 신애에게 그의 짝 알렉스는 깜짝 놀란다. 정형돈은 대충 청소를 하고는 틈만 나면 잠을 자려고 해서 사오리의 속을 팍팍 긁어놓는다. ‘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내보인다. 서인영이 아니면 어떻게 만난 지 1시간도 안 지난 남편을 ‘서방’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정형돈 아니면 어떻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쇼파에서 허겁지겁 과자봉지를 뜯겠는가.
3월 초 시즌3을 시작한 코미디TV의 도 비슷한 설정이다. 싱글녀의 집으로 젊은 남자가 들어가 살고, 남자는 얹혀사는 대신 여성이 시키는 대로 해준다. 남녀를 한집에 집어넣었을 때 생기는 ‘동물적 호기심’에 맞춘 초점을 ‘공중파’적으로 완화하면 대략 ‘우리 결혼했어요’가 된다. 하지만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더 가까운 친척은 ‘1박2일’이다.
‘1박2일’은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의 한 코너다. ‘1박2일’도 지금까지의 강호동 중 가장 ‘강호동’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화장실 가는 것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눈에, 아니 카메라에 ‘불’을 켜고 출연자들을 따라다닌다. 먹는 것 자는 것을 따라다니니 대본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경남 거창으로 간 그들은 마을 어귀에 걸린 ‘전국노래자랑’ 현수막을 보고는 즉석에서 출전을 결심한다. 물론 예선에 참여하지 않고 본선에 나갔으니, PD의 ‘빽’과 그들의 유명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터. 그래서 더 과장 없이 ‘리얼리티’하다.
‘몰래카메라’(실험카메라) 등은 예외지만, 통상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일반인은 ‘리얼리티’ 담당, 연예인은 ‘연기’ 담당이었다. ‘오른쪽 뺨이 보이게, 조명은 45도 위에서 쳐서 찍어주세요’라고 주문하듯 연예인은 정해진 얼굴만 보여줬다. 그들은 예뻐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화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한미은행 광고의 손톱 깎던 ‘아저씨의 리얼리티’(1998년 3월) 시대를 지나 T광고의 ‘장동건 리얼리티’의 시대로 넘어왔다. 장동건은 자기 목소리로 “결혼 말 나오면 웃으면 되고, 잔주름 늘면 작게 웃으며 되고, 꽃미남 후배 점점 늘어나면 연기로 승부하면 되고…”라고 노래 부른다. 각도 정해진 얼굴이 아니라 사생활을 어떻게 노출하느냐에 인기가 판가름나는 시대다. 패리스 힐턴에게서 를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패리스 힐턴의 ‘라이프 스타일’(‘타’와 ‘일’ 사이에 좀 ‘앙드레 김’스러운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발음)은 그를 대변하는 ‘브랜드’다.
‘상식’ 넘치는 몰래카메라, ‘상식 밖’ 넘치는 리얼리티
‘우리 결혼했어요’ 촬영은 2주일에 한 번 있다. 밤 생활은 ‘1시간 자는 척하기’로 대체한다. 설 특집에서 알렉스는 “우리는 ‘큐’ 사인 들어간다고 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와 똑같을 리는 없다. 집에 달린 것은 ‘범인 잡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주력하는 것은 ‘스타일’ 창조다. 사진 속 스타는 무난해야 하지만, 일상의 스타는 재미있어야 한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았던 ‘검정방 인터뷰’, 이른바 ‘뒷담화’를 도입했다. 솔비는 설 특집에서 자신과 ‘결혼한’ 홍경민에 대해 “오래 살면 질릴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장윤정도 알렉스에 대해 “너무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한다. ‘나쁜 남자’가 좋다는 그들에 대해 홍경민은 “그건 배부른 소리”라고 말하지만, 친절하고 착하고 그래서 재미없는 남자 대신 재미있는 남자는 ‘연기’를 해서라도 가져야 할 덕목이다. 말하자면 ‘장동건 스타일’은 재미없어서 방송용은 안 된다. 몰래카메라에서는 상식이 넘쳐야 했지만, 리얼리티에서는 ‘상식 밖’이 넘쳐야 한다. ‘비호감’ 라이프 스타일도 ‘브랜드’가 되면 ‘호감’과 다르지 않다. 어쨌든 ‘연예인 라이프 스타일’의 시대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1호 헌법연구관 “윤석열 만장일치 탄핵…박근혜보다 사유 중대”
대통령은 두더니, 대통령제 버리자는 국힘…이재명 “정치 복원하자” [영상]
천공 “윤석열, 하느님이 점지한 지도자…내년 국운 열린다”
[단독] 한덕수 국무회의에 ‘2차 계엄’ 의혹 안보실 2차장 불렀다
‘야당 비판’ 유인촌, 결국 사과…“계엄은 잘못된 것”
한덕수, 내일 임시 국무회의…양곡법 등 6개 법안 ‘거부권’ 쓸까
공수처 넘어온 내란 수사…‘수취 거부’ 윤석열 직접 조사 속도전
[영상]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공수본,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 불발…대통령실 “군사상 기밀”
‘오케이?’ ‘쉿!’, 그걸 지켜보는…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