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피쉬’로 ‘드디어’ 돌아온 유세윤, 그 위선과 위악 사이의 위대한 깐죽거림
▣ 이명석 대중문화평론가
발가락 사이가 따끔따끔하다. 이게 뭐야, 싶었더니 그룹 ‘닥터 피쉬’란다. 텅 빈 관객석엔 광적인 팬 한 사람. 그러나 수만 명이라도 운집한 듯 록스타의 시건방을 떨어댄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실제로는 한 사람밖에 없지만)이 없었으면 저희 닥터 피쉬는 없었을 거예요.” 저 겸손을 가장한 눈물 사이로 보이는 조소를 보라. 자신들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리는 척, 세상의 어쭙잖은 밴드와 생각 없는 팬들을 조롱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라. 역시 유세윤이라는 물고기의 입은 보통 뾰족한 게 아니다.
큰 덩어리의 캐릭터를 얇게 저미다
우리 TV에서 괘씸죄의 최소 복역 기간은 얼마일까? 다른 방송사의 버라이어티 쇼로 외도를 나가, 본가인 코미디 쇼의 준비를 펑크 낸 장본인에겐 얼마쯤 자숙의 시간이 필요할까? 판결은 알 수 없지만, 바로 이 시점에 유세윤이 로 돌아왔다. 터줏대감이던 박준형과 정종철의 이적이 막후의 사정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현재의 에 가장 필요한 주인공이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유세윤만큼 높은 타율을 기록한 개그맨을 찾기란 힘들다.
‘봉숭아 학당’의 복학생은 그의 첫 히트작. 학당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복고에 자기도취적인 스타일을 취하고 있고, 복학생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복고가 ‘맹구’와 ‘오서방’이라는 지나치게 먼 과거로 달려가는 것을 막고, 비교적 가까운 과거-군 복무 2년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 정도- 에 초점을 맞추며 젊은 관객에게 어필했다. 더불어 최신 패션이라는 주장과 강렬하게 부딪히는 구닥다리 아이템들을 통해, 내일이면 오늘의 멋쟁이 역시 촌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경박한 시대를 꼬집었다.
‘장난하냐?’ ‘B.O.A.’와 같은 소심파 캐릭터는 유세윤의 본성이 가장 잘 표출된 코미디들. 현대인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파고들며 그 전형을 뽑아내는 코너들은 전 시대의 코미디들과 확실한 차별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캐릭터들은 주로 ‘바보와 덩치’ ‘허풍 남편과 악질 부인’ 같은 큰 덩어리의 대립을 통해 공수의 관계를 만들어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유세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그런 성격들의 세세한 부분을 얇게 저미며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 핵심은 깐죽거림이었다.
막내동생이 닭다리를 먹자, “아~ 큰형 다음은 나인데, 네가 닭다리를 먹었네? 가장 맛있고, 겉살과 속살이 알맞은 조화를 이루는 닭다리를 말이야”라며 부드럽고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다가, 갑자기 “장난하냐, 장난해?”라고 이기심을 토해내는 장면의 카타르시스는 굉장하다. 친구들끼리 피자를 시켜먹다 돈 300원을 보태달라고 하자, 도대체 ‘보태준다’는 개념을 몰라 허둥대는 소심한 A형을 표현해내는 디테일의 섬세함도 놀랍다.
유세윤은 또 다른 발군의 코미디언 강유미와 ‘사랑의 카운슬러’에서 만나 한 치의 양보 없는 핑퐁 개그를 보여준다. ‘스타와 결혼한 팬클럽 회장’ ‘전화안내원과 결혼한 남자’ 등 동시대의 문화를 재단해서 만든 예리한 상황 설정과 훌륭한 연기력은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이상의 재미를 주었다.
이어 ‘막무가내 중창단’을 통해 길거리의 몸 개그를 보여주더니, 많은 개그맨들에게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버라이어티 쇼 무대로 향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등에서 어쩐지 붕 뜬 듯한 느낌은, 역시 정통 개그와 버라이어티 개그는 장르가 다르다는 생각을 더하게 해주었다. 거기에 유세윤이 지닌 캐릭터가 현재의 버라이어티 쇼와 본질적인 위화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조롱을 받아주기에는 너무 뻣뻣한 미디어
나는 ‘성악설’도 ‘성선설’도 아닌 사이비 학설, ‘성깐설’의 주창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을 깐죽거리는 본성을 타고난다’는 이 이론의 모델은 바로 유세윤. 그는 누군가를 씹지 않으면 웃음을 주기 어려운 본능을 타고났다. 물론 〈X맨〉의 ‘당연하지’처럼 버라이어티 쇼에서도 깐죽과 조롱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기본 요소이지만, 정말 기분 상할까봐 ‘장난장난’ ‘농담농담’ 하며 무마하는 자막을 써넣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자가 후보의 이혼 경력이나 수상에 실패한 상처 같은 걸 헤집는 과격한 유머는 아직 우리 사회의 감성과는 멀다.
문화방송 ‘무릎팍 도사’의 ‘건방진 도사’는 그나마 적절한 포지션이이었다. 최민수, 신해철 등 경륜과 배짱이 9단에 이른 연예계 스타들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말발은 올라이즈 밴드의 생각 없는 멘트와 어우러지며 이 코너의 성공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강호동의 큰 덩치와 뒷목을 잡는 자기 비하는 유세윤의 날카로움을 잡아주는 안전판이 되었다. 그러나 ‘건방진 도사’ 바깥에서 유세윤의 깐죽을 받아줄 버라이어티 쇼가 갖추어질지는 미지수다.
‘착한 녀석들’에서 ‘닥터 피쉬’로 이어지는 유세윤의 극단적 자기비하와 왕자병 캐릭터는 지금의 코미디 환경이 자기를 담아줄 수 없다는 느낌을 토해내고 있는 것 같다. ‘착한 녀석들’은 관객과 PD로부터 소외되자 다른 코너에 난입하고, ‘닥터 피쉬’는 텅 빈 관객석을 향해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군요”라며 스스로를 깐죽거린다. 버라이어티 쇼의 MC보다는 희극 배우로 살고 싶다는 유세윤. 위선과 위악 사이에서 절묘한 깐죽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그의 스타일을 담아내기에는 우리의 연예 환경이 너무 경직돼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저우싱츠(주성치)나 마이크 마이어스처럼 스타일과 내용을 함께 갖춘 코미디언이 태어나겠지. 그렇다면 지금 그것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는 유세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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