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최고의 연극 시리즈’ 첫 작품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죄짓고는 못 산다!’
옛적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새겨주던 이 말씀.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고전 비극 를 관통하는 고금의 교훈이다. 아울러 원작을 모티브 삼아 최근 한국 대표 흥행작 자리를 꿰찬 한태숙씨 연출의 에서 더욱 절실히 새김되는 화두다. 온갖 음모와 책략 끝에 왕을 살해하고 권좌를 빼앗는 맥베스와 부인. 부인은 잔혹한 욕망으로 남편의 거사를 충동질했는데, 막상 제위를 찬탈하고 보니, 죄악에 대한 자책감이 밀물 같다. 하지만 자기 욕심을 정당화하려는 심리도 맞서 서로 충돌하면서 몽환증에 시달린다. 주치의의 최면 치료를 통해 왕비는 찬탈의 모의 과정과 섬뜩한 과거사를 극적인 절규로 털어놓는다. 그리고 외친다.
관객·전문가 1천 명의 ‘1993~2006 연극 1위’
‘죄짓지 않은 이들이여, 저주받으라!’
는 인간의 보편적 권력 욕망, 양심 갈등을 부각시키지만, 관객의 피부에 와닿는 고감도 연출을 한다. 1998년 초연 당시부터 재료예술가 이영란씨와 손잡고 극에 밀가루, 진흙, 물이라는 자연 재료들을 끌어들여 극의 이미지, 흐름 따위를 암시했다. 이른바 ‘물체극’(오브제극) 콘셉트로 대중적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런 한씨의 가 서울 예술의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짠 ‘최고의 연극 시리즈’ 첫 작품으로 오른다. 3월21일부터 4월13일까지 전당 구내 토월극장에서 공연될 2008년판. 2000년, 2002년 전당 기획공연으로 열광 속에 치러진 는 최근 전당 쪽이 관객과 전문가 1천여 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에서 1993~2006년 최고의 연극 1위에 올랐다. 원작 의 극적 흡입력을 증폭시키는 한씨의 대중친화적인 연출이 일등공신이었다.
새 는 크게 세 가지 코드로 손짓한다. 첫째, 국내에서 가장 연기력 뛰어난 성격파 배우 2명이 주인공이다. 환각 속의 죄의식, 권력 정상의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맥베스 부인 역의 서주희씨는 초연 이래 이번이 다섯 번째 무대인 맥베스 부인의 분신이다. 죄의 장막으로 둘러싸인 영혼이 신들린 듯 털어내는 과거의 고백을 절정의 연기로 갈무리할 듯하다. 천의 얼굴을 지닌 중견 배우 정동환씨 또한 99년 이래 한씨의 무대에서 궁중의사, 맥베스왕의 역할을 중후한 변신 연기로 소화해왔다. 최면을 걸어 레이디 맥베스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궁중의사의 냉혹, 유연한 캐릭터는 그의 전매특허다.
두 번째, 의 특장이라 할 물체들의 연기다. 무대에서는 밀가루 반죽이 날아다닌다. 파인 무대 한가운데로는 물들이 졸졸 흘러들어와 고인다. 죄의식을 상징하는 소품들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재료예술가 이영란씨는 직접 출연해 까만 바닥 위에 밀가루 그림을 그린다. 반죽은 거대한 뱀으로 변해 레이디 맥베스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오브제’로 불리는 자연재료들이 더욱 강렬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셈이다.
셋째, 기존 극장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허물어버렸다. 무대감독 이태섭씨는 토월극장 무대와 기존 객석 사이를 커튼으로 막았다. 무대 좌우와 뒤쪽에 특설 객석 300석을 밀어올리듯 세웠다. 시선이 불안정한 무대 배후 객석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간의 불안을 더욱 강하게 읽어내는 얼개가 된다. 사방 막힌 축축한 공간에서 관객 또한 욕망의 비극, 참회의 마당에 참여하는 배우가 된다.
“전설이 될지 살아남을지 판가름 무대”
시종으로 분장한 춤꾼들의 떼춤과 타악 연주자 박재천의 생음악 연주, 전통가곡의 구음이 울리는 무대는 음악, 연극, 무용이 몸을 섞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들은 영화와 달리, 시공간에 속박당하는 연극의 숙명을 벗어나려는 시대적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터다. 연출가 한씨는 “내 연극이 한때의 전설이 될지, 견고한 예술적 육체로 살아남을지를 판가름하는 무대”라고 말했다. 전석 4만원(수요일 3만원).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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