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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석의 수다’ 딜레마

등록 2008-01-1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 등 교양과 오락 사이에 선 남희석의 프로그램들</font>

▣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

한국방송 의 자밀라는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춤춰보라고 해서 춤췄더니 방송이 끝나자마자 ‘자밀라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는 한국방송 시청자위원회가 ‘여성의 성적 편견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그를 퇴출 대상으로 지적했다. 물론, 문제는 자밀라가 아니라 자밀라가 스타킹을 매만지자 묘한 탄성을 낸 남자 패널들의 리액션을 통해 ‘외국인 백인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부각시킨 에 있다.

성추행 등 민감한 문제도 장난처럼 다뤄

자밀라에 관련된 논란은 의 독특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의 재미는 한국의 엠티(MT) 문화에서부터 마치 케이블 방송의 성인용 프로그램처럼 백인 외국인 여성을 보면 “얼마냐”고 묻는 일부 한국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거론하는 토크의 다양함에 있다. 외국인 여성들은 그런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는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교양 프로그램 같지만, 거리낌없이 한국의 디테일한 문화까지 파고드는 그들의 토크는 오락적으로도 재미있다. 그래서 는 ‘어디까지’ 오락적인 요소를 허용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출연자들이 한국에서는 속옷이 작게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팩트다. 하지만 그들에게 속옷 색깔을 물어본다면? 물론 에서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는 자밀라의 애교를 개인의 캐릭터 정도로 마무리하지 않고, 남성의 환호성을 위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화제는 됐지만, 욕도 먹는다.

의 이 딜레마는 곧 진행자(MC)인 남희석의 딜레마다. 남희석은 를 마치 버라이어티쇼처럼 진행한다. 마치 SBS 처럼, 남희석은 외국인 여성들에게 거리낌없이 “과거 남자친구의 미니홈피를 스토킹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연예인 대상 토크쇼에서는 파고들어봤자 누가 누구와 사귀었다는 얘기만 나오지만, 일반인 외국인 여성으로부터는 출연자였던 준코가 대학강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처럼 ‘섹시한’ 이슈가 터질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이슈가 나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버라이어티쇼처럼 진행하는 남희석은 민감한 문제까지 장난처럼 다룬다. 그는 외국인 여성 출연자가 사귀는 남자와 단둘이 있었다고 하면 어디서 뭘 했냐고 묻는다. 그건 질문이 아니라 남희석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성적 상상을 여성에 대한 질문을 통해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남희석이 재미를 위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면 할수록, 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함께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따라야 할 정치적인 공정함은 사라진다. 반대로 웃음과 함께 계속 상대방에게 파고들듯 질문을 던지는 그의 진행 방식을 포기하면 외국인 여성들이 더는 디테일한 이야기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돈 간 만남 의미+재미 살리는 능력

와 ‘교양 버라이어티쇼 MC’ 남희석의 등장은 지금 한국 방송의 단면을 보여준다. 남희석은 이전에도 이미 문화방송 처럼 휴먼 다큐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한국 농촌에 시집온 동남아 여성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SBS 의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를 진행한다. 남희석은 두 프로그램에서 오락적인 요소를 첨가해 대중성을 높인다. 특히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에서는 이런 남희석의 장점이 부각된다. 그는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에서 무엇이든 소재로 삼아 농담을 하면서 계속 분위기를 띄운다. 정 안 되면 혼자서 사투리를 쓰며 상황극이라도 벌인다. 그의 진행 때문에 일반인 출연자들이 편하게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고, 시청자들도 지루하지 않다. 과거 감동 코드를 내세운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일반인 출연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그들에게 뭔가를 시키는 식이었다면, 남희석은 그들을 상대로 ‘쇼’를 한다.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의 구성 자체도 그 주의 출연자 찾기부터 출연자의 친구 만나기, 사돈 간의 대면 등 다양한 코너를 통해 최대한 오락적인 재미를 준다. 역량 있는 인기 MC들은 대부분 연예인이 출연하는 버라이어티쇼를 진행한다. 하지만 남희석은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소재의 프로그램을 맡아 거기에 오락적인 재미를 더해 대중성을 확보한다. 그것은 남희석의 공과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상업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요즘, 남희석은 사회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존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처럼 재미와 의미의 균형을 찾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처럼 사회적인 이슈로 해석해야 할 부분마저 오락으로 소비해버릴 수 있다.

교양과 오락 사이, 사회적 의제 설정과 버라이어티쇼의 재미 사이에 있는 남희석은 지금 한국 공중파 방송의 현재를 보여준다. 오락은 교양을 통해 좀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교양은 오락에 흡수되면서 생존 방법을 찾는다. 과연 교양과 오락은, 그리고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버라이어티쇼 MC는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까. 자밀라가 화제를 모았던 날, 에서는 다른 출연자 윈터가 강도에게 폭행을 당했음에도 병원에서 성매매 여성으로 오인돼 치료를 거부당한 사연을 말했다. 그러나 윈터의 사연은 자밀라의 화제와 함께 묻혔다. 지금 남희석에게 필요한 건, 자밀라의 춤을 더 재밌게 부각시키는 오락적인 능력이 아니라, 윈터의 이야기를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시킬 수 있는 더 깊은 ‘교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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