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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보다 깊었던 한·일의 강으로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징용 조선인·일본인·재일한국인 따라 건넌 ‘역사의 강’, 다큐멘터리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다큐멘터리다. 내레이션도 없다. 그것은 길잡이도 없이 초행길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보통의 극영화가 흥미진진한 놀이기구를 ‘조성한’ 테마파크를 한 바퀴 도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대개의 다큐는 길잡이를 하는 해설자를 세워서 지름길을 찾아준다. 은 2시간22분, 마라톤 신기록보다 기나긴 시간을 ‘페이스 메이커’도 없이 가지만 ‘어느새’ 러닝타임이 지나가버린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을 일부러 유도하지 않는 다큐의 정공법이다. 후반에 친절하게 역사를 설명하려 해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뜨거워졌던 눈시울이 적당히 식어갈 무렵에 영화는 끝난다. 김덕철 감독의 은 한국과 일본 사이 역사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얘기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4명의 인물이 살아온 혹은 숨져간 8년의 세월이 담겼다.

가와사키·야스쿠니… 끝나지 않은 전쟁

일제가 만든 중공업 도시, 가와사키로 가는 전철의 풍경은 부천 어디쯤 예전의 수도권 공단지대로 가는 지하철 1호선의 풍경과 몹시도 닮았다. 가와사키에는 일제시대 군수공장 노동자로 징용돼 끌려온 조선인(한국인)과 후손 9천여 명이 거주한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 살지만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김경석 회장에게도 가와사키는 잊을 수 없는 도시다. 젊은 그는 그곳에 끌려가 일본강관에서 일했다. 오래된 철길에서 그는 말한다. “철길이라 해도, 우리의 출구 없던 청년기처럼 앞이 막힌 철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의 청춘을 삼킨 일제의 지배는 끝났지만 그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일제를 상징하는 야스쿠니신사에 강제로 안치된 한국인 유골을 조국으로 찾아오는 사명이 남았다. 다카키 구미코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 애쓰는 여고생이다. 2000년 여름방학에 부천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이 겨울방학에 일본에 오자 폴짝폴짝 뛰면서 반기는 소녀다. 일본인 세키타 히로오 목사에겐 억눌린 이들은 이웃이요, 하늘이요, 믿음이다. 대동아전쟁의 논리를 믿었던 세키타 청년은 가와사키의 핍박받는 조선인을 만나면서 현장 신학에 눈떴다. 재일조선인 송부자씨도 핏줄을 숨기려 청춘을 써버렸다고 돌이키는 사람이다. 이제는 고려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1인극을 하는 운동가로 거듭났다. 4명의 주인공은 대략 가와사키의 이웃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진정성이 너무 닳은 말이 됐지만, 카메라가 응시하는 인물들의 진심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은 어떤 임무를 완성하거나 누군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극적인 구조를 가진 다큐가 아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한두 줄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들의 진심이 울리는 순간은 활자로 기록하기 어려운 깊이를 지녔다. 송부자씨가 어린 시절에 조선인 핏줄이 너무도 싫어서 철길에 누워 자살을 하려고 했다면서 눈시울을 적실 때, 마틴 루서 킹을 따르는 세키타 목사가 9·11 동시테러 직후에 부시가 제발 “적을 사랑하라”고 했던 성경에 따라서 보복전쟁 따위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강론하다 울컥할 때, 그들의 눈물이 어느새 당신의 눈에서 흐를지 모른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흐느낌은 가슴에 남는다. 이렇게 은 몰입의 장치를 쓰지 않지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경석 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일본에 건너가 후생성 관리들 앞에서 말한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인 명단을 프라이버시를 핑계로 (한국 단체에) 넘겨주지 않는데, 후생성이 야스쿠니에 명단을 넘길 때는 프라이버시를 생각하고 전달했냐.” “야스쿠니에 합사돼 기뻐할 한국인이 누가 있겠느냐.” 그가 따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마음으로 같이 따지게 된다. 이렇게 에는 절창의 순간이 있다. 그것은 온전히 인물의 몫이다. 그들의 소망이 그토록 절절하기 때문이다.

반성하고 나면 공존해야 할 우리

일본의 조선학교를 다룬 다큐 가 일본 속의 조선(한국)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은 ‘일본 속의 조선’ 밖의 일본에도 눈길을 던진다. 한국인, 일본인, 한국계 일본인, 인물의 다양성도 커졌지만 메시지도 확장됐다. 일본을 비판하는 피해자 한국인,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일본에서 차별받고 자라서 심지어 자살 기도까지 했지만 이제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좋다고 말하는, 자신의 뿌리와 살아갈 오늘을 동시에 긍정하는 인물도 나온다. 여기서 일본은 ‘우리 학교’ 바깥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이 있어서 이렇게 경계는 희미해진다. 결국 영화는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공존을 추구한다. 송부자씨 같은 ‘한국계 일본인’에게 일본은 태어난 고향이고 살아갈 터전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한-일 사이에 100년 침략에 앞서 2천 년 교류의 역사가 있었다고 말할 때, 한국의 한국인은 새삼 진실을 되새긴다.

재일동포 김덕철 감독은 키네마준보 영화상을 받은 을 공동 감독했고, 등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의 제목 붓글씨는 김지하, 음악은 김영동, 엔딩 음악은 장사익이 맡아서 김덕철 감독의 필생의 작업을 도왔다. 와 함께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인 운파상을 받은 은 하이퍼텍나다에서 11월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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