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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필사본은 쓰다 만 한문소설”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10년간 뜨겁던 진위 논쟁에 뛰어든 한국학 연구자 맥브라이드 리처드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정수산 기자 jss49@hani.co.kr

1300여 년 전 신라에 등장한 화랑도의 정체는 무엇인가. 호국 의지와 도덕성 충만한 엘리트 무사단인가. 정권 다툼과 궁중 남녀 간의 불륜, 남색(동성애)에 휘둘렸던 귀족 파벌집단인가.

지금 사회 윤리와 크게 다른 화랑도와 신라 왕실, 귀족 간의 인맥관계, 권력투쟁 등을 서술한 신라 사서 필사본(베낀 책)이란 책이 1989년 공개된 뒤 학계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10여 년간 학계를 달구었던 진위 논쟁이다. 1999년 진본설을 주창해온 이종욱 서강대 교수의 국역 역주본 출간 이후 조금씩 잦아들었던 논란이 최근 다시 부각될 조짐이다. 푸른 눈의 젊은 미국인 학자가 논란에 ‘기여’하겠다며 뛰어든 것이다.

풍월주·풍류 등 시대착오적 단어들

“ 필사본은 일제시대 쓰다 만 한문소설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위작은 아닙니다. 글을 쓴 한학자 남당 박창화(1889~1962)가 세상에 발표하지 않고, 진짜라고 주장하지도 않고 세상을 등졌는데, 어떻게 진짜로 꾸미려한 거짓 작품이 된다는 것인지요. 논쟁의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단순 진위 가리기에만 몰입한 측면이 있어요.”

한미교육위원단(풀브라이트) 기금을 받아 지난 8월부터 국내에서 연구 중인 한국학 연구자 맥브라이드 리처드(38)의 거침없는 주장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신라 불교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 10월19일 동국대에서 특별 초청강연 형식으로 ‘화랑세기에 대한 미국학자의 견해’를 발표했다. “ 필사본이 근대 한문학사상 중요한 위상을 누릴 수 있는 창작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담은 사서는 아니다”란 주장이었다. 그는 “화랑집단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풍월주(風月主)를 비롯한 필사본 특유의 일부 용어들은 비슷한 시기 문헌에는 없고, 16세기 이후 조선시대 문헌에서만 나타나는 것들로 파악됐다”면서, “당대 신라에서 필사본에 언급된 용어 개념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해진 이상, 필사본은 사서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발표문은 또 “필사본 저자인 박창화가 일제시대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일하며 김대문의 원문을 발견하고 필사본을 썼다면, 해방 이후까지 왜 발표를 하지 않았느냐”며 “기존 논문 중 어느 것도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30~45년 사이 박창화는 미완성 한문소설을 썼고, 그 뒤 김종진 등의 제자에게 이들 저술을 넘겼으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잊어버린 것임에 분명하다”는 논지다. 원본이 있다는 일본 지역 학자들도 논쟁에 명확한 의견을 내지않고 관망만 해왔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설명이다. 그는 11월22일 국사편찬위 특강에서도 이런 견해를 밝힐 예정이며, 내년 봄 열리는 한국고대사학회 학술대회에도 참여해 더욱 본격적인 진본설 비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맥브라이드는 필사본을 일제시대 쓴 미완의 한문소설로 보는 결정적 증거로 시대착오적 단어들을 꼽았다.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와 화랑 집단 및 귀족층의 권력 계보를 표기한 풍월정통(風月正統), 진골정통(眞骨正統) 등의 용어들이 그것이다. 풍월주의 경우 고려, 조선시대 기존 문헌들을 뒤진 결과 15세기 조선 성종 때 서거정과 노사신이 편집한 등의 문헌에서 이 단어가 처음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445~81년에 편집한 의 경주풍속조에 “법흥왕 원년(514)에 뛰어난 외모에 행실 올바른 남자들을 선택해 풍월주라고 했다”고 나오는 구절 등이 그런 예다. 이 용어는 비슷한 시기 출간된 에 이어 후대인 18세기에 화랑의 기원을 다룬 실학자 이익의 , 안정복의 등에 연속해 나타난다. 이런 조선시대 문헌들이 필사본 저자인 박창화가 풍월주 개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저자가 필사본에서 조선시대 문헌의 문맥처럼 풍월주란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지장보살·미륵신앙 중국보다 먼저 등장?

맥브라이드는 또 필사본이 권력투쟁을 하는 궁중 귀족층이나 화랑 집단의 각 계파를 서술할 때 쓴 진골정통, 풍월정통, 정통(正統), 도맥(道脈), 도통(道統) 등의 표현도 당대 중국 문헌에서는 쓰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김대문이 활약한 시기인 7세기 말과 8세기 초 중국 문헌을 보면 정통이란 왕조의 합법성이나 계승의 특권을 보강하기 위해서만 언급하는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또 9세기 초반 중국의 문인 한유가 유교의 정도(도리)를 상상하며 묘사할 때까지 이런 개념이 중국의 다른 풍속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 적도 없다고 그는 고증했다. 도통이란 표현의 경우 주자학을 일으킨 주희(1130~1200)의 에서 처음 단 한 번만 나타날 뿐이라고 한다. 7, 8세기 다른 동양 문헌에 없는 용어가 필사본에 여러 차례 나타나므로 신빙성을 의심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8세기 한유가 중국 유교의 질서를 도(道)란 용어로 개념짓기 100년 전에 김대문이 에 이 말을 썼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맥브라이드는 특강 글에는 싣지 않았으나 불교사 측면에서도 필사본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병자나 망자를 보살피는 지장보살이나 메시아적인 미륵신앙의 경우 동시대 불교문화를 앞서 주도한 중국에서도 훨씬 후대에 나타났던 양상이 서술되어 있다고 밝혔다. 필사본에서 화랑도의 대부 격인 원광법사가 약사여래의 화신으로 신라에 태어났다고 하고, 자장율사의 아버지 김무림을 지장보살이라고 한 구절은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성립할 수 없다는 견해다. 신라 불교의 신앙과 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 불교에서 의 시기인 6세기 지장, 약사보살의 환생 신앙은 나타나지 않으며, 8세기 말에야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내용을 내년 초 하와이대학의 논문집에 실을 영어 논문 ‘신라불교와 필사본 화랑세기’에 상세히 소개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맥브라이드의 주장은 국내 학계의 논쟁 구도와 거리를 둔 서구 학자가 자기 견해를 밝히며 필사본 논쟁에 참여한 첫 사례다.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 “박창화의 다른 저서와 고려, 조선시대 관련 저술들, 중국의 관련 저술들을 객관적으로 비교분석해가면서 필사본의 문구나 용어들을 비판하고 있다. 식민사관의 혐의에서 벗어난 미국의 신라사 연구자가 한국 고대사 논쟁에 신선한 시사점을 던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진위론을 주장한 학자들이 필사본의 작성, 발견 경위나 박창화의 다른 저술 등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에 소홀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선교사로 왔다가 신라에 빠져들어

자신을 ‘한문자료광’이라고 소개한 맥브라이드는 미국 브리검영대학에서 학부 때 아시아학을 전공하면서 한자를 배웠다. 1989~90년 경상도 지역에 개신교 선교사로 왔다가 통도사, 불국사 등에서 승려들과 만나면서 신라 불교사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학부를 마친 뒤인 1994년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외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신라 불교사 저변을 뒤지는 고행을 시작했다. 2000년 이후 UCLA대학에서 ‘불교신앙과 화엄사상’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신라 전제왕조사 쪽으로도 관심을 넓혔다. 논쟁을 주목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2002년에는 미국 아시아학회에 이 논쟁을 처음 글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필사본 내용의 영어 번역본과 진위 논쟁 분석서 발간이 당장의 목표”라며 “80권이 넘는 박창화의 다른 역사, 문학류 저술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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