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나라국립박물관의 제59회 쇼소인 특별전에서 만난 신라인의 자취</font>
▣ 나라(일본)=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투명한 진열창 속에 1200여 년 된 신라의 가얏고(가야금)가 미라처럼 누워 있었다. ‘신라금’으로 불렸던 가얏고 현은 울리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그 자태는 조금 전 연주를 마친 양 생생하다. 팽팽하게 조인 12줄 현의 명주실들 사이로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는 까닭이다. 현의 12줄을 잡아당겨 가얏고 끝쪽의 양이두판(양귀 모양을 한 끝판)에 달아맨 뒤 굵은 매듭을 지었다. 그 매듭 뭉치를 산발한 여인의 머리칼처럼 몸체 아래로 풀면서 드리웠다. 이국 땅 일본의 왕실, 귀족집에서 둥당둥당 가얏고 현을 퉁기며 미성을 울렸을 악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시라기, 시라기? 스고이, 스고이!”
가얏고는 오늘날 가야금과 모양상 큰 차이가 없다. 양머리판(양이두)에서 현줄의 매듭을 이어 잘록하게 뻗어나간 의연한 몸체, 그 곱고 우아한 자태가 지난날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금물로 장식했으나, 이제는 희미해진 새와 꽃, 풀의 화려한 무늬들이 양머리판 앞뒷면에 보인다. 진열창 아래가 거울 바닥이라, 몸체 아랫면에 소리를 잘 내기 위해 판 공명통의 흔적도 보인다. 몸체에 밴 허옇게 바랜 얼룩과 결은 마치 흰 연꽃처럼 피어난 세월의 무늬다. 몸체 일부를 벌레가 파먹긴 했지만, 가얏고의 몸은 의연하고, 실 매듭은 1300년 세월에도 아랑곳 없이 단단하고 야무진 짜임새를 잃지 않았다. 옆에는 현줄을 받쳤던 기러기발(안족) 4개가 같이 놓였다.
진열창을 뒤덮은 일본 관객들이 신라금을 보면서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한다 “시라기, 시라기? 스고이, 스고이! 조센한토(조선반도)?”
‘시라기’는 신라의 일본 발음이다. ‘스고이’는 대단하다는 뜻이다. ‘조센한토’는 조선반도, 곧 한반도다. 그들은 가야금이 한반도 신라 땅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낯선 모양새를 확대경으로 보거나 줄을 퉁기는 방법도 물어본다. 신라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일본인들이 새삼 신라에서 건너온 유물이 있다는 사실, 그 유물이 고도의 음색과 세련된 디자인을 지닌 악기라는 사실에 그들은 계속 ‘시라기’만 연발했다. 나라켄 후쿠이에서 온 주부 이누이 미치키(55)는 “이렇게 꼼꼼한 얼개와 치밀한 디자인의 현악기가 신라악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백제가 고대 일본의 문화 원류인 줄 알았는데, 신라 문화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라금은 10월27일 고대 일본 도읍지인 간사이 지방 나라현의 나라국립박물관 신관에서 개막한 제59회 쇼소인 특별전(11월12일까지)에 전시 중이다. 쇼소인은 1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왕실의 희귀한 보물창고다. 16m를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상이 있는 나라의 거찰 도다이지(동대사) 대불전 뒤 북쪽에 있다.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고 자랑한다. 1300여 년 전 독실한 불자로, 왕위를 내놓고 출가한 뒤 세계 최대의 대형 불상을 도다이지에 건립한 쇼무왕(쇼무텐노)이 세상을 뜨자, 그가 수집했던 왕실 보물 컬렉션 600여 점을 그의 아내인 고코 왕후가 도다이지에 49재 때 봉납했다. 컬렉션 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귀족들의 봉납물, 절의 보물과 소장 문서 등이 추가되면서 1만 점 가까운 컬렉션으로 성장했다. ‘쇼소인전’이란 이 보물창고의 관리를 맡고 있는 궁내청(일본 왕가의 사무를 맡아보는 관청)에서 1년에 한 번씩 유물 점검을 하는 가을 기간에 그 일부를 꺼내어 보여주는 특별전시다. 1946년 이래 매년 가을에 한 번씩 연다. 출품 유물들 가운데 8~9세기 중앙아시아, 로마, 중국, 신라 등 당대 실크로드 교류사의 희귀 유물들이 많다. 발굴이 아닌, 수장고 소장 유물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륜을 지녔다.
신라금은 쇼무왕의 애호품을 소개하는 첫 번째 전시실에 있다. 불교 법요 의식에 쓰이는 최고급 자단목 금세공 향로, 중앙아시아풍의 산양·나무 병풍 그림, 신성한 새인 가릉빈가 무늬가 새겨진 당대의 관악기 생황과 더불어 전시의 주요 명품으로 꼽힌다. 신라금이 출품된 것은 1998년 이래 9년 만이다. 쇼소인의 보물 납입 기록인 을 보면 애초 금을 입힌 호화로운 가얏고 2개가 들어왔다고 한다. 823년 2월 우대신 후지와라노 후유쓰쿠라는 이가 연회에 쓰려고 가져갔다가 두 달 뒤 다른 모양의 신라금 두 개를 대신 돌려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전시된 신라금이 바로 이 대납된 가야금인데, 더욱 호화로웠다는 원래 신라금의 운명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문화 전파 보여주는 유물에 초점
전시는 일본적인 색채보다 중앙아시아 서역, 중국, 한반도와의 교류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교류사 유물들, 그 가운데서도 화려한 그림이나 문양 디자인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영향을 드러내는 유물들이 쇼무왕의 애장품으로 다수 소개되고 있다. 환상적인 원형의 녹·적·청색 꽃 문양이 중첩되는 서역풍 카펫, 둥그렇게 말린 뿔을 지닌 산양과 원숭이가 노니는 나무의 풍경이 어우러진 페르시아풍 병풍, 서역에서 온 호인들의 서커스풍 재주놀음을 먹으로 세밀하게 그린 활 모양의 놀이기구 등이 왕의 애호품으로 선보였다. 중앙아시아 키르키스스탄 등의 산록 암각화에 새겨진 뿔 달린 산양의 모습을 일본 쇼무왕이 내실에 쳐놓았다는 병풍 유물을 통해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가지타니 박물관 학예과장은 “이란 사산조에서 비롯돼 중앙아시아를 거쳐온 실크로드의 문양과 각종 기물의 디자인, 가까운 중국과 신라의 문화 전파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 중요한 감상 초점”이라고 했다.
신라 유물로는 신라금 외에도 길이 26cm짜리 배 모양의 신라먹이 나왔다. 일본 왕실이 수입한 고급품으로 표면에 ‘신라무가상묵’(新羅武家上墨)이라고 돋을새김으로 새겼다. 무가 가문 출신의 신라 장인이 만든 최상급의 먹이란 뜻이다. 신라 장인의 자부심, 신라먹의 국제적 성가를 짐작하게 한다. 바로 옆에 크기가 10cm도 안 되고 모양도 볼품없는 일본제 먹도 같이 놓여 있는데, 제작 기술과 크기 등에서 한참 뒤처진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어로 ‘사와리’라고 부르는 움푹한 일본제 놋쇠 그릇은 처음 나온 유물인데, 쇼소인에 소장된 통일신라의 놋그릇을 거의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다. ‘사와리’란 말 자체가 우리말 사발이 말뿌리다. 또 전시의 고갱이 유물 가운데 하나라는 자단목 향로는 금판과 선으로 향로 본체 바깥 외피 부분에 화초와 벌레를 묘사하고 수정알을 박아넣은 초호화품인데,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초두 유물과 판박이일 정도로 비슷하다. 사실 쇼소인에 소장된 8~9세기 중국, 서역 귀중품들도 상당수는 왕래가 잦았던 신라 사절과 무역상들이 가져온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진열창마다 4중·5중의 줄 늘어서
지난 10월28일, 아침 9시께부터 박물관 후원까지 길게 줄을 선 관객은 정오를 넘기면서 더욱 폭증해 발디딜 틈도 없었다. 진열창마다 4중, 5중의 줄이 늘어섰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몰려든 관객은 중요 유물의 경우 5분 이상 찬찬히 보고서야 물러났다. 중근세기 숱한 무사들의 전투와 태평양전쟁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쇼소인 보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은 신앙에 가깝다. 1천 년도 더 된 나라, 헤이안시대 유물 9천여 점을 거의 원형대로 쇼소인에 보존해온 ‘처절한’ 의지는 말미의 5전시장에서 확인된다. 8세기 중엽의 나라시대 일본 중·북부 지역 수장들이 조정에 보내온 공문서, 식량·소금 조달 기록 보고서 등의 생생한 필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금으로 바친 면직물과 의류를 비롯해, 심지어 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 곡미를 지급했다는 보고서까지 전시돼 있다.
1946년에 시작해 내년에 환갑을 맞는 쇼소인전은 매년 2주간의 전시 기간에 15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몰린다. 나라를 거쳐가는 JR 서일본 철도는 열차 맨앞에 전시기념 표찰을 붙인다. 사설 철도회사 긴테츠도 안내 팸플릿을 배포하고 예매권을 판다. 후원사 은 박물관 주변에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전시품을 설명한 특별 호외를 뿌리고 있다. 시내 상점가와 숙박업소는 대규모 기념 특전 이벤트를, 다른 절들도 연계 보물전을 잇따라 벌인다. 2010년 나라 도읍 정도 1300주년을 앞둔 요즘, 이런 경이적인 관심과 자부심이 세계문화유산 쇼소인을 더욱 세계적인 전시 브랜드로 밀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국립박물관 전시가 학계에도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네 현실에서 쇼소인전 특유의 문화재 민족주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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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표의 우리 선조들이 맞이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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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쇼소인전이 열리는 가을철 나라 여행을 ‘덴표의 로망 체험’이라고도 말한다. 덴표(天平)는 나라가 평성경(헤이조쿄)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도읍이었던 시대(710~784)를 이르는 말이다. 쇼소인 컬렉션의 장본인인 쇼무왕과 고코 왕후, 딸인 고켄 여왕, 794년 수도를 교토로 옮긴 간무왕이 다스렸던 덴표시대는 불교의 힘으로 국가적 난국을 이겨내고, 신라·당 문물을 받아들여 특유의 국가제도와 문화를 뿌리내렸다. 일본 국민들에게는 불사로 백성과 조정의 뜻을 모으고, 신앙의 열정이 온 나라에 넘쳐흘렀던 그리운 시절로 추앙받는다. 전시 때마다 각지의 일본인들이 나라 곳곳을 답사하지만, 한국인들 또한 답사 명분이 선다. 나라의 주요 유적들은 이땅에서 건너간 선조들과의 인연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나라국립박물관 북쪽의 도다이지는 반드시 순례해야 한다. 756년 이 절에서 쇼무왕의 발원으로 세계 최대 대불을 처음 만들었을 때 공사를 총지휘한 승려 교키는 백제계 이주민의 후손이다. 대불을 만든 조불사, 대불전 건축 책임자가 모두 백제, 신라, 고구려계 인사들이다. 대불 완공 때는 신라 왕자의 대규모 사절단이 찾아와 보물을 헌납했다. 긴테츠 전철 가시와라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서, 가시하라·아스카 지역의 선조들 흔적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백제, 고구려의 승들이 세운 일본 최초의 고찰 아스카데라, 고구려 고분벽화와 거의 똑같은 인물 도상을 그려넣은 다카마쓰 고분 등이 있다. 이카루가현 호류지(법륭사)는 한반도계 문화유산이 즐비한 보고다. 고구려승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불타서 재현)와 백제풍의 금당·오중탑, 백제 관음상 등이 유명하다. 한편 현립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 부속 박물관은 20여 년 전 삼국시대 금동 장식, 말안장 등과 거의 똑같은 한반도계 실력자의 부장품이 나온 후지노키 고분의 발굴품 전모를 보여주는 전시를 11월25일까지 열고 있다. 석관, 사람 뼈 등도 공개한다. 답사 정보는 나라국립박물관(www.narahaku.go.jp/), 나라현(http://www.pref.nara.jp/),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 부속 박물관(www.kashikoken.jp/museum/)에서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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