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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하 싫으면 안 보면 될 거 아냐?

등록 2007-10-0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접대부 고용 논란에도 끄떡없는 문화방송 , 방송사엔 시청률뿐인가</font>

▣ 강명석 기획위원

지난 9월22일 방영된 문화방송 은 여러 의미로 역사적인 순간들을 연출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트의 역사를 바꾼 김연아가 에 출연했으니 역사적이고, 그 김연아 옆에 접대부 고용 논란에 휩싸인 술집의 (지분 없는) 사장인 정준하가 버젓이 출연하고 있었으니 역사적이다. 그리고 정준하의 출연으로 연예인들은 법적으로 구속판결을 받지 않는 한 어떤 물의를 일으켜도 방송 출연에 지장이 없게 됐으니 진정 역사적이다. 문화방송은 “정준하를 믿는다”며 정준하의 출연을 강행했지만, 정준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분 없는 사장’인 자신이 술집에 손님을 몰아줄 때마다 받은 돈을 영수증 처리하지 않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여성 접대부가 고용된 사실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문화방송이 정준하를 믿는다는 건 ‘도덕’이 아닌 ‘법’의 차원이다.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도, 자신이 참여한 술집의 접대부 고용을 방관한 것도 안다. 하지만 구속되어 에 출연하지 못할 정도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은 믿는다. 그리고 이날 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추석 연휴 동안 가장 많이 방영된 프로그램 역시 이었다.

정준하 사건은 공중파 방송사의 커밍아웃이나 다름없다. 더 이상 방송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론의 압력’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의 연예인 출연 판단 여부는 눈에 보이는 시청률뿐이다. 정준하 사건 이후로 연예인의 도덕성 논란은 논란 자체가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이제 방송사에 여론이란 곧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높으면 그게 ‘국민의 뜻’이다. 이는 방송사를 움직이는 여론 형성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 몇 년간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히 TV 프로그램에 관한 여론을 좌우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네티즌들이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네티즌이 여론을 형성하면 그것이 네티즌의 동향을 주시하는 인터넷 매체들에 의해 기사화되고, 그것이 당사자에게 여론의 압박을 가하는 식이었다. 최근에도 몇몇 연예인들이 옷에 욱일승천기를 단 것을 네티즌들이 발견해, 이것이 인터넷 언론에 의해 이슈화되면서 해당 연예인들이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방송사엔 시청률=‘국민의 뜻’

정준하 사건도 처음에는 네티즌과 인터넷 매체가 주도권을 쥐었다. 정준하의 술집에 접대부가 고용된다는 의혹도 네티즌들이 제기했고, 인터넷 매체인 가 네티즌들의 각종 논란과 새로운 사실을 밝히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그러나 네티즌의 여론은 정준하가 에서 하차하는 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극단적인 경우 단 한 명의 네티즌이 연예인을 몰락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네티즌의 악성 댓글에 상처받는 여린 심성의 연예인이 아니라면, 네티즌의 여론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댓글은 안 보면 그만이고, 네티즌들이 어떤 비판을 하건 시청률은 오르며, 광고(CF)는 들어온다.

네티즌이 글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고 있다. 네티즌은 그들에게 클릭을 유도하는 인터넷 매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어도 의 시청률을 떨어뜨리지는 못했다. 사채 CF에 출연한 연예인이, 학력 위조에 관해 거짓말로 일관하던 연예인이 TV에 출연해도 시청률에 큰 변화가 없음이 확인되면서 방송사들은 시청률 외의 여론에 대해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래서 네티즌, 혹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려는 모든 대중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야 하는 때가 왔다. 영화 와 관련한 논란에서 의 팬이든 안티든 에 관한 논의에서 악성 댓글을 달고, 헛소문을 유포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익명의 네티즌들은 누구도 그 현상에 책임지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방송된 관련 토론에서도 모자이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사람은 칼럼니스트 진중권 같은 공인된 논객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진중권은 익명의 네티즌들과 달리 끊임없이 에 관련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할 수 있었다. 얼굴을 드러낸 주장은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만큼 주목도와 영향력도 함께 갖지만, 익명의 여론은 책임지지 않는 대신 언론이 주목하기 전에는 여론으로서의 힘을 얻지 못한다.

‘몰염치’ 시대니 귀찮아도 ‘행동’해야

인터넷 실명제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제 네티즌은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의 TV 출연에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 종종 반박 의견으로 제기되는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될 거 아니냐”는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연예인이 TV에 나온다면, 정말로 그 프로그램을 보지 말아야 한다. 또 실명으로 출연 반대 서명운동을 하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연을 반대하는 글을 써서 대중을 설득하건, 책임을 지는 대신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들을 해서 시청률을 떨어뜨려야 한다. 바꾸고 싶다면 한 줄 댓글 대신 이름을 건 ‘행동’을 하라. 귀찮고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몰염치’의 시대에 접어든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도 하는 일이 일이니 을 녹화하긴 하겠지만, 지난 2년여간 계속된 의 ‘본방 시청’이나 (문화방송에 돈을 주는) ‘다시보기’는 안 할 생각이다. 다른 걸 다 떠나 정준하가 그 귀여운 김연아 옆에 있는 걸 보는 일은 정말 힘들다. 유재석에게는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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