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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7-08-10 00:00 수정 2020-05-03 04:25

두 부부의 냉탕과 열탕이 섞이는 로맨스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당신의 부인과 애인이 동시에 물에 빠졌다. 누굴 먼저 구할까? (이하 지금 사랑)는 그 진심의 커밍아웃을 향해서 나가는 영화다. 결혼식날 결혼반지를 강물에 버리려는 신부를 말리려다 두 명의 여성이 물에 빠진다. 익사 위기에 처한 그들을 구하러 두 명의 남성이 뛰어든다. 잠깐, 그러니까 그들은 각각의 부부다. 보통의 경우라면, 각자의 남편이 각각의 부인을 구하면 끝이다. 하지만 나의 부인이 너의 애인이고 너의 부인이 나의 애인이라면, 누가 누구를 구했을까 궁금하다. 은 이렇게 결혼의 의무가 센지, 연애의 욕망이 강한지, 시험에 들게 만드는 영화다.

에로영화 찍는 멜로영화 주인공들

먼저 은 즐기기 적당한 속도로 캐릭터를 소개한다. 두 쌍의 부부는 이렇다. 먼저 서유나(엄정화), 정민재(박용우) 부부. 연애 4년에 결혼 3년, 유나가 “아직도 나를 보면 가슴이 뛰어?”라고 묻자 민재는 “아직도 그러면 심장병이지”라고 대답하는 ‘평범한’ 부부다. 서로를 미칠 만큼 가지고 싶어서 결혼했지만 지금도 미쳐 있을 정도는 아니다. 열정적인 유나는 명품 매장의 패션 컨설턴트로, 다정다감한 민재는 고급 호텔의 호텔리어로 일하지만 양쪽 집안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겉만 백조인 부부다. 관계를 규정하는 의 기본 공식은 대조다. 쾌활한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비슷한 부부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부부를 만나서 서로 엇갈리며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그래서 또 다른 커플인 박영준(이동건), 한소여(한채영) 부부는 유나 부부처럼 겉만 백조가 아니라 진짜 백조다. 영준은 굴지의 건설회사 부사장이고, 소여는 국내 최대의 조명회사 집안의 딸이다. 영준은 차갑다 못해 재수 없다는 소리까지 듣는 일중독자고, 소여는 새장 속의 새처럼 주어진 인생을 묵묵히 수긍하며 살아온 조명 디자이너다. 그러니까 저들이 뜨겁다면, 이들은 차갑다. 이렇게 다른 두 쌍의 부부가 친구의 바에서 만나면서 온탕과 냉탕이 뒤섞인다.

말하자면 크로스 로맨스, 서로 엇갈리는 연애가 시작된다. 은 새롭지 않은 주제에 새로운 색깔을 넣는다. 거칠게 말해서, 에로영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들은 멜로영화를 찍고, 멜로영화의 주인공들은 에로영화를 찍는 방식이다. 민재와 소여의 사랑은 ‘원 나이트 인 홍콩’에서 시작한다. 서울에서 안면을 익힌 그들은 홍콩 출장에서 만난다. 밥을 같이 먹고, 뒷골목을 헤매면서 남녀상열지사가 시작된다. 이들의 관계 방식은 이들의 캐릭터를 뒤집는다. 식물 같이 살아온 소여가 오히려 뜨겁게 욕망하고 먼저 행동한다. 민재는 망설이지만 소여는 다가간다. 유나와 영준에 견줘 조심스러워 보이는 민재와 소여의 관계가 오히려 뜨겁다. 이들의 섹스는 홍콩에서 서울까지 계속된다. 소여는 시댁 모임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민재를 만나는 밀애를 즐긴다. 영화 같은 밀애다. 한편으로 무엇이든 열정적인 유나와 세상에 거침없는 영준의 연애에는 섹스가 빠진다. 무언가 화끈한 연애가 시작될 듯하지만, 영준의 말실수로 이들의 섹스는 중단된다. 오히려 영준은 유나의 자존심에 끌리지만, 이들의 베드신은 끝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여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연애를 정리하면 이렇다. 무엇이든 아등바등하면서 얻어온 유나는 무엇이든 가지고 태어나서 배려라곤 전혀 모르는 영준에게 끌린다. 역시 예쁜 새장 속의 새처럼 태어난 운명을 수긍하면서 세상의 무언가를 욕심내본 적이 없는 소여는 처음으로 민재가 갖고 싶어진다. 역시나 뒤집기 공식이다.

에는 반복과 호응의 대사가 빛난다. 어느 날 소여는 남편에게 묻는다. “머리 푼 게 나아요, 묶은 게 나아요?” 무심한 남편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무심한 대답의 이면에 또 다른 대비가 숨어 있다. 소여가 그렇게 물었던 이유는, 민재가 소여에게 “머리를 푸니까 예쁘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영준도 묻는다. “내가 그렇게 재수 없나요?” 영준은 유나에게 들었던 말을 타인에게 되묻는다. 이렇게 은 내 안의 새로운 기척에 내 안의 오래된 것들을 돌아보는 사람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랑이 오면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은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인지상정을 적절한 선에서 표현한다. 그것도 유쾌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정색하지 않고 무심하게 보여준다. 뜻밖의 대사로 인물의 핵심을 찌른다. 유나가 비참해서 우는데도 “감동 받아서 우는 거 알아”라고 말하는, 생활의 백치인 영준의 물정 모르는 대사가 웃긴다. 영준과 유나가 불발로 끝난 섹스에서 스포츠에 견줘 주고받는 말처럼 탄력 넘치는 대사가 오고간다. 영화가 자칫 무거워진다 싶으면, 민재의 친구이자 영준의 선배로 나오는 최재원이 등장해 슬며시 웃음폭탄을 터뜨리고 사라진다. 이렇게 단순한 웃음을 주는 수준을 넘어서 극의 흐름까지 밀어가는 촌철살인의 대사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빛나는 반복과 호응의 대사

이 그들의 ‘지금’ 사랑을 알리는 방식도 안이하지 않다. 그들의 연애를 눈치챈 타인이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사랑을 쉽사리 폭로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들이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그들의 사랑을 알린다. 배우들의 연기는 각별히 빛나진 않지만 적절한 캐스팅임에는 틀림없다. 엄정화는 예의 그 발랄한 표정으로 “조사만 빼고는 다 영어를 쓰는” 속물이지만, 숨겨진 속내는 사랑스러운 유나를 무난하게 연기한다. 이동건은 과장되지 않은 색깔로 캐릭터에 녹아드는 재주가 조금씩 무르익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박용우의 귀여운 표정은 민재의 다정다감한 성격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한채영의 연기는 깊이를 더하진 못해도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네 명의 배우를 담는 화면은 아름다울뿐더러 속도감이 넘친다.

겉만 백조에게서도 명품의 향기가

다만 이야기의 흐름이 마디처럼 끊어져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은 한발 물러나 보면, 정말로 판타지 같은 이야기다. 태생이 ‘럭셔리’한 영준과 소여는 물론, 생활의 냄새를 풍겨야 마땅한 유나와 민재에게서도 명품의 향기만 풍긴다. 더구나 그들의 연애는 결국엔 누구도 다치지 않는 로맨스 아닌가. 2002년 를 만들었던 정윤수 감독의 는 8월1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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