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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전설, 흙과 녹을 뚫고 비상하다

등록 2007-08-10 00:00 수정 2020-05-03 04:25

‘그리운 것들은 땅 속에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신발굴 백제문화재 특별전

▣ 부여=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백제는 한국 디자인의 원초적 힘이다. 1400여 년 전 백제 장인이 새기고 쫀 금동관모 표면의 용무늬는 말없이 웅변한다. 입에서 한껏 혀를 날름거리며 화염을 쏟아내는 용. 자기 몸 새겨진 금동판 위에서 온몸을 꿈틀거리며 뛰쳐나오려 한다. 겨울잠 자며 똬리를 튼 뱀처럼 1400여 년 전 용무늬들이 뒤엉킨 채 포효한다. 미끈미끈 빛나는 비늘과 날씬한 몸매. 황톳빛 흙덩어리와 세월의 흔적인 푸른 녹과 뒤섞인 자태다.

충남 공주와 서산의 백제인 무덤에서 나온 금동관 모자 무늬의 용 디자인은 비수처럼 강렬하다. 우주와 자연에서 영감이 용의 서슬이 되고, 웅크렸다가 포효하는 형상이 되고, 자글자글한 비늘의 선이 된다. 관객은 그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들어야 한다. 이 전시마당은 ‘그리운 것들은 땅속에 있다’라는 시구 같은 제목으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열린 신발굴 백제문화재 특별전(8월26일까지). 백제인이 남겨준 디자인 예술의 낯선 유산들을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충남역사문화원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발굴한 새 출토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발굴 속보전이다.

백제 디자인 미학의 결정체

용무늬 새겨진 금동관모는 2003년 공주 수촌리 1호, 4호 무덤에서 1개씩 나와 화제를 모았다. 일찌감치 복원되어 공개된 4호분 금동관모와 달리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좀더 오랫동안 처리 과정을 거친 1호분의 금동관모는 이번에 처음 관객과 만난다. 백제의 용 디자인은 무령왕릉 출토 둥근고리 큰칼, 팔찌, 은잔, 전돌 등에 숱하게 나온다. 수촌리 금동관모의 용은 중국 남조 영향을 받은 무령왕릉 유물의 용무늬보다 100여 년 빠른 시기의 토착 무늬다. 아랫부분의 부식이 심해 흙덩어리를 머금은 채로 거즈에 싸여 전시되고 있지만, 용의 기세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푸른 녹 사이로 번뜩거리는 금빛이 드문드문 비치는 관모는 높이가 18cm에 불과함에도 새겨진 용의 형상과 비늘의 생생한 이미지가 섬광 같은 생명력을 전한다. 타출기법(금판 표면을 두들겨 무늬를 얻어내는 기법)을 써서 돋우어낸 용의 모습은 허리를 잔뜩 구부렸다가 펴면서 위압적으로 화염을 뱉어내는 기세를 표현하고 있다. 이 용무늬는 중국, 일본 유물에 나타나지 않으며, 고구려나 신라에도 닮은 전례가 없다.

학계는 백제 디자인 미학의 결정체인 무령왕릉 발굴 금속 유물들의 전 단계가 이 공주 수촌리와 서산 부장리의 금속 장식품들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하고 있다. 금관 문양의 독창성과 고급 장식이야말로 이 금동관모의 주인공이 왕권에 버금갈 정도의 실력자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병호 학예사는 “일본 에다후나야마 고분의 관모와 형태상 유사하지만 디테일한 무늬가 생생하고 정밀하게 용무늬를 나타낸 유물은 일본 어디에도 없다”며 “백제에 이미 5세기께부터 중국과 다른 독창적인 디자인 미학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동관 못지않게 눈을 끄는 것은 금산 수당리 백제 무덤에서 나온 농기구 ‘살포’다. 물꼬를 트는 데 썼다는 이 농기구는 후대에 신과의 합일을 기원하는 제례용 용구로 승격됐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나라를 위해 봉직한 원로 중신들의 원로원 격인 기로소에 들어갈 때 임금이 의자와 함께 하사하던 지팡이의 원형이 됐다. 신의 제기이자 경로 우대의 상징물로 일개 농기구가 격상된 셈이다. 출토된 살포 끝에 달린 고사리 문양 장식이 살포의 상징적 기능을 암시한다. 백령산성터에서 나온 백제 기와에서는 기와의 종류, 지방 행정구역 등을 적은 당시 장인의 생생한 육필 흔적도 볼 수 있다. 시인 김용택씨의 시 제목을 딴 전시 제목처럼 정말 우리에게 ‘그리운 것들은 땅속에 있’지 않은가. 041-833-8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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