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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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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주세요, 화려한 휴가를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1980년 광주를 정면으로 응시해 ‘오늘의 호소’로 되살린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의 막바지, 박신애(이요원)가 간절히 외친다. 이것은 그날의 외침이자 오늘의 호소다. 1980년 광주에서 거리방송으로 울려퍼졌던 외침을 는 오늘의 호소로 되살린다. 2007년 7월, 적들과의 투쟁만큼 기억과의 싸움이 중요해진 ‘5월 광주’를 영화는 그렇게 정공법으로 되살린다. 김지훈 감독의 는 27년 전 그날 그 자리로 관객을 데려간다. 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루는 첫 번째 영화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우리는 강산이 두 번이 넘게 바뀌고 나서야 광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를 보게 됐다. 모종의 ‘후유증’()이나 일종의 ‘후일담’()이 아니라.

가족의 일상에 침입한 군인들

가족에서 시작한다. 80년 광주, 부모가 없거나 가난하거나 그들의 가족은 무언가 결핍돼 있지만, 결핍을 정으로 메우며 사는 그들의 일상은 더없이 풍요롭다. 부모를 잃은 택시운전사 강민우(김상경)에게는 “서울대 법대”라 부르는 공부 잘하는 동생 강진우(이준기)가 희망이다. 아내와 사별한 택시회사 박흥수(안성기) 사장에게는 ‘참한’ 간호사인 딸 박신애가 있다. 민우는 진우의 성당 교사인 신애를 좋아한다. 그렇게 두 가족은 이어져 있다. 여기에 민우의 직장 선배이자 연애 코치인 인봉(박철민), 척 보아도 동네 양아치 차림인 용대(박원상)가 주연만큼 인상적인 조연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한적한 시골길을 택시로 달리는 민우의 평화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녹색의 기운이 감도는 그들의 일상에 검은색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 침입한다. 이렇게 평화로운 녹색과 공포스러운 검정의 대립은 의 도입부 이미지다.

5월 광주를 다룬 책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평범한 시민인 그들은 시위대에 가담하지 않아도 거리에서 계엄군을 피하지 못한다. 민우, 진우, 신애는 영화를 보러 시내에 갔다가 곤봉을 휘두르는 계엄군과 마주친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은 고등학생인 진우를 거리로 이끈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진우의 최후는 형인 민우를 시민군 최후의 저항지 도청으로 데려간다. 누군가는 여기서 의 그림자를 볼지도 모르겠다. 사지로 뛰어드는 형제애와 그들을 구속하는 역사라면, 의 그림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광주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태극기와 애국가는 이러한 후광을 더욱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한편 신애는 병원에서 피 흘리는 시민들을 치료한다. 예비역 대령으로 강직한 군인이었던 신애의 아버지 박흥수는 쓰러지는 시민들을 보다 못해 시민군의 지휘자로 나선다. 어떤 이들에게는 익숙할, 그러나 ‘광주 드라마’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룸펜’ 계급도 빠지지 않는다. 양아치로 살아온 용대는 시민군이 되면서 평생 처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성당의 신부가 정의의 편에 서고, 학교의 교사도 제자들의 울분에 찬 행동을 끝내는 말리지 못한다. 100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중영화 에서 어쩌면 전형성은 약점이기보다는 강점이다. 그날의 광주에 다가가는 정공법인 것이다.

탱크,총질,죽음… ‘영화적’인 ‘사실’들

이야기의 흐름은 때때로 너무나 ‘영화적’이다. 대규모 군중신인 첫 번째 집단발포 장면이 그렇다.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이 맞서는 가운데 애국가가 울려퍼진다.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에 손을 얹는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이 총격을 시작한다. 동생이 죽고 나자 민우는 국기 게양대에 조기를 올리고,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에 탱크를 몰고 온 계엄군은 총질을 해댄다. 이렇게 영화보다 영화 같아서 때로는 전형적 이야기로 보이는 장면들은 하지만 사실에 기반했다. 는 팩트(fact)에 기반해 상상을 가미한 팩션(faction) 영화다. 인물도, 이야기도,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이렇게 익숙한 것들이 때때로 극의 긴장감을 낮추지만, 어쩌랴 그것이 사실에 기반한 것을. 그래도 영화의 흐름이 가끔 끊어진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약간은 ‘다짜고짜’ 시민들은 계엄군의 매질을 당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병원에 환자들이 몰려들고, ‘갑자기’ 민우는 트럭을 몰고서 무기고로 돌진한다. 물론 감독의 말대로 “사건보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영화”여서 생기는 불가피한 공백일지 모른다.

정공법으로 광주 ‘사람들’에 초점

코미디는 의 강점이다. 울리고 웃기는 영화인 것이다. 인물을 소개하는 초반의 에피소드에는 유쾌한 웃음이 넘쳐난다. 대사의 말맛도 뛰어나고, 배우의 연기는 더욱 훌륭하다. 특히 인봉을 연기하는 “수석 조연배우” 박철민은 단순한 감초 연기를 넘어서 때때로 영화를 이끌고,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후반의 코미디는 과잉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지만, 감동과 웃음의 황금률을 맞추려는 감독의 의도는 전체적으로 성공에 가깝다. 주연배우 김상경과 이요원의 연기는 에서 화려하게 도약한다. 김상경은 사랑에 빠진 순정한 청년으로 짝사랑의 여인 앞에서 쑥스러운 웃음을 지을 때도, 쓰러진 동생을 부둥켜안고 “집으로 가자”고 울먹일 때도 한결같은 진정성의 연기를 선보인다. 동생을 잃고 정신을 잃은 그의 표정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송강호 못지않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매력을 선보인다. 이요원은 더 이상의 캐스팅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적역으로 보인다. 이요원의 얼굴에 실린 신애의 공포는 광주의 아픔을 ‘느껴지게’ 만든다. 가녀리게 보이지만,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신애를 이요원은 꿋꿋하게 연기한다. 안성기는 공기처럼 영화에 스며들고, 나문희는 짧은 출연 분량이지만 허망하게 아들을 잃은 광주의 어머니를 간결하고 처연하게 보여준다.

는 광주를 해석하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다. 살인 명령을 받은 피해자로서 계엄군의 갈등을 중요한 축으로 다루지 않고, 시민군 내부의 혼란이나 시민군 개인의 갈등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정공법으로 끝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광주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80년 광주를 기억해달라고 정중하게 호소한다. 의 진심은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라고 울부짖는 민우의 한마디에 압축돼 있다. 광주를 아는 세대는 그날의 아픔이 새삼 살아나 눈물짓고, 광주를 모르는 세대는 정말로 저렇게 처참한 일들이 있었나 놀라며 눈시울을 붉힐 만한 는 7월26일 개봉한다. 당시의 광주를 재현하는 세트장 건설에만 30억원을 들일 만큼 ‘비주얼’에도 신경을 썼다. 알다시피, 는 광주를 진압한 계엄군의 작전명이었다.


“광주에 용서를 구할 때가 됐다”

‘내 영화의 꿈이자 출발’이었다는 광주 영화를 완성한 김지훈 감독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경상도 사나이가 만든 광주 영화다. 의 김지훈 감독은 1971년 대구 출생으로 90년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는 “언젠가 영화 내공이 쌓이면 광주를 다루고 싶었다”며 “(광주는) 내 영화의 꿈이자 출발”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의 데뷔작은 . 어쩌다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연거푸 만들었다. 그는 를 말하면서 무엇보다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용서와 화합의 영화이고 나아가 참회의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는데, 어떤 자료를 참고했나.

=영화의 출발은 광주 시민, 5·18 유가족에게 누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가족과의 인터뷰에서 시작했고, 증언록을 참조했다. 처음에는 윤상원 열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가족을 만나면서 한 개인이나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항쟁에 참여한 민초들을 중심에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18이 다양한 인물들의 드라마로 승화되기를 바랐다. 유가족들도 5·18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영화에 코미디적 요소가 많다. 영화의 후반부에도 계속되는 코미디가 과잉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계엄군이 물러간 시기의 해방 광주가 있었다. 그 속에 해학과 장단이 있었다. 사람이 극한의 슬픔에 가면 오히려 웃음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나. 그래서 모여서 사진을 찍고, 사과를 쪼개서 나눠먹는 모습이 서로를 배려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내 슬픔이 크지만, 슬픔을 서로에게 전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말이다. 5·18 정신도 배려가 아닌가. 유머가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슬픔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물을 평면적으로 그리거나 시민군을 이상화했다는 비판도 있겠다.

=물론 시민군 내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갈등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이라고 생각했다. 시민군 내부의 갈등을 다루기에는 러닝타임도 부족하다. 인물에 대해서라면 민우, 신애, 인봉이 모두 입체적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역사에 휘말린 사람들이니까. 그것이 대중영화의 정확한 코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또 한 번 인물을 비트는 것은 사족인 듯했다.

그렇다면 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관객에게 현미경보다는 망원경을 주고 싶었다. 영화는 길을 안내하는 나침판 같은 거지 거기에 데려다주지는 못한다. 그렇게 는 답을 내리지 않는 영화다. 다만 27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다.

여전히 광주를 다룬 영화에 대한 정치적 논란도 있겠다.

=이미 광주는 정치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정립이 됐잖나. 이제는 화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용서할 사람들은 준비가 됐고, (용서받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시기가 됐다. 인간적으로 화해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울림이 떨림으로 오는, 사람의 향기가 숨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광주를 잘 모르는, 말하자면 ‘이준기 세대’가 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도 5·18을 모르는 세대가 어떻게 를 볼지 궁금하고 두려웠다. 막상 모니터를 해보면 5·18을 잘 모를 것 같은 세대의 호응이 오히려 좋다. 아는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보지만, 모르는 세대가 오히려 몰입해서 보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실제로 있었던 얘기냐고 묻는다.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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