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물결 속에 고립된 중국의 인민들 그린 자장커 감독의
▣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오늘날 중국의 얼굴은 참으로 다양하다. 한국의 상류층 뺨치는 상하이의 신흥계급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최저생계 이하의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의 인민도 있다.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본주의 물결은 한 줌의 인민에게 저 멀리 계급의 꼭대기로 올라갈 기회를 주었지만, 한 줌을 제외한 인민들은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생존을 위한 고투를 벌인다. 어쨌든 이렇게 거대한 장강의 물결 속에서 인민은 상하좌우를 막론하고 역사의 격랑에 빠져 있다.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응시하는 지하전영(地下電影)의 기수 자장커 감독의 는 그렇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담담히 고투하는 인생을 담았다.
무표정, 우울함 그리고 묵묵함
예로부터 양쯔강은 장강(長江)이라 불렸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가장 길다는 장강에는 삼협(三峽)이 유명했다. 세 개의 계곡이 절경을 이루는 장강삼협(長江三峽)은 중국의 자랑으로 인민폐 10위안의 도안으로 새겨졌다. 하지만 실제 삼협, 싼샤(三峽)는 중국의 역사인 싼샤댐 건설로 수몰의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싼샤는 현실에서 사라지고 인민폐에 남을 운명이다. 의 카메라는 한동안 10위안 안의 싼샤를 응시하는데, 이는 화폐에 갇힌 자연과 인간, 자본주의 틀에 속박당한 전통적 가치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Still Life)의 주인공은 영어 제목의 뜻처럼 ‘고요한 인생’ ‘정물’ 같은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싼샤의 펑제로 들어온다.
배 위의 인물들은 정물처럼 표정이 없다. 정물 같은 인물, 굳은 표정의 인민들이 배 위에 앉아 있고 카메라는 그들을 찬찬히 응시한다. 인물들 끝에는 ‘난닝구’ 바람의 사나이 한산밍(한산밍)이 앉아 있다. 실제로 극중의 인물처럼 직업도 광부고, 이름도 한산밍인 한산밍은 자연인 한산밍의 ‘쌩얼’만으로 극중 인물 한산밍의 핵심을 말한다. 어쩌면 는 한산밍의 무표정, 우울함 그리고 묵묵함을 풀어가는 기나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장강을 흘러온 배에서 내려 싼샤에 이른 산밍을 붙잡는 첫 번째 손길은 야바위꾼들의 억센 손길이다. 그들은 종이를 유로화, 인민폐, 달러로 바꾸는 마술 같지 않은 마술을 원치도 않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돈을 요구한다. 돈을 내라는 그들의 협박에 한산밍은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만지작거리다 불쑥 꺼낸다. 그것은 칼이다. 싼샤에 도착한 한산밍의 손에는 오래된 담뱃갑에 적힌 주소가 들려 있다. 산밍은 주소를 내밀고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오토바이 운전사는 한산밍을 물에 잠긴 마을 앞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또다시 돈을 요구한다. 그렇게 의 싼샤는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듯이 서로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처절한 곳이다.
도망간 아내, 연락 없는 남편과의 재회
한산밍은 16년 전 도망간 아내를 찾는다. 오래된 담뱃갑에 적힌 주소가 유일한 단서다. 한산밍의 수소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수장될 건물을 부수는 일을 하면서 산밍은 아내를 찾는다. 마침내 아내의 오빠를 찾아내고, 아내를 만난다. 그렇게 아꼈는데 왜 도망갔느냐고 묻는 한산밍에게 아내는 왜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원망한다. 산밍의 수소문도, 아내의 도망도 이렇게 두서가 없지만 저토록 애절하다. 왜 도망을 갔는지, 왜 오랫동안 찾지 않았는지 말해지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이 가고, 그래서 그들의 사연은 더욱 구슬퍼 보인다. 나아가 말 못할 사연을 가진 인생이라는 보편으로 확장된다.
영화의 중반을 지나서 션홍(자오타오)이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션홍과 한산밍은 같은 장소를 헤매지만 한 번도 직접 스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서로에게 원경(遠景)으로 존재한다. 션홍은 무심한 대낮의 하늘로 UFO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등장한다. 방금 전에 한산밍이 무심하게 강을 내려다보던 장면과 같은 배경, 유사한 프레임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쓰촨(四川)의 산시(山西)에서 왔다고 말한다. 같은 장소에서 와서 같은 곳을 헤매지만, 그들은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 션홍도 2년 동안 연락이 끊긴 남편을 찾는다. 연락이 두절된 남편은 싼샤에서 철거사업으로 성공을 향해 달리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에게 다른 여인이 생겼음을 션홍은 눈치챈다. 어렵게 재회한 남편에게 션홍은 뜻밖의 결별을 선언한다. 션홍과 한산밍은 같은 장소에서 왔지만 싼샤를 거쳐서 떠나는 장소가 다르다. 한산밍은 고향인 산시로 돌아가고, 션홍은 상하이로 떠난다고 말한다. 한산밍이 돈을 벌어서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뿌리로 향한다면, 션홍은 자본주의 중국의 최첨단 도시로 나아간다. 는 이렇게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벌어지는 인민들의 디아스포라를 담담하게 쓸쓸하게 바라본다.
한산밍, 션홍이 스치는 인물은 오늘날 중국의 풍경화다.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담배를 피우고, 소녀는 자신을 하인으로 써줄 곳을 묻는다. 스스로 어둠의 세계에 있다고 ‘우기는’ 청년은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저우룬파(주윤발) 흉내를 낸다. 이렇게 그들의 인생은 방향을 잃었고, 어디로 떠갈지 모른다. 2000년 된 그들의 생활 터전은 싼샤댐 건설로 2년 만에 무너진다. 한산밍이 아내를 찾으며 생계를 위해 하는 일도 철거고,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집들이 부서지고 건물이 무너진다. 그렇게 오늘날 중국의 무언가 무너지고 있다고, 는 말한다. 조직된 분노가 아니라 고립된 개인들을 통해서 말한다.
‘담배·술·차·사탕’만 함께 있다면
의 조용한 영상에는 노래가 녹아들고, 판타지가 끼어든다. 때때로 불쑥 끼어드는 듯이 보이는 노래는 듣다 보면 영화의 흐름을 압축하고 새로운 순환을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부서진 건물이 UFO처럼 날아오르고, 경극 배우들이 등장하는 환상신도 현실에 가려진 현실을 드러내는, 일종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보인다. 자장커 감독은 “이 마술적 상황의 사실주의란 초현실주의적인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주의만으로 중국의 복잡한 상황을 드러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렇게 쓸쓸한 현실을 다루지만 인간의 따뜻함에 대한 기대를 잃지는 않는다. 의 중국어 원제는 (三峽好人)이다. 영화는 삼협(싼샤)의 좋은 사람들, 세상의 호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는 담배(烟), 술(酒), 차(茶), 사탕(糖), 4개의 부제가 붙은 단락으로 나뉜다. 중국인들이 이것만 있으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는 4가지다. 영화의 인물들은 4가지 물건을 자주 손에 드는데, 는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인생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로 데뷔해서 등으로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은 자장커는 로 2006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아직도 그의 영화는 중국에서 개봉하기 힘들지만, 한국에선 6월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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