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터뷰]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등록 2007-06-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인디만화가 이경석의 성공시대! (다짜고짜) 당신의 성공 비결을 알려주마

▣ 구둘래 기자anyone@hani.co.kr

만화가 이경석(36)씨. 예전부터 그의 이름 앞에 붙던 명칭은 ‘인디만화계의 대부’. 인디만화계의 대부가 이제 ‘대부호’(?)를 향해 한 걸음 내딛고 있다는 수상한 소문이다. 연기 나는 굴뚝에 불 땐 흔적은 명확한데, 그가 현재 연재 중인 만화가 세 편에 이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만화 불황기에 단연 독보적인 수치다. 어린이 만화잡지 에 를, 만화잡지 에 을, 한겨레 매거진 <esc>에 을 연재하고 있다. ‘막’연재가 아니다. 연재만화마다 반응도 좋다(편집부 집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감’(感) 인기순위에 따르면 각 잡지 인기순위 수위권이라고 한다). 사업장(?)도 차렸다. 원래부터 알음알음으로 도와주던 최영, 이철웅씨를 앉히고 4월부터는 꼬박꼬박 월급을 주고 있다. 그의 성공 비결을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성공이라니…, 아니에요. 더 떠야 되는데… 시트콤이 탄생할 때까지. 이제 시작일 뿐이죠.”



식당에서 ‘리필’ 한번 해본 적이 없을 만큼 부끄럼을 타지만 ‘이발쑈포르노씨’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맡아 몸으로 ‘바나나’ 퍼포먼스를 보여줬을 만큼 뻔뻔하다. 표현도 겸손한 듯 거만하다. 종횡무진하는 성격대로 자신이 성공했다는 건지, 성공하지 않았다는 건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객관적으로 (대략) 분석하여, ‘쑥스러운’ 그에게 그만의 ‘거만한’ 성공 비결을 알려주려 한다.

1. 페이소스 개그
그의 개그에는 페이‘소스’로 우려낸 국물이 진하다. 의 배경은 농촌마을, 아들의 귀향을 목빠지게 기다리지만 막상 오면 아들한테 미안해지는 오지다. 고향에 온 아들은 낙하산으로 투척된다. 아들을 기다리는 부정(父情)의 ‘페이소스’는 “50시간의 사투와 13시간의 고립, 뿌라스 다리 붕괴로 자동차 추락 죽음과의 사투 24시간”을 겪고 헬리콥터로 도착하는 얼토당토 상황 개그로 엮어진다. 4화 ‘전원의 딸들’은 페이소스 개그의 정수.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가족과 동네 사람이 부끄러운 사춘기 소녀 문순, 그를 부끄러움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어머니의 발레복과 어머니가 포기한 꿈이다.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이란, 엉뚱한 전제에 (썩 아름답지는 않은) 발레복을 매개로 가슴 뜨끔하고 뜨끈한 결론이 끌려나온다. “웃기려고 그리는 건데도 언더의 삶이 워낙 처절하니까, 웃겨도 그게 배어 있더라구요.”( 3호, 인터뷰)

2. 대사
이경석의 손글씨는 예쁘다. 또박또박 박힌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연재분에서는 식자체로 바뀌어 좀 느낌이 덜하다. 8호부터는 손글씨를 살린다고 한다) 문득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맨 처음 그림을 감상하며 읽었다면, 두 번째 감상법은 문순이도 놀라게 처음부터 끝까지 큰 소리로 읽는 것이다.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고 맨 나중에 대사를 쓴다. 다 짜놓은 건데도 더 좋은 걸 찾느라 대사 쓰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읽는 맛이 나야 한다. 중간에 맥이 끊어지면 다시 1페이지부터 가서 읽고, 끊어지면 다시 1페이지로 다시 가서 읽으면서 대사를 쓴다.”



읽을 때는 또한 하이픈(옆줄)에 주의해야 한다. “하이픈이 많은 건 제가 디자인 전공이라선지 비워놓으면 허전하기 때문이다.” 하이픈을 길게 늘이는 말로, 글씨 포인트대로 강도를 조절하며 읽으면 제맛이 난다.

3. 따라하고 싶은 동작
세 번째 감상법이 있다. 등장인물의 행동을 몸으로 따라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 동작을 연습해보자. 첫 번째, ‘쇼트트랙’ 자세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는 사람처럼 한 손은 옆으로 곧게 뻗고 한 손은 접는데 접은 팔의 손바닥은 몸 바깥을 향하도록 한다. 두 번째 실습은 ‘혀 빼물기’다. 혀로 턱의 여드름을 핥듯이, 위로 치키면 코를 말아버릴 듯이 빼물어야 한다. 눈은 튀어나올 듯이 동그랗게 뜨는 것이 좋지만 상황에 따라 가늘게 뜰 수도 있다. 세 번째 자세는 두 번째 실습의 얼굴에 몸동작을 더하는 것이다. 몸 전체를 앞으로 45도로 내밀면서 두 손을 치켜드는 것이다. 이 고난도 자세의 비밀은 왼쪽 발을 뒤로 빼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4. 집중력
작업실 동료들 증언에 따르면 을 시작했을 때나 시작한 즈음(요즈음이다. 현재 3회까지 연재됐다) 옆에서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아,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아니, 그랬어요.”
지난해 1년은 쉬었다. 인터넷 음악사이트 ‘멜론’에 연재를 끝내고 나니 놀아도 될 만큼 돈이 남았다(‘을식이 시리즈’는 계속 연재를 했다). 이 느긋한 때에도 만화 생각만 했다. “ 같은 스케일이 큰 만화를 하고 싶었다. 특이한 캐릭터가 많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는데 도 끝나고 도 끝나고, 색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농촌을 생각해냈다. 혹시나 시트콤 틈새를 노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나온 작품이 . 그리고 좋아하는 공포영화의 좀비를 다루고 싶었다. “가족 간의 애환, 예를 들어 화목이나 행복은 없는 ‘비정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 지금은 몸에 혈액순환이 안 돼도 술을 마실 수 없는 작업 스케줄을 강행하고 있다.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라 꾀를 부리기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성공 비결? “운이 좋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운도 실력이더라고요. 사실 10년 그리고 나니까 계획성 있는 작업을 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새로운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래서 좌중이 웃어주었다.
</esc>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