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이복남매 사랑그린 ‘뛰어난’ 멜로영화
▣ 김봉석 영화평론가
은 신파영화다.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이복남매가 서로에게 연정을 품지만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가 요절한다. 이 정도면 거의 신파의 전형이자 너무나 고전적인 동화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뭔가 묘하긴 하다. 보통의 신파영화라면 좀더 애절하게 갔을 것이다. 서로 고백 정도는 하고, 키스나 포옹 비슷하게까지도 하고,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에 절규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애절하게 두 사람의 슬픔을 막판까지 끌어가는 게 신파의 정도다.
하지만 은 눈물이 나올 만한 순간에도 꾹 참아가면서, 담담하게 평행선을 유지한다. 요타로와 카오루는 이복남매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요타로의 어머니와 결혼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다. 얼마 뒤 병으로 죽어가던 어머니는 유언을 남긴다. 카오루는 이제 외톨이니까, 네가 지켜주어야 한다고. 요타로와 카오루는 이시가키섬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으로 간다. 세월이 흘러 요타로는 오키나와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청년이 되었고, 카오루는 고등학교에 합격해 요타로에게 오게 된다. 처음에는 정석대로 흘러간다. 요타로는 이미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카오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이 늘어나고, 사귀던 연인과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카오루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희생하는 오빠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뿐이다. 카오루는 단지 ‘너무 좋아한다’고 말할 뿐이다. 자신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뿐이다. 명백하게 사랑의 고백이지만, 오빠에게 던지는 말이라고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요타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너무 고지식했던 것일까? 오빠는 자신의 모든 것을, 카오루를 위해 희생한다. 아마도 그것만이, 그녀에게 바치는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르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누이가 살던 푸른 바다의 색깔처럼, 그들은 너무 맑고 순수했다.
단지 ‘너무 좋아한다’고 말할 뿐
최근 몇 년간 일본 영화의 부활을 이끈 것은 같은 ‘순애’영화였다. 2004년 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서 여성 관객 취향의 와 이 관객몰이를 했다. 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베스트셀러였고, 영화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는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와 도 똑같이 개봉 뒤 드라마로 방영됐다. 그리고 불치병에 걸린 소녀가 나오는 애절한 드라마 과 가 화제를 모았다. 중년층과 젊은 남성 일부만 좋아한다고 여기던 일본 영화에 10대와 20대 여성 관객이 몰리면서 일본 영화계는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마침내 점유율 60%에 달하며 21년 만에 일본 영화가 외화를 뛰어넘는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지난해 흥행 순위 20위권 내에 오른 멜로영화는 약 30억엔의 수입을 올린 하나뿐이다.
불과 2년 사이에 순애영화 붐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일단 일본 영화를 찾는 관객이 다변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80년대 이후 사라져버린 ‘순애’를 되살린 한류 붐과 함께 찾아온 는 여성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일본 영화도 볼 만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여성 관객이 등에 끌리는 동안, 일본 영화계는 다른 카드도 준비했다. 등 스펙터클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와 중장년 관객을 노린 등이 그것이다. 액션영화와 정통 드라마가 일본인에게 어필하는 도중에 약간 유행이 지나버린 듯한 이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은, 단지 신파 멜로영화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뛰어난’ 멜로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
을 보는 이유는 단지 쓰마부키 사토시와 나가사와 마사미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쓰마부키 사토시와 나가사와 마사미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청춘스타로 꼽힌다. 에서 쓰마부키 사토시와 나가사와 마사미의 존재감은 확연하다. 두 청춘스타의 청순한 매력이 의 눈물샘을 더욱 자극한다. 하지만 의 성공은 단지 눈물 때문만이 아니다. 은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할머니가 이야기를 해준다. 어렸을 때 사랑하는 남자가 전쟁에 나가 죽었다. 너무나 슬퍼서 종일 울고 또 울었지만, 그래도 또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고 카오루 남매도 만나게 되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슬퍼도,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아도, 살아 있다면 또 우리는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이미 죽은 그들도,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는 인식은, 순애영화 붐을 일으킨 전작들에서도 등장한다. 의 남자는 고등학교 때 사랑했던 소녀를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순애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병치하면서 남자가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준다. 그 사랑이 슬프고 너무나 소중한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것은 유키사다 이사오가 등의 전작들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말이다. 판타지인 는 죽은 아내가 장마가 시작되면서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그냥 아름답고 슬픈 판타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안에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연인이었다가 한 번 헤어진 뒤, 다시 만나 결혼을 했다. 이유는 남자의 병 때문이었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언한 뒤, 한참 뒤 그녀가 찾아와 다시 그를 품에 안는다. 강한 확신과 함께.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래로 갔던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들을 남겨두고 일찍 죽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모든 준비를 끝마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순애영화의 진정성을 바라보다
은 모두 눈물이 흐르는 멜로영화이고, 연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신파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죽음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슬프다’가 아니다. 오히려 연인의 죽음을 간직하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연인의 죽음이 준 슬픔이, 그들에게 힘이 되어야만 함을 알려준다. 그런 진정성이 에도 담겨 있다. 일본의 순애영화 붐이 한풀 꺾인 지금에도 이 히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슬픔도 힘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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