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캐릭터를 노골적으로 살린 가족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제목이 재미있다. 그리고 노골적이다. , 배우 이대근의 이미지를 백분 활용한 가족영화라는 말씀이렷다. 실제 배우 이대근은 영화에 실명으로 등장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전제된’ 이대근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였다면, 최소한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의 이대근은 우리 시대의 어떤 아버지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이대근’이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이면서 ‘강한 남자’를 상징하는 대명사다. ‘이대근’ 하면 ‘변강쇠’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게 80년대 스크린을 주름잡았던 강한 남자는 이제는 돌아와 21세기의 쓸쓸한 노인이 되었다. 은 거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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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대근 노인은 젊은 시절 헛꿈을 좇았다. 악극단의 무명배우로 전전하면서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과응보, 이제는 자식들이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게다가 노인은 3년 전 부인의 제삿날 자식들과 다툰 뒤로 의절한 채 살고 있다. 도장을 파면서 사는 노인의 생활은 독거 노인의 쓸쓸함과 다를 바 없다. 쓸쓸한 노인은 부인의 제삿날 자식들을 불러모은다. 노인은 배우인 아들이 자가용에 기사까지 보냈다고 자랑을 하지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자가용의 번호판에는 렌터카에 붙는 ‘허’가 쓰여 있다. 노인은 자식들을 만나지만 무언가 어색하다. 근사한 한옥집에서 노인을 맞이하는 큰아들 부부는 “빌린 집”이라는 말실수를 하고, 직업이 목사라는 사위는 뜬금없이 택시기사 복장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짐작대로, 자식들이 저마다 아버지와 대립하는 사연이 밝혀진다. 큰아들(이두일)은 아버지에게 건강식품이나 팔려고 하는 무명배우고, 또 다른 ‘아버지’를 독실하게 모시는 기독교인 딸(안선영)은 제사상에 절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둘은 아버지가 막내아들만 편애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자식들이 아버지와 의절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막내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어머니의 수술비까지 털어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의 변명도 있다. 자식들의 짐작과 달리, 목숨이 달린 수술비를 막내의 사업자금으로 주자고 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막내를 위해 내린 마지막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여전히 다툼이 계속되지만, 서로의 오해가 조금씩 풀리는 가운데 아버지와 자식들은 화해를 향해 나아간다.
또 다른 줄거리는 막내아들을 찾는 이야기다. 늦둥이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사업에 실패한 이후 종적을 감춘 막내를 이대근 노인은 찾는다. 어머니의 제삿날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대근 노인은 심부름센터 구 실장(박원상)을 통해서 막내를 찾지만 쉽지가 않다. 구 실장이 막내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막내는 사라져버린다. 구 실장이 추적한 사람은 막내가 아니라 막내의 신분증을 훔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구 실장은 막내를 찾아내지만, 노숙인이 된 막내는 차마 아버지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도망쳐버린다. 그래도 막내는 아버지에게 모처럼 전화를 걸고, 이대근 노인은 막내의 목소리만 듣고도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여기까지가 각별하면서도 익숙한 이대근씨의 가족사다. 그리고 갑자기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단순한 종이 아니고 진실의 종이다. 진실의 종이 울리고 반전이 시작된다. 반전을 알고 나면 사위가 왜 엉뚱한 말을 되풀이했는지, 손자가 왜 뜬금없이 갑옷을 입고 나타났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어색한 가족의 행동이 비로소 아귀가 맞는 것이다. 왠지 어색했던 앞부분의 구성이 뒷부분의 반전을 위한 장치였음이 비로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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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 짓는 표정의 자연스러움
배우 이대근을 빼놓고 을 말하긴 어렵다. 이대근을 연기하는 이대근의 연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노인 이대근의 연기에도 여전히 특유의 표정과 과장된 말투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바로 그 이대근류의 과장이 이대근의 얼굴에 얹히는 순간 오히려 자연스러움으로 느껴진다. 다른 배우가 했으면 참으로 억지스러웠을 표정과 말투가 배우 이대근이 하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많은 영화를 통해서 구축된 이대근의 이미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자식들과 등지고 홀로 사는 노인의 쓸쓸함은 장년 배우 이대근의 몸에 실리면서 현실감을 얻는다. 강건한 풍모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지만 돌이킬 수 없이 허물어진 육체는, 삶이 밑바닥까지 처절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더없이 쓸쓸하게 늙어가는 노인의 모습에 썩 어울린다. 마치 이웃 노인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가 이대근의 몸피와 연기를 빌려 살아난다. 무엇보다 이대근의 얼굴에는 진짜 아버지의 희로애락이 새겨진다. 자식을 잃은 이대근 노인이 마른 울음을 토해낼 때도, 밤늦게 귀가하는 딸을 동네 어귀에서 기다리다 말없이 목도리를 씌워주고 돌아서 슬며시 웃음을 머금을 때도, 이대근의 얼굴에는 ‘내 아버지’ 같은 애환이 서린다. 이렇게 은 한국 영화에 이대근이라는 수십 년 묵은 영화적 자산이 있음을 새삼스레 증명한다.
은 극단 차이무가 공연했던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배우 이대근을 캐스팅하면서 제목이 에서 으로 바뀌었다. 원작의 영향으로 의 공간 구성은 단순하고, 반전 방식은 상당히 연극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연극적 효과를 영화적 연출로 충분히 옮기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은 저예산 영화라는 ‘티’를 너무 내는데 화면과 음향에서 곤궁함을 지우지 못한다. 이제는 이렇게 되겠다 싶으면 이렇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 상투적 구성도 영화의 긴장을 풀어놓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략 개연성을 잃지 않고, 농담도 가끔씩 말장난을 넘어선다. 이대근과 호흡을 이루는 박원상, 정경순, 박철민 등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연극에서 기본기를 익힌 배우들은 연극적인 영화에서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주고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은 결국 가족의 부재를 통해 가족의 존재를 말하는 영화다. 이러한 방식이 새롭진 않아도 진부하지 않다. 최근에 잇따르는 아버지 영화 가운데, 가족의 의미를 한번쯤 에둘러 말하는 영화도 적은 탓이다. 은 을 연출했던 심광진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와 한국 영화 기대작 의 틈바구니에서 5월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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