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민수’의 얼굴부터 ‘바디밴드’의 뱃살까지 개그계에 부는 복고 바람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요즘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무언가 ‘원초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모님’과 함께 문화방송 의 투톱인 ‘최국의 별을 쏘다’에서 죄민수(조원석)를 보았을 때, 무언가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개그도 개그지만, 우선은 외모가 그랬다. 죄민수를 연기하는 조원석의 외모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이지만) 단순히 ‘안 생겼다’는 느낌과 달랐다. (역시나 위험한 말이지만) 무언가 무서운(그로테스크) 느낌이 들었다. 코너를 소개하는 최국의 표현대로 “기존 개그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외모였다. 빨간 바지에 치렁한 목걸이 패션도 ‘하드코어’였지만, 사흘 동안 라면만 먹어 부은 듯한 얼굴은 더한 하드코어였다.
“너 또한 괴기스러워”
죄민수는 터프가이 캐릭터다. 한동안 개그 프로그램에서 터프가이 연기는 ‘멀쩡하게’ 생긴 개그맨(예컨대 한국방송 ‘사랑의 카운슬러’의 유세윤)들이 담당했다. 멀쩡한 외모지만 과장된 연기로 터프한 척하거나, 적당히 느끼한 외모에 최대한 느끼한 연기로 웃기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죄민수 캐릭터는 그런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조원석이 연인으로 나오는 양만근(양희성)에게 말하는 “너 또한 괴기스러워”는 이미 자신의 ‘괴기스러움’을 전제하고 있다. 조원석의 ‘무서운’ 외모에 죄민수의 거만한 말투와 오만한 표정이 더해지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고, 커다란 웃음보가 터졌다. 물론 먼저 외모로 ‘먹고’ 들어가는 개그의 최고봉에는 몇 년간 옥동자 정종철이 있었다. 하지만 정종철의 외모는 ‘안 생겼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못생겼지만 귀여운 이미지로, 캐릭터에서도 옥동자처럼 깜찍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죄민수 캐릭터에는 귀여움도, 깜찍함도 생략돼 있다. 어쩌면 조원석의 등장은 한동안 안방에서 보기 힘들던, 처음엔 살짝 거부감마저 느껴지는 개그맨 외모의 모처럼 만의 귀환으로 보인다. 그들을 보면서 웃는 우리의 취향도 ‘원초적 본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동안 잘 웃길 뿐 아니라 잘생긴 개그맨이 ‘대략의’ 추세였다면, 개그의 방식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또 다른 발견도 있었다. SBS () ‘Party Time’ 코너에 등장하는 ‘W.T 하박’을 보았을 때였다. 무엇보다 먼저 하박을 연기하는 하승철의 유난히 작은 키가 눈에 띄었다(오죽하면 ‘하박 키’가 인기 검색어가 되고, ‘157cm 최단신 개그맨 등극’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나왔을까). 게다가 웨이터 캐릭터에 어린이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이건 악극단 시절 혹은 쌍팔년도 개그 캐릭터 아닌가 싶었다. 얼굴은 어른인데 체격은 아이 같은, 80년대 이후에는 찾기 힘들었던 캐릭터의 귀환이었다. 그가 출연하는 코너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나름대로 ‘새끈한’ 코너지만, 하박 캐릭에서는 오랜만에 돌아온 ‘클래식’의 그림자가 뚜렷하다.
‘귀엽게 못생긴’ 기발한 캐릭터도
문화방송 의 ‘크레이지’ 코너에 등장하는 개그맨 오정태에게도 고전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는 코너의 중간에 갑자기 “크레이지~” 하면서 등장해 익숙한 사진을 ‘새로운’ 단어로 재해석해 웃음을 준다. 그의 외모는 작은 키에 개성 강한 외모로 웃겼던 예전의 개그맨을 떠올리게 한다. 오정태는 ‘귀엽게 못생긴’ 외모에 기발한 캐릭터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의 ‘뭔 말인지 알지’에서 오정태는 유치원생 분장에 귀여운 말투로 웃음을 만든다. 오정태의 귀여움와 신동수의 엉뚱함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뭔 말인지 알지’는 의 인기 코너로 떠올랐다. 여전히 개그계에는 ‘성차별’이 있었다. 21세기 들어, 개그우먼은 예쁘지만 그다지 웃기지 못하는 부류와 예쁘지 않아서 웃기는 사람들로 ‘고전적으로’ 양분됐지만, 개그맨의 외모는 웃기는 얼굴에서 평범한 외모로 나아가 준수한 용모로 바뀌었다. 물론 정종철 같은 예외가 있었지만, 개그맨들의 외모지수는 몇 년새 부쩍 높아졌다. 이렇게 ‘멀쩡한’ 외모의 개그맨이 여장 등을 해서 웃기거나, ‘탈모’ 같은 특정 부위의 신체적 특징으로 웃기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의 방송에 정말로 “못생겨서 미안한” 고전적 개그맨 외모가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외모를 통해 원초적 웃음을 자극하는 개그는 서서히 자리잡아왔다. ‘패션 7080’의 흥춘이(박휘순), 오춘이(오지헌)는 외모로 웃기는 캐릭터의 선배 격이다. 아무리 ‘내복 바람’이 받쳐줘도 그들의 개성 넘치는 외모가 없었다면, 장수하기 힘든 코너였다. 잘생긴 개그맨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가운데, 오지헌의 출현은 외모로 웃기는 개그맨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굳이 죄민수의 계보를 찾는다면, 죄민수 캐릭터는 누구나 아는 진실을 외면하며 스스로 잘생겼다고 ‘시건방’을 떨던 오지헌의 캐릭터들과 닮았다. 정종철도 외모의 ‘강점’을 활용한 캐릭터를 꾸준히 개발해왔다. 의 ‘불청객들’도 정종철과 김병만의 외모를 활용한 코너다. 작은 키의 둘은 ‘추리닝 바람’에 촌티 ‘날리는’ 비닐 가방을 들고, 얼굴에 콧물을 붙이고 등장한다. 영화 촬영을 끝없이 방해하는 그들의 행동도 웃기지만, 그들의 반갑지 않은 외모가 없었다면 ‘불청객들’의 묘미는 반감됐을 것이다. 의 ‘띠리띠리’도 띠리띠리 유남석의 엉뚱한 외모가 외계인 캐릭터에 재미를 더한다.
의 ‘바디밴드’는 몸으로 웃기는 개그의 업그레이드된 귀환이다. 코로 클래식을 연주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뱃살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신기를 보여주는 ‘바디밴드’는 ‘몸 개그’가 고전의 틀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보여준다. ‘바디밴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몸으로 승부한다. 몸 개그의 ‘하드코어’를 보여주는 ‘바디밴드’는 몸으로 웃기는 개그의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다. 의 오래된 코너인 ‘누나, 누나’의 결정적 장면도 몸을 통해서 나온다. 누나가 “아니래잖아!” 소리를 지르면서 ‘신문지’로 두 청년 중에 ‘덜 예쁜’ 청년의 머리를 때리는 순간에 웃음이 터진다. 비록 신문으로라도, 머리를 때리는 방식은, 원초적 자극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던 고전적 개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는 개그도 왠지 거부감을 일으키기보다 웃음을 자아낸다.
뱃살로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신기
몸으로 웃기는 개그뿐 아니라 말로 승부하는 개그도 ‘복고풍’ 조짐을 보인다. 의 ‘서울 나들이’는 ‘띠리띠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웃음을 만든다. 최근에 말로 웃기는 개그의 풍자 대상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로 점점 멀어져갔다. 블랑카 같은 이주노동자를 거쳐 ‘띠리띠리’처럼 외계인으로 멀어졌다. 점점 멀어지던 ‘당신들’은 의 ‘서울 나들이’에서 다시 가까워졌다. ‘서울 나들이’는 ‘갱상도’ 사투리를 쓰던 두 명의 실업자가 상경해 서울 말투를 흉내내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전제한 코너다. 그들이 혀끝을 말아올려서 하는 억지스러운 서울말을 들으면, 웃음이 절로 터진다. 그들이 “제 말투가 서울 싸람 같”라며 말끝을 어색하게 올리면서 말끝마다 “”를 붙일 때,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서울말로 하겠다면서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마봐~”라고 말할 때, 어색함은 웃음을 만드는 뇌관이 된다. 21세기에 경상도식 표준말을 구사해 웃음을 만드는 방식이라니, 얼마나 기발한 고전으로의 복귀인가. ‘서울 나들이’는 서울말을 흉내내는 지방 사람에 대한 풍자이면서 서울 깍쟁이에 대한 희화, 두 겹의 층위를 지닌다. ‘서울 나들이’처럼 말투로 웃겼던 개그의 선배는 ‘블랑카’였다. “사장님 나빠요” “뭡니까, 이거”를 유행시켰던 블랑카 캐릭터는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풍자의 대상이 현실로 느껴져야 웃음이 터지는 법인데, 말투로 웃기는 개그의 풍자 대상은 이주노동자에서 지방 사람으로 오히려 가까워졌다. 개그의 발상으로도 ‘서울 나들이’는 고춘자, 장소팔의 시골 사람 상경 개그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서울 나들이’는 한동안 유행했던 사투리 개그를 넘어, 사투리 쓰는 사람이 억지로 구사하는 서울말이라는 ‘이중의 비꼬기’를 통해 오히려 ‘말투 개그’의 고전으로 복귀한다.
18금(禁) 어린이 복장의 유니폼화?
개그에도 복고풍이 불지만, 드라마에서 복고풍은 더욱 거세다. 최근 방송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서 기다리는 대신에 국내외 각종 영상물을 ‘다운로드’해 보는 젊은 층이 증가하면서, 지상파 시청률은 중년층이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중년을 겨냥한 가족 드라마의 잇단 부활과 함께 퇴행도 진행됐다.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그나마 약해졌던 코드인 혼외정사 문제, 이복형제의 다툼 등이 더욱 원초적 갈등으로 브라운관을 장악했다. 이렇게 우리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개그와 드라마에 매료되고 있다. 한국인의 감수성은 퇴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면, 다시 감성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얼까.
참, 에서 어린이 잠옷, 에서 고교생 교복이 유니폼인가 싶다. 의 ‘그만해’ ‘귀여워’ ‘친절한 형수씨’ 등에 잇따라 어른에게는 금지된다는 18금(禁) 어린이 복장이 등장했다. 에서도 ‘고교천왕’ 등에서 성인 개그맨이 중고생 교복을 입고 나오는 장면이 흔하게 보인다. 개그도 유행을 타지만, 지나친 유사 복장은 개그의 건강을 해친다.
|
“정찬우 선배가 이주일 선생님 이후 최고의 외모라고 하던데요.”
죄민수를 연기하는 조원석씨는 외모 ‘덕’을 본다고 말했다. 외모 덕을 얼마나 봤냐고 묻자 “그냥 일조를 했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제가 ‘터프가이’ 죄민수 캐릭터와 상반되는 외모여서 웃음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는 SBS 공채 개그맨에 뽑힌 이후에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쳤다. 혹시 외모 ‘탓’에 개그맨 생활에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을까. 그는 “딱히 그런 기억은 없지만, 외모가 비호감이라는 말은 들었다”고 말했다. 연기로 웃길 뿐 아니라 외모도 ‘호감’가는 개그맨들이 속출하던 시절이었다. ‘비호감’ 외모는 죄민수 캐릭터와 만나면서 웃음의 무기로 바뀌었다.
죄민수는 자신의 외모를 심심찮게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 지난 3월12일 방송된 ‘최국의 별을 쏘다’에서도 “여러분 저 못생겼죠?”라고 물어서 “네”라는 대답을 유도한 다음에, “거기 경찰이죠. 명예훼손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1천 명쯤 돼요”라는 개그로 웃겼다. 옆의 최국이 “몇 명은 잘생겼다고 한 사람도 있다”고 하자 “병원차도 보내요”라고 받아쳤다. 조원석씨는 “만약 제가 잘난 사람이었다면 이런 개그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석의 개그맨스러운 외모가 있었기에 죄민수 캐릭터가 마음껏 ‘자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엠씨계의 쑤레기”라는 유행어가 ‘방송용’으로 아슬아슬한 수위임에도 허용되는 이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방송에서 허용되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이유도 (코너를 같이 하는) 최국씨가 저보다 잘났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약자에게 이런 말을 하면 웃음이 나올 수가 없다.” 그는 ‘죄민수’ 캐릭터에 고전적 요소가 상당히 들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심형래 선생님이 했던 영구 캐릭터, 즉 ‘저 바보예요’ 캐릭터를 시대에 맞게 변주해놓은 것이다. 잘난 게 없는데 잘난 척을 하는 자뻑 캐릭터인 죄민수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영구다.” 그는 ‘최국의 별을 쏘다’의 성공 비결을 “뚱뚱이와 홀쭉이, 거꾸리와 장다리 같은 개그의 고전적 캐릭터처럼, 깔끔한 이미지의 최국씨와 덜 떨어진 이미지의 죄민수가 적당히 매치가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소맥 넘칠 듯 따라 20잔씩 새벽까지 폭주”
윤석열 체포영장 재발부…“경찰 대거 투입할 수밖에”
“사탄 쫓는 등불 같았다”...‘아미밤’ 들고 화장실로 시민 이끈 신부
인해전술·헬기·확성기…전현직 경찰이 꼽은 ‘윤석열 체포 꿀팁’
연차 1개만 쓰면 9일 연휴?…1월27일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
김건희 석사논문 표절 여부 잠정 결론…공개는 언제쯤?
손흥민, 토트넘에서 1년 더…내년 여름까지 계약 연장
홍준표 대구시장, 내란선전죄·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고발 당해
‘관저 김건희 개 산책 사진’ 어디서 찍었나…“남산에서 보인다길래”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