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르는 박초선·서현숙·남혜숙 씨…제도권 밖에서 전통문화의 맥 이어온 명인·명창의 소리결이 궁금하지 않은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언젠가 국악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국악의 성악으로 불리는 정가(正歌)의 맞수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비교 감상하도록 한 일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와 재야의 소리꾼이 부르는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라는 가곡을 잇따라 들려준 것이다. 한가롭고 꿋꿋하게 흐르는 선율에서 여유와 멋을 한껏 느끼게 하는 소리였다. 놀랍게도 이때 정가를 하며 “국악에 대한 철이 들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재야의 소리꾼에 반하고 말았다. 마치 수를 놓듯 물고 맺는 고고한 품격으로 무려 48년을 시조계에서 버티고 있는 서현숙(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이사장)의 군살 없는 가곡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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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라는 ‘제도권’ 밖에도 명인·명창들이 수두룩하다. 종목의 조교와 이수자들이 보유자의 그늘에 가려 있을 때, 이들은 햇볕 한 줌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끝내 제도권으로 진입하지 못한 스승의 가르침을 올곧게 따르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재야의 소리꾼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지녔음에도 번듯한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대표적인 소리꾼 세 사람이 (3월15~16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라는 이름의 국립국악원 기획공연 무대에 오른다.
“LP판 속 소리의 주인공이 살아있다니…”
지금에 이르러서야 소리를 재조명받는 가인은 당대의 전설적인 소리 박록주제 와 김여란제 를 이어가는 판소리 명창 박초선(76·한국전통음악연구원 원장)씨와 정가 유종구제 시조를 널리 보급하는 향제시조 명인 서현숙(67)씨, 민요 김옥심제 경서도소리를 외롭게 지켜온 명창 남혜숙(65·서울소리보존회 이사장)씨 등이다. 국악 애호가라면 이름만으로도 공연을 기대하게 하는 걸출한 실력의 명인·명창들이다. 이들은 널리 기억되는 소리꾼들과는 다른 소리 세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제도권이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려 인고의 나날을 보낸 흔적이 저마다의 소릿결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데는 국악 애호가 김문성(언론중재위원회 조사연구팀)씨의 숨은 공이 컸다. ‘방울목’이라 불린 전설적인 소리꾼 김옥심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한 김씨는 초야에 묻힌 소리꾼을 하나둘 찾아냈다. 여러 매체에 재야 소리꾼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특별한 무대를 제안했다. “오래전에 나온 LP판으로 들었던 소리의 주인공이 살아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판소리 음반을 ‘전통예술의 상품화’로 여긴 박초선 명창의 지조를 무대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세 분의 공연을 통해 국악의 지평을 조금이라도 넓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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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기억하는 제도권 밖의 명인·명창들. 이들이 공연 안내지 사진 활영을 위해 지난 2월26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사무실에 모였다. 사무실을 지키던 서현숙씨는 감기 기운이 있는 박초선씨가 들어서자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손을 꼭 잡으며 “비좁은 사무실로 모시게 되어 송구스럽다”고 말을 건넸다. 박초선씨는 “한겨울에도 감기를 앓지 않았는데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사진이 잘 찍힐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뒤늦게 도착한 남혜숙씨가 고운 한복을 입고 나오자 박초선씨는 “나도 젊었을 때는 괜찮았는데”라면서 얼굴을 매만졌다.
기대와 설렘, 자신감에 가득찬 세 사람
이날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세 사람은 벌써부터 공연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굳은 얼굴이 쉽게 풀리지 않던 남혜숙씨도 공연 소감을 묻자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할 때 이름난 명창이었던 분과 함께 공연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서현숙씨는 “정가를 하는 사람들은 서현숙이라는 이름을 알아준다. 그만큼 시조창으로 인정받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며 설렘을 살포시 드러냈다. 무려 22년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의 보유자 후보로 지내는 박초선씨는 “아직도 소리꾼으로서 몇 시간씩 공연을 할 체력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세 사람의 소리. 그런 만큼 이들은 두 차례의 공연에서 빈 들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한껏 보여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박초선씨는 단가 , 판소리 가운데 ‘박타는 대목’, 가운데 ‘사랑가 대목’ 등을, 서현숙씨는 평시조 , 중허리시조 , 우조시조 등을, 남혜숙씨는 서울·경기 잡가 등을 이틀에 걸쳐 선보인다. 특별히 공연 마지막 순서에서는 세 사람이 무대에 올라 정선·진도·밀양 등의 아리랑을 판소리 경서도소리 시조로 들려줄 예정이다. 소리를 핏줄로 여기는 세 사람이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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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인의 가인’ 톺아보기 |

박초선 명창 소리꾼 기개, 판소리 전설
그가 50대에 접어들면서 설립한 한국전통음악연구원이 올해로 개원 25주년을 맞았다. 국악계에서 드물게 학문 탐구에 열정을 불사른 명창이다. 늦깎이로 대학원을 마친 뒤 판소리 제자를 양성하기보다는 판소리의 서사적 구조를 집중 연구했다. 그리고 요즘은 ‘연구원’을 ‘학교’로 바꾸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판소리 연구를 통해 제자를 가르칠 재료를 마련했기 때문이리라. 한때 국악계에서 “타계했다”는 뜬소문이 나돌 때 연구실에서 만학도로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었던 셈이다.
애기명창으로 판소리의 전설적인 명창 박록주와 김여란 등에게서 소리를 사사했다. 이즈음 광주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해(1944) 판소리 명창 조상선에게 시조를, 월북한 명창 임소향에게 무용을 배우기도 했다. 박동진 명창에 이어 1970년 9월 국립극장에서 여성 최초로 박록주제 동편소리 완창발표회를 가졌다. 이때 처음으로 유료 공연을 해 수익금 전액을 대학에 기부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보유자 지정에서 번번이 밀렸지만 요즘도 하루에 3시간가량 자면서 판소리를 하고 시조, 가야금, 서예 등도 하고 있다.

서현숙 명인 군살이 없는 시조의 울림
여전히 그에게 시조창은 어렵다. 기껏해야 50자 안팎의 시조를 4, 5분에 걸쳐 읊는 게 장단에 맞춰 힘을 쓰고 조이는 식의 기교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호흡을 하지 않고 길게 끌고 가려면 체력이 필수적이다. 시조창을 완성하기 위해 홀로 지내길 마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구에서 지내다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의 중앙사범으로 서울에 올라와 지금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시조창이 정가의 진수이면서도 연례 공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제도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애당초 임춘앵 일행의 여성국극 를 본 뒤 국악에 입문해 시조 명인 유종구에게 정가를 사사했다. 정가 입문 3년여 만인 1962년 마산 전국시조경창대회 명인부 1등을 비롯해 5개 대회에서 시조 부문 1등상을, 1967년 제1회 전국시조가곡명인선발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소리꾼으로 이름났다. 1970년대 중반 시조계에서 잠시 떠나 있다가 80년대 초반 복귀해 1986년 부여백제문화제 시조가곡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존재를 알렸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리로 시조창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다.

남혜숙 명창 김옥심의 후예, 빛을 보려나
스승 김옥심이 재조명받으면서 경서도잡가와 신민요 등을 보급하는 소리꾼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명의 가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서울소리보존회 이사장인 그에게서 50여 명의 제자가 김옥심제 소리를 사사하고 있다. 김옥심 추모사업회를 설립한 뒤 2000년에 추모 공연을 마련했고, 2004년에는 김옥심제 잡가를 모아 음반을 취입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이은주 명창으로부터 ‘고제소리를 제대로 잇고 있는 유일한 명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취미생활 차원에서 국악을 접했다. 그러다 1968년 이창배의 청구학원에 들어가 스승 김옥심을 만나 본격적으로 국악에 빠져들었다. 김옥심은 서도 음색이 묻어 있는 그의 부드러운 목을 높이 평가해 가사와 서울·경기 잡가를 집중 전수했다. 한동안 서도명창 지관팔 일행과 일본을 오가며 각종 공연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 뒤 김옥심 명창이 보유자 지정에서 국악계를 떠나있다는 황당한 이유로 배재된 뒤에도 끝까지 스승 곁을 지켰다. 그로 인해 제도권 밖에서 오랫동안 어려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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