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일용엄니’와 김수미가 나뉘던 시절은 가고 ‘망가진 중년’이 오다…자신을 희화화하면서도 연기력과 어른다움으로 작품의 깊이 더해</font>
▣ 강명석 기획위원
몇 주 전 월요일, 한국방송 의 ‘불량아빠 클럽’. 이 프로그램에는 1966년생 배우 이원종이 출연한다. 그는 이경규, 김구라 등과 함께 남편, 애아빠, 혹은 아저씨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삶을 술술 풀어놓는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화요일, 한국방송 의 ‘올드 앤 뉴’. ‘1965년생’ 이승환과 ‘1968년생’ 신승훈이 출연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중년’이나 ‘아저씨’의 이야기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이승환은 공연에 대비하느라 운동을 해서 ‘몸짱’이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신승훈은 지금껏 ‘열애설’ 한 번 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이 대조적인 풍경은 한국에서 ‘중년 연예인’의 정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대 가수들과 경쟁하고, 20~30대는 물론 심지어는 10대에게도 어필하는 이승환과 신승훈은 중년 가수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스타’일 뿐이다. 그건 40대를 넘긴 브래드 피트가 여전히 최고의 섹시 스타고, 전세계 가수들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공연 수익을 올리는 롤링 스톤스가 ‘늙지 않는 악동’인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이원종은 ‘불량아빠 클럽’에서 계속 돈에 쪼들리고, 아내와 자식의 눈치를 봐야 하는 중년 남성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자신을 희화화해 ‘젊은 오빠’로
버라어이티쇼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할 정도의 연예인이라면 이미 평범한 중년 남성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힘없고 보잘것없는 중년 남성임을 강조하며 그것을 캐릭터화한다. 한국에서 중년 연예인의 정의는 나이가 아니라 그들이 한국의 일반적인 중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그들은 대부분 중년의 이미지를 희화화하면서 인기를 얻는다. ‘불량아빠 클럽’은 쉴 새 없이 서로 아이처럼 싸우면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생활을 강조하고, 노주현 등이 출연하는 한국방송 의 ‘쾌남시대’는 게스트로 출연하는 젊은 여자 연예인에게 누가 더 매력적인지 봐달라고 매달리면서 같은 드라마의 멜로 신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기도 한다. 또 문화방송 의 ‘경제야 놀자’에서는 조형기가 무식한 중년 아저씨의 콘셉트로 웃음을 자아내고, 송대관과 김흥국은 SBS 의 ‘이건 아니잖아’에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개그 소재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의 아버지상’이던 이순재는 문화방송 에서 야동을 즐겨 보는 노인 ‘야동순재’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중년의 이미지를 희화화하며 자신도 젊은 세대의 정서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는 것이다.
물론, 신구가 SBS 시트콤 에서 괴팍한 노인을 연기한 뒤 한 CF에서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대사로 화제로 떠오른 이래, 중년 연예인의 성공은 곧 그들 자신의 희화화를 통해 ‘젊은 오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거 문화방송 가 최고의 인기 드라마 노릇을 하고 있던 때만 해도 중년 연예인은 희화화가 아닌 존경의 대상이자 대중문화계의 실세였다. 의 일용 엄니는 성대모사의 대상이 됐을지라도 일용 엄니를 연기하는 김수미는 희화화의 대상이 아니었고, 연기대상은 최불암과 김혜자 같은 연배의 배우들이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김수미는 문화방송 시즌3 이후 걸죽한 욕설을 쏟아내는 코믹한 중년 여성 캐릭터로 자리를 굳혔고, 연기대상은 늘 젊은 배우들의 차지다. 이는 한국 대중문화계 전반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준다.
‘대발이 아버지’가 ‘야동순재’로
이른바 신세대, 혹은 X세대가 급부상한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계의 최대 소비자는 20~30대고, 대중문화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돌아간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부분 10대 후반~30대 초·중반의 연기자들이고, 드라마에 붙는 광고 역시 젊은층이 소비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연예 언론매체 역시 그들이 좋아할 만한 기사들을 쏟아낸다. 중년 팬들에 의해 모든 공연이 매진되는 나훈아의 저력은 보도조차 되지 않지만,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문화방송 의 윤호를 연기하는 정일우의 소식은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간다. 아무리 ‘불량아빠 클럽’과 ‘쾌남시대’가 중년 출연자들을 내세운다 해도, 그 기본 틀은 젊은 층이 즐겨 보는 빠르고 감각적인 호흡의 토크쇼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과거에는 ‘대발이 아버지’가 극의 중심이었던 같은 작품이 주말 프라임 타임에 방송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순재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중년 연기자들이 드라마에서 젊은 연예인들의 ‘병풍’ 노릇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등장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혹은 중년의 모습을 희화화해서라도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젊은 층은 인터넷을 지배하고, 연예 매체의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이순재가 ‘야동순재’가 돼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이계인이 문화방송 에서 코믹한 캐릭터 모팔모가 된 뒤 비의 CF를 패러디하며 ‘비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고 ‘팬클럽 창단식’까지 치르는 제2의 전성기를 마련한 것을 보라. 젊은 층에 어필하면 그들은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캐릭터를 가질 수 있다. 그 캐릭터는 자신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몇몇 중년 연기자들이 기존 이미지를 고수하다가 어느 순간 1년에 드라마 한 편 출연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반면, 문화방송 등에서 젊고 현실감각이 있는 어머니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해옥은 지난해 어머니 배역으로만 최다 출연자가 됐다. 즉, 중년 연예인들은 더 이상 우아하게 품위를 지키는 위치가 아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밑에서는 쉴 새 없이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온다. 살아남으려면 망가지더라도 바뀐 모습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망가지는 것이 단지 주책이나 그들이 지금껏 쌓은 위신에 어울리지 않는 일만은 아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망가진 중년’은 요즘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살아남은’ 중년의 새로운 생존법
에서 가정의 어른이지만 실권은 이미 며느리에게 빼앗긴 이순재의 모습은 한국 가족의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문화방송 에서 처음으로 개그 연기에 도전하는 임채무나 이미 중년 탤런트이자 개그맨, 혹은 방송인이 된 조형기는 중년 연예인의 영역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년 연예인들은 희화화를 통해 중년의 이미지를 스스로 깨면서, 동시에 바뀐 세상에서 ‘살아남은’ 중년으로서 새로운 생존법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그 생존 뒤엔 ‘어른’으로서 그들만이 전달할 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다. 이순재는 ‘야동순재’로 10대에게 인기를 얻는 요즘 과거 이상으로 연극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활동을 하는 동시에, 거품 현상이 일고 있는 젊은 연기자들의 몸값과 그에 반비례하는 연기력 등 현재 드라마 산업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에서 이순재의 아내를 연기하는 나문희는 시트콤과 한국방송 에서는 한없이 코믹한 연기자지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와 영화 등에선 감탄스러운 연기로 한국의 새로운 어머니상을 정립했다. 또 문화방송 에서 대학병원의 권력 싸움에서 패해 초라하게 퇴장한 의사 이주완을 연기하는 이정길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중년 남성이 겪는 삶의 고민을 젊은 마니아 시청자에게 ‘가르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쌓은 연기력을 ‘병풍’ 역할로 소진하지 않고 젊은 층이 즐겨 보는 시트콤과 마니아 드라마를 통해 중년 연예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로 작품의 무게와 깊이를 더하는 것은 중년 연기자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 시대 중년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겹쳐 보인다. 망가지면서 대중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중년 연예인들의 변신은 더 이상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게 잡고 뒷짐 지며 살 수 없고, 그렇다고 은퇴하기엔 살날이 너무 많이 남은 현실의 중년들에게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이든 ‘야동순재’든, 당당하게 살아남아 어린 친구들에게 좋은 얘기를 해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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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와 할매의 스크린 부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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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스크린에는 ‘할배’들이 먼저 뜨고, ‘할매’들이 나중에 떴다. 한국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를 통해서 백윤식을, 에서 변희봉을 재발견했다. 두 편의 저주받은 걸작은 봉준호, 장준환이라는 미래의 거장을 세상에 알렸을 뿐 아니라 백윤식, 변희봉이라는 드라마 연기자를 영화 배우로 바꾸었다. 백윤식은 등을 통해 가르치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한국의 ‘선생님’으로 거듭났다. 때때로 같은 영화에서는 세상의 아버지들과는 다른 아버지 캐릭터를 선보였다. 변희봉은 을 거치며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을 스크린에 새겼다. 영화는 방송과 달리 그들의 이미지를 뒤집는 대신에, 기존 이미지에 새로운 감각을 더했다.
‘할매’들은 에서 나왔다. 50대 이상의 할머니 5명이 나왔던 의 예상 밖 흥행은 중·장년 여배우들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김수미는 500만 관객을 동원한 로 연기 생활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07년 개봉한 도 관객의 호응을 얻었고, 극장판도 김영옥을 비롯한 할머니 3인방의 활약으로 영화에 생기를 얻었다. 백윤식이 한 편의 영화를 책임질 만큼 중·장년 남자 배우를 대표한다면, 나문희는 중·장년 여배우의 대표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s> 등에서 전통적 어머니와는 다른 어머니상을 선보였다. 이어진 를 통해서 전통적 어머니상으로 돌아오며 배역의 비중을 키웠고, 마침내 연기 생활 최초로 ‘타이틀롤’을 맡았다. 그가 ‘권순분 여사’를 연기하는 영화 은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는 그렇게 중·장년 배우들의 부활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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