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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가라사대] <찰리와 초콜렛 공장> 중에서

등록 2007-0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도훈 기자

“왜 이곳의 모든 게 이 따위로 무의미한 거지?”
“캔디와 초콜렛은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어. 그래서 그것이 캔디인 거야!”

(200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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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에 판매 중이라는 ‘99% 카카오’ 초콜릿을 얻었다. 포장지를 조심스레 열었더니 진흙색에 가까운 속살이 조명에 슬쩍 빛난다. 혀를 살짝 대며 한입 깨물었다. 카카오 함유량이 99%에 가깝다는 말은 설탕이 거의 없다는 뜻이므로 보통의 초콜릿보다 쓸 것이라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속에서 부서지는 순간 99% 카카오의 99% 쓴맛이 미각세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름진 밭고랑에서 푹 떠올린 진흙 맛이 이럴까. 초등학교 시절 검은 크레파스 맛이 이럴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 요리용으로 사용되는 99% 카카오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좋다는 속설 덕택이었다. 수입업체의 인터뷰를 보니 “노화를 방지하고 동맥경화를 막아주는 카카오의 폴리페놀 성분이 웰빙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기호와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웰빙이라. 정성 들여 달인 한약을 건네는 어머니의 마음이려나. 하지만 초콜릿은 초콜릿다워야 한다. 초콜릿은 로맨틱한 식품이다. 달콤한 초콜릿은 엔도르핀을 우리 몸으로부터 촉발시키며, 그 덕택에 인류의 오랜 기호식품이자 때로는 호사스런 최음제로 칭송받아왔다. 우리는 웰빙과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쓴 초콜릿마저 입 안에 우겨넣을 만큼 ‘안’ 로맨틱한 동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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