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줄거리에 새로운 시도 섞은 프랑스 뮤지컬 …슬픈 사랑 노래에 감동받고도 가창력은 아쉬우나 식상함의 징조일지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모든 이야기는 다 비슷하게 시작한다. 달빛 아래 새로운 것 없듯…’이라는 내레이션은 프랑스 뮤지컬의 실체를 한마디로 요약한 듯했다. 곧바로 막이 오르면서 등장한 웅장한 음악과 시적인 노랫말의 첫 곡 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 있는 세련된 의상보다 빛나 보였다. 이전에 나 등에서 프랑스 뮤지컬 넘버 특유의 감성을 가슴에 새긴 이들이라 해도 아름다운 도시에서 벌어질 치명적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너무나 익숙한 줄거리라서 “새로울 게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관객이라 해도 ‘색다른 느낌’에 빠져들 요소는 적지 않았다.
투명한 의상 입은 ‘죽음의 여신’
이렇게 뮤지컬 은 진부함과 새로움 사이를 넘나든다. 대형 스펙터클 뮤지컬을 지향하고 있지만 줄거리는 소설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를 노랫말로 절묘하게 풀어낸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이 뮤지컬 걸작의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대신하는 식이다. 프랑스 뮤지컬이 약한 스토리를 다양한 요소로 버무려내는 시도를 하지 않고 감성적 접근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에서 도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이는 쉬운 이야기 구조로 다양한 관객층을 확보하려는 ‘배려’로 여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해석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연의 막이 오르면서 등장한 ‘죽음의 여신’은 무대 곳곳을 오가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암시한다. 물론 무대의 배우들이 투명한 의상을 입은 여신을 알아챌 수는 없다. 다만 여신이 손을 잡거나 어깨를 스치는 식으로 배우에게 다가설 때 누군가에게 닥칠 죽음을 예감한다. 어디에나 등장하는 여신은 장면에 어울리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의 구실에 충실해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거슬리기도 한다. 그래도 원작에 없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은 색다른 제작 방식을 취했다. 한국의 프로덕션이 공동제작사로 참여해 자본과 배급을 맡았다. 앞으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공연을 한 뒤 파리로 들어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동양적 느낌을 심은 무대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무대 한쪽에 꽃나무가 등장하고 붉은 막을 내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식이다. 베로나를 상징하는 무대에도 변화가 있었다. 중세의 매력과 현대적 풍경을 적절히 결합한 것이다. 콜로세움 형태의 벽을 이용해 배우들이 등장하고 세트 앞의 무대장치는 배우들이 직접 움직이며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했다.
고혹적인 줄리엣의 실망스런 가창력
국내에서 프랑스 뮤지컬은 ‘팔리는’ 문화상품이다. 노래 실력이 탁월한 배우들, 화려한 몸짓을 드러내는 전문 무용수들, 대극장을 압도하는 무대 디자인 등으로 관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흠모도 ‘수명’이 있을 테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와 다른 특이한 볼거리도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다.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줄리엣의 가창력이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식상함의 징조인지 모른다.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주 보고 ‘사랑한다는 건 시간을 훔치는 것/ 사랑한다는 건 살아 숨쉬는 것/ 화산처럼 불타오르는’이라고 노래할 때, 그 진부한 사랑 이야기에 누군들 홀리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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