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로 남은 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사건’을 다룬 영화 …전국민이 공조해 ‘그놈’을 잡자는 박진표 감독의 호소가 관객에 통할까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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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정해져 있다. 아이는 유괴됐고, 돌아오지 못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처럼 연쇄살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극적인 긴장의 강도를 높여갈 방법도 없다. 실화의 힘이 받쳐준다 해도, 영화적 긴장을 높이기에 쉬운 소재는 아니다. 그래서 가 쫓고 쫓기는 추적극이 아니라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전하는 휴먼드라마의 길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현명한 일이다. 유괴사건을 최대한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감독의 말은 윤리적으로 정당할 뿐 아니라 영화적으로 현명한(즉, 현실적인) 선택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절절히 그려서 ‘그놈’을 잡고 싶다는, 감독의 표현대로 “희망적인 공분”을 일으키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미제의 유괴사건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영화로 설득하기란 쉽지 않은 운명이다. 2007년 상반기 기대작, 는 그러한 미션을 향해 달린다.
44일간 부모를 끌고다닌 그 목소리
는 1991년 유괴돼 4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이형호군 사건’에 바탕한 영화다. 영화는 유괴된 날짜를 제시하면서 실제 사건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의 9살 상우는 살 빼기에만 시달리지 않는다면 행복한 아이다. 아버지 한경배(설경구)는 9시뉴스 앵커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인물이고, 어머니 오지선(김남주)은 일찍이 90년대 초반 아들의 비만을 염려해 아이를 한방병원에 데리고 다닐만큼 똑 부러지는 전업주부다. 그러나 1991년 1월29일 상우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유괴되면서 그들의 일상은 무너진다. 는 그날부터 44일 동안의 악몽을 그린다. 부모는 44일 동안 생지옥을 경험한다. 그들은 아이를 잃고, 돈을 뺏기고, 행복을 잃는다. 얼굴 없는 그놈(강동원)은 그들을 살아 있는 지옥으로 이끄는 저승사자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그놈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그놈의 전략은 치밀하며, 그놈의 행동은 냉정하다. 그놈의 목소리에 휘둘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부모의 상황은 처절하다. 영화는 리얼리티를 위해 형호군이 실제 유괴됐던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 형호군의 부모가 범인의 지시로 헤매고 다녔던 김포공항, 충무로 등에서 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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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놈이 지시하고 부모가 헤매다니는 추적을 반복하다 마지막 한 방을 날린다. 아무리 연쇄살인처럼 긴장을 높여갈 결정적 장치가 부족해도, 영화의 중반부는 박진감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타인을 감시하는 언론인에서 그놈에게 감시당하는 피해자로 전락한 아버지의 반성도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부모에게 “다 보고 있습니다” “짜장면 불겠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상황을 철저하게 장악한 그놈의 (목소리가 아니라) 존재에서도 섬뜩한 기운은 약하다. 경찰은 극에 긴장을 불어넣지도 재미를 주지도 못한다. 영화는 입으로는 “과학수사”를 읊어대지만 실제로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익숙한 설정을 반복한다. 경찰 김욱중(김영철)이 어수룩한 이미지를 뒤집는 어떤 한 칼을 언젠가 보여주겠지 기대하지만 칼끝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저 아래 범인이 보이지만 범인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케이블카에 갇힌 장면처럼,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절절한 장면도 있다.
“범인이 잡혀야 영화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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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기어이 눈물을 터뜨린다. 공분을 자극하는 엔딩은 강력하지만, 윤리적으로 정당하며 영화적으로 매력적인가 논쟁을 남긴다. 설경구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특기인 격정적인 연기가 양복을 입고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김남주는 영화에 무난히 녹아들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한편으로 범인을 그렇게 매력적인 배우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도 남는다. 비록 얼굴이 나오지 않지만, 강동원의 목소리만 들어도 강동원의 얼굴이 떠오르고, 자칫 강동원의 아우라에 매료될 위험도 없지 않다. 범인의 매력이 영화에 집중할 장치로 쓰이지 않았나, 지나친 의심도 생긴다. “실제 범인의 목소리와 배우의 목소리가 혼동될까봐 누구나 아는 목소리로 하기 위해” 강동원을 선택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영화적 효과는 모호하다.
박진표 감독은 에 이어 세 번째 장편영화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박 감독은 1991년 SBS 조연출을 하면서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루었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감독은 “범인이 잡혀야 영화가 완성된다”고 말할 만큼 범인 검거에 강력한 의지를 보인다. 그래서 는 ‘현상수배극’이라는 이름을 달았고, 영화의 끝에는 진짜 ‘그놈 목소리’가 들리고 그놈의 몽타주도 나온다. 국민 공조로 범인을 잡겠다는 취지다. 명분에 약한 한국의 정의파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까. 의 뜨거운 멜로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의 호소에도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2월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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